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바이오 에너지라는 환상
친환경과 관련된 가장 주목받는 시도 중 하나는 에너지 전환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화석연료 대신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여겨서다. 원리는 이렇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포집되고, 식물에 저장되어 있다, 식물이 죽어 분해되면 대기나 토양으로 돌아간다. 자연스러운 탄소 순환의 과정이다. 그렇지만 화석연료는 다르다. 이미 지표면의 이산화탄소 순환과 괴리되어, 지표 아래에서 깊게 잠자던 탄소를 꺼내 대기 중에 풀어버리는 것이라 이산화탄소의 양이 늘 수밖에 없다. 그러니 화석연료 대신 식물을 이용해 만든 바이오 연료의 사용을 늘리는 게 대기 중 탄소 배출량을 조절하는 데 유리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유럽 선진국의 친환경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사용되는 바이오디젤의 주된 원료는 팜유(palm oil)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식용유로 콩기름을 사용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기름야자에서 짜낸 팜유가 가장 많이 쓰인다. 여타의 식물성 기름과 비교하면 작물 단위면적당 기름 생산량이 많아 가격이 저렴한 덕분이다. 전 세계로 수출되는 불닭볶음면 같은 라면이 팜유에서 튀겨지고, 거품이 잘 나는 고급 비누의 원료도 팜유다. 최근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바이오디젤의 원료로도 사용되고 있는데, 이런 팜유의 생산을 위해 열대우림이 벌목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팜유의 주된 수출국인 인도네시아 산림청 정보를 가공한 연구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감소한 산림 면적을 합치면 약 602만 ha라는 광범위한 면적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까지 합친 면적이 570만 ha인 걸 고려하면, 고작 10년 사이에 남한 면적 절반보다 넓은 숲이 팜유 수확을 위한 농장을 만들기 위해 사라졌다. 탄소를 저장하고, 생물 다양성 유지에 핵심적인 열대우림을 파괴한 대가로 만들어진 팜유로 만든 바이오디젤이 과연 얼마나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시적으로 보면 바이오 연료의 이용자가 몰린 선진국의 환경오염을 줄이는 대신, 개발도상국에 다른 유형의 환경파괴를 일으키는 외주화다.
늦게나마 상황을 파악한 유럽에서는 2023년 중순께 삼림벌채 없는 상품 규정(EUDR)을 발효해 팜유나 코코아, 커피, 고무, 대두, 목재와 같은 상품이 벌채된 토지에서 생산되면 유럽으로 수입되지 못하도록 규제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것도 2021년부터 새로이 벌채된 토지만 대상으로 삼아, 이미 사라진 열대우림에 대해서는 별도의 강제 규정이 없다. 사라진 숲이 돌아오진 못하는 것이다. 결국 에너지원을 대체하는 게 아닌,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줄여야만 한다. 그런데 친환경 포장 대신 실효성 있는 친환경 정책을 펼 선출직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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