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 때 배운 것 없냐"던 일침이 무색…당사자 된 홍명보 감독 "난 시스템 알 수 없다"

조효종 기자 2024. 7. 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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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조효종 기자= 홍명보 감독이 남자 축구대표팀행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한축구협회(KFA)는 7일 5개월여 동안 지속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후임 물색의 결과물로 홍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8일 막바지 감독 선임 과정을 주도한 이임생 KFA 기술총괄이사가 선임 배경을 전했으나 납득할 수 없는 설명에 비판과 의혹만 커졌다. 감독 물색에 참여한 박주호 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이 선임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는 영상을 올리고 KFA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며 파장이 이어진 가운데 10일 홍 감독이 울산HD 소속으로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현장에서 처음 입을 열었다.


홍 감독의 대표팀행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은 여러 가지인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KFA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정해성 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사퇴했다고 기술총괄이사인 이 이사가 해당 업무를 이어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이 이사가 전력강화위가 후보로 정해 면접까지 보고 온 감독들을 평가 보고도 없이 자의적으로 배제한 뒤 홍 감독에게 감독직을 곧장 '제안'했다는 것은 시스템에 의한 선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따져볼 필요 없는 상황인 것도 아니었다. 이 이사는 브리핑에서 외국인 감독들이 한국 감독직에 진심이었다고 직접 말했다.


최근 계속 언급되는 '감독 선임 시스템'은 파울루 벤투 감독을 뽑을 당시 이뤄졌던 감독 물색 및 선임 프로세스를 뜻한다. 최종 결정 후 감독 선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았다는 데서 호평을 받았다. 결과적으로도 팀 벤투는 카타르 월드컵 16강이란 성과를 냈다. 당시 KFA에서 해당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행한 인물이 김판곤 전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과 당시 전무이사로 재직하던 홍 감독이었다.


김판곤 당시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정몽규 회장, 홍명보 당시 전무이사(왼쪽부터, 이상 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제공

벤투 감독의 후임으로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했을 당시 시스템이 붕괴됐다는 의혹이 일었다. 클린스만 체제가 실패로 마무리된 이후 KFA는 다시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했는데, 정 위원장 체제 전력강화위도 급하게 정식 감독 선임을 시도한 것을 시작으로 유력 후보와 협상 실패, 임시 감독 선임 반복 등 난맥상을 보이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것인지 의심을 받았다.


이때 홍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클린스만 감독 시기를 거치면서 무엇을 학습했나"라고 공개적으로 KFA를 꼬집었다. 시스템과 그에 따른 성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홍 감독의 '따끔한 일침'이었다.


약 열흘이 지난 시점, 홍 감독은 무너진 것으로 보이는 시스템의 선택을 받은 입장이 됐다. 그리고 처음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시스템이 무너진 꼴 아니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은 "(전력강화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들었다. 시스템이 어땠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였다.


홍 감독이 대표팀으로 떠나는 방식에도 비판점이 있다. 지난 2월 새 전력강화위가 출범했을 때 정 전 위원장이 첫 브리핑에서 국내 감독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을 때부터 홍 감독은 유력 후보군으로 분류됐다. 'K리그 현직 감독 빼가기'라는 비판이 커지자 전력강화위는 한발 물러나 일단 임시 체제를 선택하고 외국인 감독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홍 감독은 타의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불편함을 나타냈다. 6월 A매치 이후 재차 높은 순위의 후보로 거론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팬분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홍명보 감독. 서형권 기자

이 이사와 홍 감독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대외적으로 확고해 보였던 홍 감독의 마음은 불과 10시간 만에 설득됐다. 홍 감독은 울산에서 '행복 축구'를 하는 게 본인 입장에서 꽃길이지만, 한국 축구에 KFA의 기술 철학을 뿌리내려야 한다는 특명을 수행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걷기로 했다고 자신이 마음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나를 버리기로 했다. 이제 나는 없다. (내겐)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고 비장하게 표현했다.


변심이 대의라는 포장지에 쌓이면서, 감독의 말에 안심하던 울산 팬들이 갑작스레 날벼락을 맞았다. 개막 이후 네 달이 지났다고 '감독 빼가기'라는 비판을 피할 순 없다. 여전히 시즌은 한참 진행 중이고 울산은 3연패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울산 팬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10일 광주FC전이 열린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는 '우리가 본 감독 중 최악', 'Where is 의리?' 등 홍 감독을 비판하는 걸개가 걸렸다. 그동안 홍 감독에게 보낸 울산 팬들의 환호와 박수는 야유와 '홍명보 나가'라는 외침으로 바뀌었다. 결국 실현된 '감독 빼가기'에 울산 팬뿐 아니라 K리그 팬들도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날 광주 원정팬들도 '정몽규 나가' 등의 걸개로 KFA를 비판했다.


울산팬들의 걸개. 윤효용 기자

홍 감독은 10년 전 대표팀 감독으로 일할 때 K리그 선수들을 비하하는 표현을 해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에 울산 감독으로 K리그에 복귀했을 당시 비하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하며 "상처받은 K리그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사과한지 약 3년 6개월 뒤, 홍 감독은 다시 울산과 K리그를 등졌다. 팬들 앞에서 직접 작별 인사도 못한 채 대표팀으로 떠났다.


사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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