[의학노트] 의학 교육의 질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의학교육의 질 관리를 위한 의학교육 평가인증은 이제 세계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1998년 의과대학들이 주도해 ‘한국의과대학 인정평가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자율적으로 시작됐다. 이를 기반으로 2003년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설립됐고, 이후 의학교육 평가인증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면서 시스템과 기준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2014년 교육부로부터 평가인증기관으로 지정된 의평원은 지난 5월엔 재지정(기간 5년)을 받았다. 2016년엔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로부터도 평가인증기관으로 인정(기간 10년)받았다. 한국의 의학교육 평가인증 시스템이 세계적 표준에 부합함을 입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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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평원 평가 역량 세계가 인정
증원 따른 교육 질 우려는 당연
평가기관 독립·중립 보장돼야
」
2016년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모든 의과대학의 평가인증이 의무화됐다. 의료법 개정에 따라 2017년부터 평가인증을 받지 못한 의과대학의 졸업생은 의사국가시험, 즉 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됐다. 이처럼 평가인증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인증을 받지 못했던 서남의대가 2018년 결국 폐교됐다.
의평원은 지난 3월 성명서를 내고 의과대학 증원이 일시에 대규모로 이뤄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의평원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의 10% 이상 증원을 포함해 의학교육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을 ‘주요 변화’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대학은 주요 변화 평가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 평가받게 돼 있다.
정부가 확정한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에 따르면 30개 의과대학은 주요 변화 평가 대상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기존에 받았던 인증 결과가 변경될 수 있다. 인증받지 못한 대학은 정원 감축, 모집 정지, 졸업생의 의사면허시험 응시 제한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불인증 평가가 반복되면 서남의대 경우처럼 폐교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교육부는 지난 4일 긴급 브리핑에서 의평원 원장이 의학교육의 질 저하에 대해 근거 없이 예단하고 의평원이 중립성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의평원 이사회 구성의 다양화와 재정 투명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의평원은 지난 10일 ‘교육부 긴급 브리핑에 대한 의평원 입장문’을 내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교육부와 의평원이 이례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힘에 따라 의대 증원에 따른 의학교육의 질 관리 문제가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어느 쪽 입장이 더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지 차분히 따져봐야 할 때다.
증원해도 의학교육의 질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교육부 주장의 근거는 각 대학(총장)이 제출한 교육여건 개선 계획과 정부의 의대 교육 선진화 방안에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여전히 계획일 뿐이고, 당장 내년 3월부터 1509여 명, 내후년부터 2000여 명이 증원돼 그만큼 더 입학하게 된다. 의평원은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가능할지 우려를 표명한 것이며, 이러한 계획이 제대로 수행되는지 규정에 맞게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평원 이사회가 대한의사협회·한국의과대학협회·한국의학교육학회 등 관련 전문 단체장과 추천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이사회는 의평원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다. 이사회는 평가인증 기준과 평가 자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관여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교육부가 이사회 구성을 다양화하겠다는 명분으로 의평원의 평가인증 기준과 평가에 부당하게 개입할 위험성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의평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나.
현행 의학교육 평가인증 시스템과 기준이 완벽하다는 주장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의평원 이사회만이 아니라 여러 수준과 단계에서 학생·학부모·환자·국민 등 의학교육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하지만 급격한 의대 증원을 앞둔 지금 이사회 확대가 가장 시급한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대다수 의대생과 의사들의 반대에도 의대 증원을 강행하고 있는 정부가 앞장서서 요구할 일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의대 증원에 대한 의료계와 의학교육계의 우려가 크지만, 국민 여론이 다양한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의대 증원이 이뤄질 것이라면 여러 보완책을 통해 애초에 목표한 취지를 꼭 달성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의학교육의 질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지난 25년 이상 발전시켜온 국내 의학교육 평가인증은 이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현배 서울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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