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 장벽 높은 항공엔진 개발, 한국 기업은 성공할까

황민혁 2024. 7. 1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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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두산그룹 기술 확보 시동
업계 최상단에 있는 고부가 제품
기술 축적·고숙련 인재·자본 필요
美 전문가 “한국, 10년 시간 걸릴 것”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기업들이 항공엔진 국산화에 도전한다.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의 자체 생산능력을 갖춰 국가안보에 이바지하고, 전투기 가격의 10~20%를 차지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항공엔진을 보유하려면 천문학적인 시간과 돈을 투입해야 한다. 후발주자인 한국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기업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화와 두산그룹이 항공엔진 독자 기술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발전용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를 바탕으로 항공용 엔진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사업목적에 ‘항공기 엔진 제작’을 추가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40년 넘게 항공엔진 분야에 매진하고 있다. 부품 생산 및 조립, 엔진 총조립 등을 수행했다. 축적한 업력에 기초해 업계 최상단에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인 항공엔진까지 직접 생산하겠다는 포부다. 전투기용 항공엔진(추력 1만5000 파운드급)보다 크기가 작은 유도 무기용, 소형 무인기용, 헬기용 엔진은 이미 독자 기술로 생산 중이다.

정부는 지난 1월 항공엔진 기술 고도화를 항공우주·해양 분야 중점 기술로 선정하며 지원에 나섰다. 방위사업청은 2030년대 중·후반까지 국산 전투기에 적용할 1만5000lbf(파운드힘)급 엔진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설계·소재·공정·부품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항공엔진은 산업 밸류체인의 꼭대기에 있는 가장 만들기 어려운 제품이다. 한 국가가 자체적인 항공엔진을 갖기 위해서는 수십년간의 기술 축적, 이를 뒷받침하는 고숙련 인재 공급, 막대한 자본 투입 등 삼박자를 갖춰야 한다. 항공엔진 산업이 대표적인 선진국 산업인 이유다. 독자 항공엔진 기술 보유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6개국에 그친다. 설계부터 대량 양산까지 자기 브랜드로 항공엔진 생산을 총괄하는 업체는 미국의 프랫앤휘트니(P&W), GE에어로스페이스, 영국의 롤스로이스 등 ‘빅3’뿐이다. 엔진을 조립하는 것마저 수십년의 경험이 필요할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다. 한국 기업은 면허생산 등으로 항공용 가스터빈 엔진을 조립하고, 일부 관련 부품을 제작하고 있다. 국내 항공엔진 기술력은 선진국의 70% 수준이다.


후발주자일 수밖에 없는 분야에 기업과 정부가 연구·개발 비용을 쏟아붓는 데는 안보·경제적 이유가 있다. 우선 자체 개발한 항공엔진은 국방 선진국들의 핵심 전략자산이다. 전투기 성능을 좌우하는 부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항공엔진 기술의 해외 이전 및 유출을 엄격하게 통제·제한하고 있다. 한국산 전투기인 FA-50, KF-21에는 미국산 엔진이 들어가는데, 미국이 제품 수출을 막으면 한국의 공군 전략자산 생산이 막히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영공 자주국방을 위해선 항공엔진 독자기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배경이다.


항공엔진은 돈이 되는 기술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항공엔진 시장 규모는 지난해 943억 달러(약 130조3000억원)에서 2032년 1872억 달러(약 258조7000억원)로 연평균 7.9% 성장할 전망이다. 또 엔진 산업은 개발 및 사용 기간이 10년 이상으로 길어서 장기계약을 맺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단기 경기 변동에 따른 실적 부침이 다른 산업보다 적다. 엔진 제작 역량을 갖춘 기업은 제품 판매 이후에도 정비·유지보수(MRO) 사업으로 주기적인 현금흐름 창출이 가능하다.

항공엔진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항공엔진 생산 기업이 소재지에서 만들어내는 고용 유발, 낙수 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 코네티컷주가 대표적인 선례다. 코네티컷은 항공엔진 개발 역량을 보유한 P&W를 중심으로 수백개의 부품·소재 기업들이 모여 약 100년 동안 함께 성장해왔다. 코네티컷주 항공엔진 산업은 지난 2022년 66억 달러(약 9조1000억원)의 국내총생산(GDP)을 일으켰고, 약 1만5500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한국의 P&W’ 격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사업장이 있는 경남 창원을 한국의 코네티컷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전투기, 민항기, 선박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항공엔진은 ‘미래 먹거리’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직원들이 창원1사업장에서 항공엔진을 점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하지만 한국의 도전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P&W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비토 모레노 코네티컷대 교수는 지난달 미국 코네티컷주 소재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한국의 독자 항공엔진 개발 목표는)굉장히 도전적인 과제”라며 “한국 정부가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시간을 준다면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모든 인프라를 새로 조직해야 하므로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예측을 하든 그보다 2~3배의 예산과 시간이 들 것”이라며 “현재 각 국가가 기술 국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후발주자가 큰 업체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 공군의 F-22 전투기에 장착되는 P&W의 F119 엔진은 개발부터 상용화 시험까지만 총 26년이 필요했다. 중국도 자국산 엔진 기술 개발 성공 때까지 지난 20년간 최소 9천억 위안(한화 약 170조7000억원)을 쏟아부었다.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역시 P&W 출신인 옴 샤르마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제조 기술력이 굉장히 뛰어난 만큼 향후 엔진 생산 분야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요구한다. 김종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첨단항공엔진사업팀장은 지난달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산업계가 가진 기존 인프라와 시스템 지원, 학계의 연구·개발(R&D) 인력 육성, 시험설비 인프라 구축 등 노하우가 총결집해야 성공적인 항공엔진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네티컷 주정부 역시 바우처 기금 운영을 통한 사업 지원, 정부 차원의 인재 양성, 기술센터 운영, 기업 컨설팅 등 정책으로 항공엔진 업계를 지원해왔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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