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렸다”는 홍명보, 울산 떠났다

피주영 2024. 7. 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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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명보(가운데) 울산 감독이 지난 10일 광주와의 홈경기 후 자신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린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다. 홍 감독은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연합뉴스]

“저는 저를 버렸습니다. 이제 저는 없습니다. (제 안엔)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습니다.”

홍명보(55) 울산 HD 감독의 말이다. 홍 감독은 지난 10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광주FC와의 K리그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 참석해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각오를 밝혔다. 이날은 홍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뒤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7일 “홍명보 감독을 대표팀 차기 사령탑으로 내정한다”고 발표했다. 홍 감독이 A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건 10년 만이다. 그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1무2패로 탈락한 뒤 물러났다.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 복귀는 울산 팬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홍 감독은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나보다 더 경험 많고, 경력과 성과가 뛰어난 분들을 (대표팀에) 데리고 오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내 입장은 항상 같으니 팬들께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대표팀 감독에 관심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팬들은 홍 감독이 울산에 남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이날 기자회견은 홍 감독이 울산 HD에서 참석한 마지막 공식 행사가 됐다. 그는 11일 오전 울산 선수단과 작별 인사를 한 뒤 2021년 부임 후 3년 반 만에 울산을 떠났다. 이경수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당분간 팀을 이끈다.

1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명보 감독. 그는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한번 해보자는 강한 승부욕이 생겼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홍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주일 사이 생각이 바뀐 첫 번째 이유는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주도하는 한국형 축구 모델인 ‘MIK(Made In Korea)’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임생 기술이사는 지난달 20일 각급 연령별 대표팀부터 A대표팀까지 하나의 축구 철학으로 아우르는 것을 골자로 하는 MIK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홍 감독은 “축구협회 전무 시절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을 전술적으로 한 체계 안에 묶는 작업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정책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실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A대표팀 감독이 이를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은 또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선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려서”라고 답했다. 이임생 기술이사를 만난 뒤 밤새워 고민했다는 홍 감독은 “10년 전 브라질월드컵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했다.

홍 감독은 “예전에 실패했던 과정과 그 후 (비난받은) 일들은 너무나 끔찍했다. (브라질월드컵 실패의 기억 때문에) 도전하는 게 두려웠다. 답을 내리지 못했다”면서도 “결과적으로 내 안의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강한 승부욕이 생겼다. 새 팀을 정말로 새롭게 만들어서, 정말 강한 팀으로 만들어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엔 경험이 많이 부족했고, 축구 지도자로서 시작하는 입장이었다”면서 “그동안 K리그에서 경험을 많이 했다. 지도자로서 굉장히 좋았던 시간을 보냈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울산 팬들에게는 죄송하고 드릴 말씀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는 영상을 올려 논란을 일으킨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 박주호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원을 감싸는 입장도 보였다. 박주호 위원은 홍 감독 선임 과정이 절차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일부 전력강화위원들은 국내 지도자를 선임하는 쪽으로 몰아갔다는 내용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폭로했다. 그러자 대한축구협회는 “박 위원이 비밀유지 서약을 어겼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홍명보 감독은 “(박 위원이) 전력강화위 안에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얘기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주호 위원의 말이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제는 그것도 포용해서 더 나은 한국 축구를 향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때 박주호를 지도한 인연이 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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