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보다 기대수익률 낮은데 굳이…매력 떨어지는데 유인책도 부족
한국 증시 이탈 현상을 가볍게 봐서 안 되는 이유는 시장 트렌드에 밝은 젊은 투자자가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경제 성장동력이 부족하고 미국 증시에 비해 기대수익률도 낮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지는데 각종 규제까지 더해지며 투자자를 끌어당길 유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주가 조작 사태도 한국 증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에선 이익 내도 ‘글쎄’
한국 증시가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에 비해 낮은 기대수익률이다. 수익을 거두기 위해 주식에 투자하는 투자자 입장에서 더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시장으로 옮겨 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특히 저축으로는 미래 대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에게 높은 기대수익률은 무엇보다 중요한 잣대다.
‘주가는 기업 이익의 함수’라는 표현이 국내 증시에서는 잘 성립되지 않는다. 실제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 기업의 전년 대비 이익 성장률은 22%다. 반면 이 기간 주가 상승률은 19%에 그친다. 미국은 다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의 이익 성장률은 6%로 코스피 기업의 이익 성장률에 못 미친다. 그런데 주가 상승률은 24%로 코스피 상승률을 웃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이 같은 현상은 반복됐다. 올 상반기 코스피 기업 이익 성장률은 13%인데, 주가 상승률은 5%에 불과하다. 반면 S&P500 기업 이익 성장률은 7%, 주가 상승률은 15%다. 올 상반기 코스닥 시장 수익률은 -2%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기업 이익이 주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뜻은 그만큼 투자 난이도가 높다는 의미다. 기업 실적 외에도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바뀌는 정책이나 장기간 국내 증시 발목을 잡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 장기적 증시 부양을 위해 넘어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기업 이익이 온전히 주가로 이어지지 않는 배경이다. 이 같은 이유로 국내 증시는 그동안 장기 우상향곡선을 그리지 못했다. 최근 10년 누적 코스피 수익률은 40%다. 반면 이 기간 나스닥과 S&P500은 각각 300%, 180%씩 상승하는 성과를 거뒀다. 2021년 말 고점과 비교해도 나스닥과 S&P500이 각각 11%, 14% 오르는 동안 코스피는 오히려 15% 하락했다.
최근 미국 증시 성장세를 경험한 젊은 세대에게 이른바 ‘박스피’로 불리는 국내 증시가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증시는 미국 증시와 달리 그동안 장기 우상향 패턴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젊은 세대도 각종 콘텐츠를 통해 미국 증시의 장기 우상향 흐름을 잘 알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 정도 수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에 투자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죽 쑤고 ‘노잼’ 중간재만
젊은 세대가 국내보다 미국 증시를 선호하는 현상을 단순히 생각하면 투자할 만한 종목이 미국에 더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애플, 테슬라, 엔비디아 등 두드러지는 성장세를 보이는 기업이 계속해서 나온다. 모두 글로벌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떠오르는 혁신 기업이 마땅치 않은 현실이다.
기술 혁신의 차이가 벌어지는 배경은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비롯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2022년 세계 R&D 투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R&D 투자 상위 2500개 기업 중 미국 기업은 827개다. 2013년 804개보다 늘어났다. 반면 2500개 기업 중 한국 기업은 47개에 그친다. 특히 매년 이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고조된다.
2013년 한국 기업은 80개가 상위 2500곳에 속했다. 이후 10년 사이 40% 이상 감소했다. 중국 기업은 2013년 199개에서 2022년 679개로 3배 이상 늘었다는 점에서 국내 R&D 투자 기업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R&D 투자 기업이 줄어들수록 혁신 기술 도입은 해외와 비교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실제 아이폰이나 챗GPT 등 혁신을 주도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미국에서는 끊임없이 나온다. 반면 국내에서는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소비자에게 최종 전달되는 최종재를 만드는 기업도 있지만, 국내 상장사 중 다수가 중간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점도 젊은 세대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혁신 기술 등장은 기업 이익으로 이어지고 미국 증시에서 기업의 이익 성장은 곧 주가에 연동된다. 과거 인텔, 애플, 테슬라 등이 기술 혁신을 통해 주가 상승을 이뤄냈다.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다. AI 시대 필수적인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는 지난해 매출 609억달러, 영업이익 329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125%, 311%씩 증가했다. 주가도 지난 1년간 246% 상승했다. 올 상반기에도 100% 이상 주가가 치솟았다. 반면 국내에서는 투자자를 사로잡을 혁신 기업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가 그나마 주식 시장에서 반응하는 모양새다. 그마저도 엔비디아 주가 상승폭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다. 올 상반기 SK하이닉스 주가 상승률은 67%다.
“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기업은 미국에 비해 선명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AI 트렌드가 등장했을 때 미국은 오픈AI에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 반도체 시장에서 독점력을 갖춘 엔비디아 등 투자할 기업이 선명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AI 트렌드를 주도할 기업인지 판단하기 애매하다. 한국은 특정 트렌드를 이끄는 기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에서 분사하는 방식으로 트렌드를 따라가는 구조다. 혁신 기업이 등장하기 구조상 쉽지 않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의 분석이다.
3. 단타 위주 국장, 2030에 안 맞아
퇴직연금 계좌로 굴리는데 장투 어려워
성장성 있는 종목이나 테마에 투자하려는 젊은 투자자 성향과 미국 증시의 장기 우상향 흐름이 맞아떨어지며 국내 증시 이탈은 더욱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실제 국내 증시에서는 단기 투자가 수년간 성행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당일 매매(데이트레이딩) 비중은 코스피 40%, 코스닥 55% 정도 수준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코스피 데이트레이딩 비중은 45%, 40%, 38%, 41%로 나타났다. 이 기간 코스닥 데이트레이딩 비중은 56%, 54%, 54%, 56%였다. 올해 상반기에도 데이트레이딩 비중은 코스피에서 40%, 코스닥에서 57%에 달한다. 거래 절반가량이 당일 매수와 매도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단기 투자가 성행하면 시장 변동성이 커진다. 이는 장기 투자 유인을 사라지게 만들어 다시 단기 투자를 유도하는 악순환에 빠뜨린다. 특히 국내 증시에서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최근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돈은 빠져나가고 외부 자금은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내부 자금이 여러 테마를 옮겨 다니면서 쏠림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 자연스레 장기 투자에 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지면서 결국 단기 투자가 상대적으로 성행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대주주만 챙기나”…찔끔 배당도 불만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는 엑소더스급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수 전문가는 금투세가 시행되면 세후 기대수익률이 낮아져 투자 심리가 위축될 것으로 내다본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 투자로 얻은 소득이 1년간 합산 5000만원을 넘으면, 수익의 22%(3억원 초과분은 27.5%, 지방소득세 2% 포함)를 양도소득세로 걷는 제도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대거 유입된 젊은 세대 이탈이 무엇보다 문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주식 소유자는 2019년 618만명에서 지난해 1415만명으로 최근 5년간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20대와 30대의 주식 보유 금액은 2020년 한 해만 각각 120%, 92%씩 빠르게 늘어나며 다른 세대에 비해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금투세 도입은 최근 유입된 젊은 세대의 국내 증시 이탈 현상을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안 그래도 매력이 떨어지는 국내 증시에 투자할 유인이 더욱 낮아지면서 젊은 투자자 자금이 급속도로 미국 증시로 몰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금투세 도입으로 인해 세후수익률 하락을 경험한다면 굳이 마음고생하며 국내 주식 시장에 투자할 유인이 더 없을 것”이며 “결국 자금 엑소더스가 불가피하고 해외 주식 시장 또는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유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역시 정부의 증시 부양책인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을 위해 세제 혜택을 강조한다. 상속세와 증여세 등 세금 부담을 낮춰 경영권 승계 부담을 줄이고, 주주환원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 때문에 기업이 주주환원을 강화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개인의 자산 증식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 요구와도 맞아떨어진다. 자본 시장에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는 과거와 비교해 주주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기업은 대주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해왔다”며 “과거 세대에서는 오너십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자기 재산 증식이 중요한 요즘 젊은 세대는 오너십을 인정하기보다 주주 가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크게 낸다”며 “낮은 배당에 불만을 가진 젊은 투자자가 많다”고 덧붙였다. 결국 기업들이 주주환원을 자발적으로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향후 밸류업 프로그램 관건은 기업이 주주환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센티브 관련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끊임없는 주가 조작…패시브 악영향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주가 조작 사태도 국내 증시를 외면하는 이유다. 주가 조작은 가뜩이나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떨어지는 시장에서 투자자 신뢰까지 한 번에 떨어뜨리는 악재다. 지난해 국내 증시는 혼돈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4월 이른바 ‘라덕연 사태’로 불리는 주가 폭락 사건이 발생했다. 하반기에는 영풍제지 관련 종목이 급락하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주가 조작에 휘말린 상장사 대부분이 사건 발생 직전과 비교해 주가가 70% 이상 폭락했다.
이처럼 주가 조작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내 증시 신뢰도는 곤두박질친다. 국내 증시는 시장 호재나 악재보다 오히려 ‘주가 조작 등 불공정행위’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투자자 커뮤니티에서 “국내 증시는 작전 세력 장난이 너무 심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국내 증시에서 주가 조작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로 작은 시장 규모가 거론된다. 한국 주식 시장 전체 규모가 미국 개별 종목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 증시에는 우리나라 주식 시장 전체 시가총액보다 규모가 큰 기업이 무려 6곳이나 있다.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수급에 따른 변동성은 더욱 확대되고, 투자자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거래량이 적은 종목일수록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진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 주식 시장은 규모가 커서 작전 세력이 활동하기 쉽지 않지만 규모가 작은 국내 증시는 주가 조작에 취약한 편”이라며 “자칫 잘못하면 국내 주식 투자자는 작전 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상장지수펀드(ETF) 매수 시스템과도 연결된다. 젊은 세대의 ETF 투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런데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ETF의 경우, 종목 거래량이 늘고 주가가 지속 상승하면 알고리즘이 이를 포착해 자동 매수하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ETF 매수세 유입으로 특정 테마가 주목받으면, 시시각각 종목을 바꿀 수 있는 액티브 ETF 자금도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소수 세력에 의해 거래량이 늘고 주가가 높아지기 시작했다면, ETF 투자자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구조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제기된다. 주가 조작에 이용되는 종목은 대부분 대형주가 아니라 거래량이 적은 중소형주다. 그런데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중소형주까지 모두 커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도권에서 종목을 관리하지 못하면 그 종목은 비제도권 영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리서치센터가 담당하는 국내 종목은 증권사별 120~150개 정도”라며 “그 외 종목은 기업가치에 대한 의견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가 적정 주가 수준을 분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비제도권 영역으로 넘어간 종목이 현재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증권사에서 담당하지 못하는 종목은 주가 조작 세력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정보 노출에 취약하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소셜미디어(SNS)에 밝은 젊은 세대는 유튜브, 텔레그램, 카카오톡 등 다양한 채널에서 정보를 찾는다. 그러나 SNS에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도 상당하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주식 추천 메시지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온다”며 “각종 SNS에서 활동하는 젊은 세대는 이 같은 불확실 정보에 더욱 많이 노출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정확한 정보도 많지만 정보의 정확성을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가 갖고 있지는 않다”며 “특정 주식을 추천하는 메시지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이 비교적 관대하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다. 반면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해 100년 이상 징역형도 가능하다. 강력히 처벌하지 않으니 주가 조작을 더 쉽게 생각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극단적으로는 경제사범이 수년간 수감 생활을 감수하더라도 주가 조작으로 수십억원 차익을 내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의 증권거래법은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의결 내용을 공시하는 비금전적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경제사범을 처벌할 제도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꼬집었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7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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