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불신지옥 논쟁?…종교에 관한 건강한 질문이 담긴 연극"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크리스천스'는 대범해서 흥미롭다. 종교와 관련된 민감한 이야기를 다룬다.
극은 미국의 한 대형 교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폴은 교회의 담임 목사다. 교회에 경사가 있는 날, 폴은 설교 중 지옥은 없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신도들 다수가 당황한다. 예수를 믿어야 지옥에 가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를 급성장시키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조슈아 부목사가 강하게 반발한다.
폴 목사와 조슈아 부목사 간 논쟁의 대상이 되는 '불신지옥'은 일상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교리라고 할 수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 불신지옥은 어쩌면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래서 관객은 단박에 극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자칫 교회 내부 갈등을 다룬 연극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 극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두산아트센터에서 크리스천스의 민새롬 연출을 만났다.
"종교와 관련된 건강한 질문들이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희곡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을 다루기 때문에 종교인은 스스로 예리한 질문들을 해야 한다. 자기 신앙에 질문이 있는 사람들이 건강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나오는 여러 질문은 건강한 신자라면 한 번씩은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들이다."
민새롬 연출은 성경 자체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며 지옥이 없다는 폴 목사의 주장이 미국에서 보편적인 논리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관객들이 극을 단편적으로 해석해 폴 목사의 주장이 연극 크리스천스의 주제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크리스천스의 작가 루카스 네이스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목사가 될 것이라는 집안의 기대를 거부하고 극작가가 됐다.
"작가가 지옥이 없다고 믿어서 희곡을 쓴 것 같지는 않다. 굉장히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화두를 던져놓고 한 번 생각해보자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논쟁이 되는 화두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나 신념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 양상들을 잘 보여주는, 무척 영리하게 쓴 대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극은 폴 목사와 조슈아 목사 중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균형감을 유지한다. 폴 목사는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면서도 반발하는 다른 신도들의 이야기도 사려 깊게 들어준다. 민새롬 연출은 폴 목사에 대해 "성경과 신앙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학구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인물"이라며 "이상주의적인 면이 폴 목사의 결함인데 매력적인 결함"이라고 했다.
후반으로 가면서 폴 목사의 고뇌는 점점 더 깊어진다. 상당수의 신도가 떠나면서 폴 목사의 교회는 다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 민새롬 연출은 이 과정에서도 균형감을 찾으려 했다.
"신도들이 폴 목사를 외면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고통스러워 하지 않고 (폴 목사에 대한) 연민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폴 목사를 외면하는 배우들에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연기해 달라고 했다."
폴 목사를 외면하는 신도들의 태도가 폴 목사와 완전히 선을 그으려는 듯 비치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폴 목사와 그를 외면하는 신도들 간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소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민새롬 연출은 극에서 다뤄지는 갈등의 양상은 우리가 사는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 내에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어떤 공동체든 그 조직을 단단하게 뭉치게 하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때로 그 가치를 위해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 공동체를 붙잡고 있는 가치에 대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한 질문이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더 단단한 공동체를 위해 어떤 질문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새롬 연출은 사회 현상들에 대해 공정하고 균형 잡힌 다양한 관점들을 담고 있는 희곡을 찾던 중 다른 연출가에게서 이 작품을 추천받았다고 했다. 실제 연극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연극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매진 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민새롬 연출은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는 내용의 극보다는 여러 다양한 입장들이 공정하게 다뤄지는 희곡들을 선호한다"며 "크리스천스도 진지하고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들이 흥미로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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