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에게 이 다큐를 추천합니다

김성호 2024. 7. 11. 1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777] 쿠팡플레이 <국대: 로드 투 카타르> 와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

[김성호 기자]

홍명보 남자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 논란이 뜨겁다. 2002년 한국축구의 영웅이자 K리그 3연패에 도전하는 울산HD 감독 홍명보가 어째서 축구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일까. 그것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자마자 말이다.

논란의 출발은 위르겐 클린스만 대표팀 전임 감독의 선임과 예고된 부진, 100억 원에 이르는 위약금을 발생시켰던 경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뒤 파울로 벤투와의 재계약 대신 위르겐 클린스만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한 대한축구협회였다. 독일과 미국에서 감독으로써 낙제점을 받아든 그를 낙점한 데 대해 축구팬들이 비판을 쏟아냈으나 협회의 선임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전력강화위원회와 임원회의는 언제나처럼 정몽규 회장의 의중대로 움직였다는 비판이 나왔으나 곧 잦아들었다.

클린스만은 우려 그대로였다. 역대 최강의 전력이란 평가에도 졸전을 거듭했다. 월드컵은커녕 아시안컵조차 넘지 못했다. 조별예선에서 피파랭킹 130위 말레이시아와 비기고, 4강에선 요르단과 만나 무력하게 패배했다. 성적보다 더욱 참담한 것은 다음의 일이었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갈등이 이례적으로 대표팀 밖까지 새어나오고, 협회가 황색언론의 갈등 보도를 발빠르게 인정했으며, 클린스만 감독이 부진을 두고 선수탓까지 하는 촌극을 빚은 것이다. 성난 여론 앞에 협회는 끝내 감독을 경질했다. 협회장이 퇴진해야 한다는 초유의 여론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 국대: 로드 투 카타르 포스터
ⓒ 쿠팡플레이
 
돌고 돌아 홍명보, 퇴행하는 대한축구협회

무엇보다 논란이 된 건 과거와 다름없는 감독 선임과정이었다. 밀실야합이란 비판이 나올 만큼 선임과정은 불투명했다. 축구팬과 축구계 다방면의 여론 수렴 없이 정몽규 협회장 이하 협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홍명보 감독 선임이었다.

리그 우승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 중인 K리그 팀 현직 감독이 차출되듯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는 모습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연맹이 관할하는 리그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침해하고, 협회의 감독선임 절차 또한 무시하는 행정이란 비판이 설득력을 얻는다.
 
▲ 국대: 로드 투 카타르 스틸컷
ⓒ 쿠팡플레이
 
또 한 번 믿음을 저버린 대한축구협회

<국대: 로드 투 카타르>는 협회의 오늘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는 작품이다. 홍명보 감독이 불과 한 주 전 직접 이야기했던, "책임과 권한을 모두 가지고 일을 했다"는 김판곤 전력강화위원장이 직접 선임한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한국 축구에 맞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김 위원장이)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든 직접 뽑을 수 있었고, 그렇게 선임한 분이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이라고 회고했다. 울산HD 팬들을 향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사실상 팀을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한 건 물론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축구에 있어 역대 최고의 월드컵이 되리란 평가를 받았다.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았고, 한국은 물론 출전한 여러 나라가 선수층 면면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팡이 진즉에 이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오리지날 시리즈로 기획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자리한다.

<국대: 로드 투 카타르>는 단일 대회에 나선 국가대표팀을 집중 조명했단 점에서 한국에선 기념비적 작품이다. 한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제73대 감독으로 취임한 벤투가 감독으로 팀을 지휘한 시절이란 점도 작품을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재임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국 언론, 특히 주류언론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받았으나 오늘에 이르러 축구팬 가운데 그를 명장이라 칭하지 않는 이를 만나보기 어렵다. 쉽게 말해 벤투는 히딩크 이후 자타공인 한국 대표팀 최고의 감독이다.
  
▲ 국대: 로드 투 카타르 스틸컷
ⓒ 쿠팡플레이
 
벤투호를 뒤쫓은 8452시간의 감동

제작사 플래디에서 만든 다큐는 벤투와 벤투호의 면면을 성실히 조명한다. 총 촬영기간이 근 1년에 이르는데, '카타르 월드컵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든 국대 축구팀. 벤투호가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는 8452시간의 생생한 기록'이란 홍보문구에서 볼 수 있듯, 350여 일 동안 대표팀을 뒤따르며 촬영한 영상을 몇몇 주제에 맞게 추려 내놓았다.

1부 '각오'부터 6부 '믿음'까지, 각기 30분 내외의 짤막한 다큐 시리즈다. 모두 합하면 3시간가량의 장편인데, 각각의 작품이 저마다 선명한 주제를 담아 호평을 받았다. 22분짜리 첫 편 '각오'는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을 중심으로 소집된 선수단의 의지를 개괄하여 담는다. '주전'은 경쟁에서 밀려난 것처럼 보이는 후보군을 조명해 그들의 마음가짐을 듣는다. '고비'는 최종예선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특히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경기를, '여정'은 잦은 장거리 원정과 체력적 부담을 겪는 유럽파의 이야기를 담았다. 5부 '초심'은 마침내 본선진출권을 따내는 이야기를, 마지막 '믿음'은 월드컵 직전까지 팀을 다잡아가는 감독과 코칭스태프, 하나로 뭉쳐나가는 선수단의 모습을 그렸다.

감독부터 코치, 선수들까지 기성 미디어에선 얼마 비치지 않던 이들의 진솔한 모습이 다큐 가운데서 드러난다. 누구는 생각보다 속이 깊고, 누구는 쾌활하며, 누구는 비장하기까지 한 각오를 보이는 모습 따위가 영상으로 그대로 비친다. 선수와 스태프들, 그들이 마주하는 어려움에 대해 팬들의 이해를 깊게 한다는 점에서 이 다큐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낸다.
 
▲ 국대: 로드 투 카타르 스틸컷
ⓒ 쿠팡플레이
 
벤투를 버리고 택한 100억 먹튀와 홍명보

무엇보다 작품 가운데 자연스레 드러나는 벤투의 리더십은 주목할 만하다. 솔선수범하고 열정적이며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는 어째서 그가 선수단은 물론, 한국 축구팬들에게까지 확고한 지지와 애정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내보인다.

그럼에도 협회가 그와 다음 월드컵 재계약을 고려하지 않았단 점은 의미심장하다. 다큐가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으나 벤투가 한국 대표팀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은 그의 인터뷰며 여러 취재를 통하여 익히 공개된 바다. 철학과 열정, 실력까지 두루 갖췄던 그를 포기하고서 대한축구협회가 선택한 카드가 클린스만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평가와 함께 무려 100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받아 챙기고 떠난 그를 선임하기까지의 배경에 자연히 관심이 닿게끔 한다.

우리는 왜 벤투 뒤 클린스만을 가져야 했나. 우리는 왜 그 뒤에 홍명보를 맞이하게 되었는가. 한국축구를 응원하는 이 중에서 이를 비판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협회는 어째서 그를 강행하는가. 다큐 뒤에 남는 질문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사커라인'부터 '아이러브사커(알싸)'와 '아이라이크사커(락싸)'를 거쳐 '樂soccer(락싸)'에 이르기까지 30년 가까이 한국 정통 축구팬 커뮤니티에서 활약해온 박영서 씨는 이제야말로 한국 축구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며칠 전 스스로 대표팀 감독 선임 시스템을 비판해놓고 스스로 그 자리를 수락한 건 현재 맡고 있는 구단과 그 팬에 대한 책임감을 버리고 개인의 사욕만 챙긴 꼴"이라며 "운이 좋아 결과가 잘 나올지 모르겠으나 축협과 홍 감독에 대한 응원과 지지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 축구팬 가운데 그와 의견을 달리할 이는 채 한 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대한축구협회의 현주소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