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최악의 해’…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됐다

문정임 2024. 7. 1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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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한 도시, 제주 숲 프로젝트②]
사소하지만 중요한 도시의 문제들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서 한 주민이 밖으로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 사진은 일반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과 열화상 카메라 모듈로 촬영한 사진을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편집해 한 장으로 표현했다. 연합뉴스

편집자주
도시가 달군 팬처럼 뜨겁다. 여름은 이제 시작인데, 낮 기온은 30도를 웃돈지 오래다. 그래도 거리에 나무가 있어 사람들은 잠시 숨을 돌린다. 한여름 가로수는 도시의 휴식처다. 여러 겹의 가지가 촘촘히 햇빛을 막고, 시원한 공기를 내뿜어 주변을 쾌적하게 한다. 사람을 걷게 하고, 폭염과 폭우가 주는 충격을 완화한다.

제주도가 나무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민·기업과 손 잡는 방식으로 녹지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국민일보는 달라진 제주도 도시숲 정책을 취재했다. 우리보다 앞서 기후 변화를 경험한 호주 멜버른의 고민과 이 도시의 녹지정책도 함께 살펴본다.


여름이 길어지고 더위가 강해지면서 사람들은 큰 불편과 열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 제주도가 도시 녹지정책에 민관 협력 방식을 도입한 것은 폭염·폭우와 같은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도시에 그늘이 절실해졌다. 제주도는 시민 참여를 통해 가로수 등 공공녹지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도시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유지에 녹색 공간을 늘려 생활권 도시숲 총량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주도의 이 같은 노력은 사소하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 도시가 건강성 확보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호주 멜버른도 불과 15년 전까지 도시녹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상 최악의 화재와 장기간 이어진 가뭄, 전례 없는 폭염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도시의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호주 멜버른 시내.


2009년 호주는 최악의 해를 보냈다.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밀레니엄 가뭄’이라고 불린, 전례 없는 건조한 환경이 지속됐다. 연간 강수량이 예년의 절반에 불과했다. 용수공급을 의존해 온 댐 저수량은 40% 밑으로 떨어졌다. 일부 수계는 건조함을 견디다 못해 바짝 말라버렸다. 정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해수 담수화 설비 등 대체 수자원 확보에 나섰지만, 주요 도시에 용수 사용 제한이 시행될 만큼 많은 지역이 심각한 물 부족에 직면했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힐즈버그에서 현지 소방관들이 불길이 번지는 산비탈 쪽을 향해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없음. 연합뉴스


2009년 1월 호주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호주 제2의 도시이자 빅토리아주의 주도인 멜버른의 기온은 1월 30일과 2월 7일 45도까지 치솟았다. 평년 최고기온보다 20도가 높았다. 이해 여름 빅토리아주에선 폭염으로 374명이 사망하고, 500명이 부상했다.

같은 시기 역사상 최악의 산불도 발생했다. 2월 7일부터 3월 14일까지 동시다발적으로 40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했다. 불은 5주간 지속됐다. 섭씨 40도가 넘는 고온과 강한 바람은 화재 진압을 더욱 힘들게 했다. 이 불로 173명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다. 피해면적은 최소 34만㏊에 달했다. 서울의 6배다. 빅토리아 주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09년 빅토리아 산불은 여러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발생했다. 기후 변화도 주요한 원인이었다.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앞으로 멜버른 시민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역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최초 도시숲 전략 마련

2009년 재해는 당장 지역사회를 움직이게 했다. 멜버른 시는 여러 보고서 검토를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녹색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시는 가로수 수령과 병충해 감염 등 도시녹지 상태를 진단하고, 2년간 시민·의회·전문가 등 도시 각계 의견을 수렴해 2012년 멜버른 시 최초의 도시숲 전략인 ‘Urban Forest Strategy, 2012~2032’를 확정했다.

멜버른 중심업무지구.


암울한 진단

멜버른 시는 시가 직면한 도전과제를 기후 변화·인구 증가·도시 가열 세 가지로 판단했다. 호주기상청 등 여러 기상 기구는 호주에 폭염과 가뭄이 빈번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멜버른 시의 계속 늘어 나는 인구는 도시 열섬현상을 더욱 가속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예측됐다.

도시에는 당장 시원함을 제공할 그늘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무를 늘리는 대책만으로는 부족했다. 앞서 발생한 장기 가뭄과 물 제한으로 도시의 많은 가로수가 쇠퇴한 상태였다.

시는 도시숲 상태를 진단했다. 진단 결과 종 다양성이 부족하고, 많은 나무가 노령화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총 7만 그루 나무 가운데 버즘나무·느릅나무·유칼립투스 계열이 43%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무의 균일성은 도시에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지만, 외부 위협에는 취약하다.

멜버른 시에는 버즘나무가 가장 많다. 공립도서관 근처 거리의 버즘나무 가로수 모습. 가을이라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


이미 멜버른에서 확인된 ‘머틀 러스트(Myrtle Rust)’라는 곰팡이병은 멜버른 시내 유칼립투스 나무 전체의 45%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느릅나무는 나무끼리 뿌리를 접목하는 특성이 있어 질병 발생 시 균을 빠르게 퍼뜨릴 수 있다. 멜버른 중심업무지구 가로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버즘나무는 극심한 더위에 약한 수종이었다.

멜버른의 많은 나무가 100년 이상 노령화했다는 점도 취약 요인으로 판단됐다. 이대로라면 10년 이내에 멜버른 시 전체 나무의 27%, 20년 이내에 44%가 사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특히 느릅나무는 절반 이상이 심각한 쇠퇴 상태에 있어 향후 10년 이내에 제거되어야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진단과 전략

이 같은 진단과 전망을 토대로 멜버른 시는 4가지 주요 전략을 수립했다. 캐노피(canopy) 확대, 식생 개선, 토양 수분 유지, 지역사회와 소통 확대다. 캐노피 비율은 전체 토지에서 나무 그늘이 차지하는 물리적 범위를 말한다.

2011년 당시 멜버른 시의 공공 및 민간 영역 캐노피 덮개는 11%(공유지의 22%, 사유지의 3%)로 추정됐다. 이는 89%의 공간에 그늘이 없음을 뜻했다. 시는 22%의 공유지 캐노피 비율을 2040년까지 4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건강한 도시숲을 유지하기 위해 종 다양성 확보도 시급했다. 시는 도시숲의 모든 나무를 ‘전체 동일 종(種) 5% 이하, 동일 속(屬) 10% 이하, 동일 과(科)의 20%’ 이하로 유지하겠다는 기준을 세웠다. 정기적으로 나무를 심어 수를 늘리되 수종을 통계적으로 선정하겠다는 뜻이다.

매년 모든 나무에 대해 건강검진을 시행하고, 정기적인 물주기를 통해 나무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수분 공급은 강수량이 적은 호주 모든 지자체의 공통된 고민이다. 멜버른 시는 나무 성장기 동안 토양의 사용 가능한 수분 함량이 5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빗물이 잘 스며들도록 식수대 구조를 개선하고, 중앙분리대나 화단 지하에 빗물 포집 구조물을 설치해 주변 가로수에 제공하는 방법,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투수성 표면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도입하기로 했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은 도시숲 확충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시는 시민들이 도시숲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역할과 기회를 만들고, 시민들이 건축물 녹화를 실행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와 도구를 개발해 제공하기로 했다.

멜버른=글·사진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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