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가, 배 한 척에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들어 있는지
[민종원 기자]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이 땅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삶에서 소중하지 않은 삶이 있을까싶다. 코앞에서 보면 그 크기에 압도당하는 큰 배 한 척을 만드는 일에 힘을 모으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소중한 삶을 잘 보여준다.
진해와 거제도, 그 곳에는 조선소가 있다. 거기서 LNG선, 바지선, 드릴십선 등등 여러 배가 만들어진다. 조선소 그곳에는 당연히 노동자들이 있다.
배를 이루는 각 블럭들을 연결하는 용접, 각 공정마다 생길 수 있는 사고 가능성을 앞서 제거하기 위해 작업 현장 곳곳을 누비는 화기·밀폐감시, 배가 바닷물에 부식되는 것도 막고 배를 튼튼하게 하며 아름다운 외관도 만들어주는 도장, 노동자들이 배 제작 중에 곳곳에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발판, 수많은 조선소 노동자들의 일을 더욱 빛나게 하는 급식, 세탁 등등 조선소에서 배 한 척이 만들어지는 데는 많은 노동자의 노동과 협력이 스며있다.
배 한 척에 얼마나 많은 삶이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라
▲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앞표지 |
ⓒ 코난북스 |
이 책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는 진해와 거제도의 조선소 여성노동자 11인의 구술을 정리하여 기록한 책이다. 조선소는 어느 일 하나 위험하거나 힘들지 않은 일이 없는 대표적인 곳이다. 오랫동안 남자들이 많이 해왔기에 여성 노동자를 보기가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조선소의 많은 노동자들은 남자인 경우가 많다.
많은 남성 노동자들이 누비고 다니는 조선소에도 여성노동자들은 있다. 중요한 것은 여성노동자들이 배 한 척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노동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 조선소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듣기 쉽지 않다. 조선소의 여성노동자 11인의 구술을 담아낸 이 책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는 그래서 나오게 되었다.
그렇다, 조선소의 노동은 그 어떤 노동보다 '사나운 곳'에서 하는 노동이다. '사나운' 곳에서 '사나운' 노동을 하는 이들 중에 남자만 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사나운' 노동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이들 중에 여자도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이 이 책에 가득 담겨 있다.
땀 흘리며 온 힘을 다하는 육체 노동을 통해 사람은 종종 삶의 무게와 깊이를 느끼곤 한다.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그러한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한 번 더 말해두고 싶은 것은 그들 조선소 노동자들의 일과 삶 중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적다는 것이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는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하고 김그루, 박희정, 이은주, 이호연, 홍세미가 조선소 여성노동자 공정희, 김순태, 김영미, 김지현, 김행복, 나윤옥, 박선경, 이현주, 전은하, 정수빈, 정인숙의 구술을 기록하여 나온 책이다. 진해 케이조선(구 STX조선)과 거제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11인 거제도 조선소 노동자들이 펼쳐낸 조선소 이야기 그리고 조선소 노동자들 이야기가 여기 있다.
공정희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뱃심을 채워주는 급식노동자이다. 김순태는 작업의 끝과 시작에서 배를 청소하는 청소노동자이며 김행복은 조선소 사무실 건물의 청결을 책임지고 있는 미화노동자이다. 김영미는 노동자들의 작업복이며 수건을 각각 하루에도 수천 개를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세탁 노동자이다. 김지현은 배 한 척을 이루는 각 블록을 옮기는 데 필요한 연결고리인 러그가 잘린 부분들을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밀링 노동자이다.
나윤옥은 조선소 노동자들의 길이 되어 주고 발이 되어주는 일을 하는 비계 발판 노동자이다. 박선경과 이현주는 곳곳에 위험 요소가 가득한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화기*밀폐 감시 분야의 노동자이다. 전은하는 조선소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대표적인 일인 용접 노동자이다. 정수빈과 정인숙은 철에 색을 입히고 배를 아름답게 하는 일을 맡은 도장 노동자이다.
힘들고 위험해도, 조선소 현장에는 노동자 그들의 삶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2024년 1월 현재 한화오션 정규직은 8594명(사무직 3777명, 현장직 4817명)이고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경우에는 사무직이 2116명이고 현장직이 이주 노동자 3천 여명을 포함하여 1만 6354명이다.
진해 케이조선에서 일하는 정규직 사무직 노동자의 6퍼센트, 비정규직 현장직의 15퍼센트가 여성인 것을 감안할 때 한화오션의 여성노동자 비율을 비슷한 수준 내외로 가늠해볼 수 있다. 조선소 일들을 생각해볼 때 여성노동자 비율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기도 하고 그 힘든 일들을 하는 노동자들 중에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 노동자 곧 하청노동자들이라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용접, 사상, 밀링, 도장, 발판, 밀폐 감시, 화기 감시, 현장 청소, 건물 미화, 급식, 세탁 등등 조선소에서 배 한 척이 만들어지는 데는 놀라운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장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많은 노동이 담겨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기도 하다. 여성노동자 11인의 노동과 삶의 무게 역시 다르지 않으며 여성노동자 그들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없기에 이 책은 더욱 소중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10만여 명의 노동자들을 내보내는 등 불황의 10년을 보낸 조선소는 이후에 다시 조선소 재도약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숙련된 기술에 걸맞은 대우를 밪지 못하는 숙련노동자들의 낮은 복귀율과 높은 이탈율, 외국인노동자 비율의 상승, 젊은 노동자의 낮은 비율 등 여러가지 변화와 고민들도 함께 보여주었다.
김행복 조선소 안 다니는 사람들은 조선소하면 용접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하더라고요. 배 만드는 걸 간단히 설명하면 쇠를 잘라갖고 용접으로 붙이는 거지. 배를 만들기 위해 사실 그 외에 많은 일을 해야 해요. 도장도 있고 절단, 사상, 밥 하는 사람 있고, 세탁 하는 사람 있고 다양하게 많잖아요. 이 책을 읽고 배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하는지를 알면 좋겠어요. 배 한 척 만드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책, 286쪽, '집담회'에서)
덧붙이는 글 |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11인 조선소 노동자의 구술과 김그루 외 4인의 기록. 서울: 코난북스, 2024.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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