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에서 미장으로...머니 대이동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4. 7.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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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스타 기업 즐비…韓은 초단타 횡행
올 들어 美서 10조 사고 韓서 8조 팔아

“나스닥은 신(神)이다.”

“국장은 답이 없다.”

“물리더라도 미국에서 물려야 한다.”

최근 주식 투자자 사이에선 이런 말이 흔히 나온다. ‘국장(한국 증시)’ 대신 ‘미장(미국 증시)’을 선호하는 개미 투자자의 패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향후 국내 투자 문화를 이끌어갈 대학생에게서도 미국 선호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투자증권이 국내 대학생 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 투자 동향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72%가 ‘해외 주식에 투자 중’이라고 답했다. 투자 지역은 미국(86%)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30세대가 미국 증시를 선호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부모 세대는 해외 투자 시스템이 구비돼 있지 않고 정보에 어두워 한국 주식 시장 너머를 바라보지 못했다. 반면, 젊은 층은 방대한 해외 정보를 토대로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다. 한편, 국내 기업 실적 하락, 외국인·기관을 쫓지 못하는 정보 비대칭, 금융투자소득세 등 각종 규제 등이 ‘국장’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지난 4월 19일 AI(인공지능) 랠리를 이어온 엔비디아가 하루 새 10% 폭락했다. 상승세를 타던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2조달러 아래로 미끄러지자, 월가에서는 ‘오를 만큼 올랐다’며 조정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 같은 비관론을 단박에 깨버린 건 ‘실적’이다. 지난 5월 엔비디아가 1분기(2~4월) 실적을 발표하자마자 시장은 환호성을 질렀다. 결코 낮지 않은 시장 기대치(246억달러)를 넘어서는 매출을 기록했고 주가가 뜨겁게 반응했다. 이후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3조달러를 넘어서며 승승장구했다. ‘주가는 실적의 함수’라는 자본 시장의 오랜 투자 원칙대로 움직였다.

AI라는 ‘넘사벽’ 테마가 부각돼서만은 아니다. 전통·신사업을 막론하고 실적에 따라 주가가 움직이는 사례는 미국에서 흔하다. 의류 기업 아베크롬비의 1년 전 주가는 26달러였다. 7월 3일 기준 주가는 183달러로 무려 7배가 뛰었다. 아베크롬비는 지난해 미국에서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기업 중 하나다. 주가가 오른 이유는 매 분기 기록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다.

올해 개인 투자자들이 ‘국장(국내 증권 시장)’에서 ‘미장(미국 증권 시장)’으로 물밀듯 빠져나간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보유액은 130조원을 돌파했다. 이 중 미국 주식이 90%다. 연초 이후 개인 투자자는 10조원 가까이 순매수한 반면, 한국 증시에서는 8조원가량을 매도했다.

이 같은 트렌드는 젊은 층에서 더 뚜렷하다. “투자에 활발한 2030세대 5명 가운데 4명은 한국 주식 시장에 대한 투자를 기피한다”는 조사(매일경제·어피티 4월 조사)가 이를 말해준다.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 증시는 발버둥을 쳐도 오르지 않는데, 미국 증시는 실적이 따라주면 주가가 충분히 반영한다. JP모건자산운용에 따르면 최근 10년(2014~2023년) 동안 한국 지수는 연평균 3.6% 상승했다. 미국(12%)이나 일본(5.3%) 등과 비교해 격차가 크다. 10년 평균 수익률이 3%대라면 그냥 예금에 돈을 넣는 편이 낫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주식 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개미 투자자들은 “미국은 예측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에서는 ‘잘나가는(실적 향상이 예상되는)’ 스타 기업을 찾기 쉽고, 주가가 실적 상승을 반영한다. 과거 테슬라라는 기업이 글로벌 증시를 이끌었듯, 최근 엔비디아·MS(마이크로소프트)가 AI 시대를 이끈다.

지난해 코스피 이익 성장 22%

주가는 19% 상승에 그쳐

한국에서는 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를 주도하는 SK하이닉스가 선전하고 있지만 AI 시대를 이끈다고 평가하기 힘들다. 게다가 그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도해온 삼성전자는 HBM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며 한국 증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코스피 시총 21%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지 못하면 코스피 반등은 사실상 힘들다. 삼성전자 부진과 함께 한국은 G20 국가 중 고점을 경신하지 못한 7개국(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 중국, 이탈리아, 사우디, 브라질) 중 하나가 됐다.

게다가 한국은 기업이 이익을 내도 주가는 뜨뜻미지근하다. 지난해 코스피 이익 성장률은 22%였는데 주가 상승률은 19%에 불과했다. S&P500 이익 성장률이 6%였는데 주가가 24% 뛴 ‘미장’과는 대조적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주가 조작이나 대주주의 갑작스러운 매도, 임직원 횡령배임 사건 등은 ‘K-증시 패싱’을 부른다.

지난해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된 상장사는 15곳이다. 특히 지난해 4월 라덕연 일당은 2~3년에 걸쳐 주가를 최대 20배 가까이 끌어올리는 신종 기법으로 투자자를 황당하게 했다. 주가 조작이 훑고 지나간 종목은 줄하한가 사태가 이어졌고, 그 피해는 온전히 개미들이 떠안게 됐다.

반면 미국 증시는 시장 규모가 큰 데다 작전꾼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 세력이 활동하기 쉽지 않다.

또한 한국에서는 내부자나 기관 투자자들이 좋은 실적을 먼저 알고 선매집한 뒤 실적 발표 뒤 주가가 되레 하락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주가는 실적의 함수’ 대신 ‘뉴스에 팔라’는 말이 한국 시장에서 더 잘 통한다.

금융투자소득세 논란 역시 K증시를 외면하게 하는 요인이다.

한 30대 투자자는 “미국 증시에 왜 투자하냐고 물어볼 일이 아니라 한국 증시를 왜 고집해야 하냐고 반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경쟁력, 성장성, 주가 예측 가능성, 공정성 등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며 “한국의 유일한 강점은 세금 제도였는데, 금투세를 부과하면 이마저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7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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