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차선 바꿔" 금리인하 깜빡이 켰다…韓 피벗 시점은
‘피벗(Pivot·통화 정책 전환)’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긴축 정책 변경 가능성을 시사하자, 한국은행도 이에 화답하듯 금리 인상 이후 처음 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가계대출과 환율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어 한국의 인하 시점은 안갯속이다.
3년만 첫 금리 인하 언급…“차선 바꿨다”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3.50%)에서 동결했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해 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1년 6개월 가까이(12회 연속) 금리를 묶어두고 있다. 기존 역대 최장 기록인 1년 5개월(2016년 6월 9일~2017년 11월 30일)을 넘어 섰다. 기준금리 동결 결정은 일부 예상과 달리 소수 의견 없이 금통위원 전원일치로 결정됐다.
다만 지난 5월 금통위와 달리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등 분위기는 바뀌었다.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물가 상승률 안정에 많은 진전이 있었고,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도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에 향후 적절한 시점에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5월에는 깜빡이(금리 인하 신호)를 켠 것이 아니라 금리 인하 준비를 위해 차선을 바꿀지 말지 고민하는 상태였지만, 현 상황은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금리 인하)을 할 준비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7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통방문)’에서도 “기준금리 인하 시기 등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한은이 총재의 공식 발언이나 통방문에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 이후 약 3년만에 처음이다. 금통위 내에서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이른바 ‘비둘기파(통화 완화 정책 선호)’ 의견도 지난 5월 대비 이달 1명→2명으로 늘었다. 사실상 금리 인하 쪽으로 한은이 ‘한 스텝’ 옮긴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파월 “금리 인하 장애 없어져”…이창용 “물가만 보면 인하”
한은이 피벗을 위해 ‘차선’을 바꾼 배경에는 미국의 통화 정책 기조 변화와 물가 상승률 안정이 있다. 실제 5일(현지시간) 발표한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은 4.1%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오른 것은 물론 예상치인 3.9%를 웃돌았다. Fed가 중시하는 물가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도 5월 들어 전년 같은 달 대비 2.6% 오르며, 목표치(2%)에 수렴해 가고 있다.
이에 10일(현지시간) 파월 Fed 의장은 “(물가 등) 금리 인하 장애물이 없어졌다는 데 대한 어느 정도 확신이 있다”면서 “금리 인하를 고려하기 전에 물가 상승률이 2%로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그동안 ‘2% 둔화 확신 있어야’ 금리 인하를 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왔기에, 시장에서는 9월 금리 인하 기대감이 한껏 고조됐다. S&P 500과 나스닥 지수는 각각 전 거래일보다 1.02%, 1.18% 오르면서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 11일 오후 5시 기준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가 예상한 Fed의 9월 기준금리 인하 확률을 70%다.
미국 못지않게 한은도 물가 상승률 둔화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2.4%까지 떨어졌고, 같은 시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2.2% 오르는 데 그치며 목표 물가(2%)에 근접했다. 이날 이 총재도 “물가 안정만 놓고 보면 금리 인하를 논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했다.
가계대출·환율 변수 “시장 기대 과도해”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의 ‘시기’다. 금리 인하를 위한 전제 조건들이 맞춰져 가고 있지만, 아직 불안 요소는 남았다. 특히 최근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점은 한은의 가장 큰 골칫거리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전월 대비 6조3000억원 늘어나며 올해 들어 가장 큰 증가 폭을 나타냈다. 상반기(1~6월) 누적 증가액은 3년만에 최대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조기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경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에 성급한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고 본다. 11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자 간담회에서 “지금 부동산 가격 상승은 추세적 상승 전환은 아니리라 확신한다”면서 “한국 경제와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문제들이 (현재 부동산 시장을) 몇십%씩 상승시킬 힘이 없다. 지역적·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잔등락”이라고 했다. 이 총재도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오르는 속도가 지난달과 7월에 생각보다 빨라져서 유심히 보고 있다”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고, 이 기대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환율 불안도 변수다. 최근 달러 대비 원화 값은 1400원에 육박할 정도로 떨어져(환율은 상승) 있다. 이미 최대 격차로 벌어진 한·미 금리 차(2%)가 한은의 금리 인하로 더 벌어지면 원화 값 하락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를 내릴 만큼 경기가 나쁘다고 인정해버리면, 자본유출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짚었다.
美 피벗, 대출 규제가 先조건…인하 9월 이후로 밀릴 듯
이 때문에 실제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려면, 미국이 먼저 금리를 내리고 난 뒤 가계대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시장 예상대로 9월에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린다면, 한은의 인하 시점은 빨라도 10월 금통위가 돼야 가능하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이 준비하고 있는 대출 규제인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이 9월로 밀렸다는 점도 한은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추는 부분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DSR 예외 적용을 줄인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DSR 2단계를 시행한 것도 아니다 보니 한은은 금리 인하로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국 금융안정 측면에서 가계대출 문제를 해결해야 한은이 금리 인하로 방향을 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남준·오효정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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