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인터뷰] '유럽진출' 엄지성 "마치 이정효 감독님처럼, 날 잘 활용해줄 수 있는 팀으로 간다"

김정용 기자 2024. 7. 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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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성. 김정용 기자

[풋볼리스트=인천] 김정용 기자= 엄지성은 생애 첫 이적을 잉글랜드로 간다. 광주FC 유소년팀을 거쳐 1군에서 활약한 프로 4년차 간판스타 엄지성은 여름 이적시장에서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에 참가하는 웨일스 구단 스완지시티 이적을 달성했다.


출국을 앞두고 서둘러 영화 '탈주'를 보고, 어제 뭘 먹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한식을 배불리 먹었다지만 엄지성의 얼굴은 여전히 말라 있었다. 광주에서 짐을 싸 나온 뒤에도 마냥 쉰 게 아니라 모교 금호고에서 공을 차는 등 운동을 계속했다. 1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직전의 엄지성을 만나 광주 축구와 비슷한 방향성을 가져 스완지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을 들었다. 이하 인터뷰 전문


- 이적 소감은


대표이사님, 감독님, 코칭스태프 그리고 광주 팬분들께서 이적을 편하게 해 주신 덕분에 제가 이렇게 좋은 기회에 떠날 수 있게 됐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선수 생활을 하겠다.


- 이정효 감독이 처음에는 붙잡고 싶었다가, 면담 후 보내주기로 결심했다고 들었다. 어떤 깊은 이야기를 나눴나


감독님께서 이것 때문에 보내는 거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었다. 제가 "스완지로 이적하면 추후에 잘못되든, 적응을 못해서 힘든 상황이 오든 제가 감당해야 되는 몫이다. 근데 이 선택을 하지 못하고 이적을 못하면 축구 인생에서 계속 후회로 남을 것 같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마지막에 미팅할 때 이것 때문에 보내주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씀하시더라.


- '내 인생, 내가 결정해보고 싶다'는 엄지성의 의사를 이 감독이 존중해줬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 이 감독이 스완지 영상을 직접 분석하면서 지성이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말한 적도 있던데.


마지막으로 감독님하고 코칭 스태프분들께 인사를 드리러 방에 찾아뵀는데. 감독실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에 경기 영상이 있더라. 늘 하시는 거니까 또 분석하시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거 스완지 경기라고, 그래도 어떤 축구를 하는지는 파악을 해야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뻥축구'하지 않고 전술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팀이어서 다행히 네가 적응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다. 잘 됐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참 힘이 됐다.


- 굉장히 이정효스러운 응원의 방식이다. 달리 말하면 광주의 이정효식 축구, 그리고 스완지의 루크 윌리엄스 감독이 제시한 엄지성 활용의 청사진이 닮아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마치 K리그의 광주가 그렇듯, 거칠고 직선적인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에서 스완지의 지향점이 비슷해 보이는데.


루크 감독님께서 어떤 식으로 저를 활용할지 들었다. 제가 잘 맞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고 그래서 가고 싶었다. 절 활용하려는 방향성은 이정효 감독님과 루크 감독님이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스완지를 선택했다.


- 스완지 대선배 기성용은 별 친분도 없는데 연락이 왔다고 들었다.


확정되기 전에 두 번 왔다. 처음에 스완지행 가능성이 보도됐을 때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셔가지고 저한테 연락을 하셨다고 했다. 스완지 코치진이랑 친분이 있어서 어떤 선수의 유형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엄지성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도 말해주셨다고 하더라.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제가 적응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두 번째 전화하셨을 때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텀이 생겼을 때였다. 어떤 상황인지 물어봐 주셨다.


- 기성용 선배의 연락처를 확보했다. 이제 엄지성 선수가 먼저 연락할 수도 있지 않나? 스완지에서 뛰어 본 형에게 맛집은 어딘지, 빨래방은 어딘지.


제가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고 나이차도 있어서. 일종의 초면이지 않다. 연락드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 MBTI가 I(내형성)인가?


I다.


- 그럼 만약 기성용 선수에게 연락을 할 수 있다면 현지에서 살아 본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나?


많긴 하다. 축구 외적인 환경을 전혀 모른다. 구단 인프라는 뭐 빅리그에 있던 팀이니까 잘 되어 있을텐데 도시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른다. 축구 외적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여쭤보고 싶다.


- 인프라 얘기를 해서 말인데, 어제 광주 후배 문민서 선수가 재밌는 인터뷰를 했더라. 그동안 광주 숙소에서 4인실에 5명 지내느라 자신은 침대가 없었다고. 지성이 형 나가서 침대가 생길 거라고. 팩트인가?


- 자, 들어보시라. 올해 AFC 챔피언스리그도 진출하고 해서 선수단이 늘어났다. 근데 숙소는 그대로라서 우리 막내방이 4인실에 5명이 지낸다. 이층침대가 2개, 총 4개의 누울 자리가 있다. 그런데 민서만 매번 침대를 못 쓴 게 아니라 그냥 먼저 들어와서 쉬는 사람이 침대로 가고 나머지 한 명이 바닥에서 쉬는 거다. 그게 나였던 적도 있다. 물론 민서가 좀 더 많이 의자 신세였겠지만. 그리고 민서가 밤에 의자를 붙여놓고 잤다는 게 아니다. 우리 방 전원이 나가서 생활한다. 민서도 본가가 광주라서 집에서 출퇴근한다. 낮에 쉬는 시간에 그랬다는 거다. 이 정도면 제가 욕을 피할 수 있을까?


- 팩트체크 고맙다. 원래 엄지성 선수에게 비판하는 게 아니고 광주 인프라를 안타까워하는 반응 뿐이었다. 경기력에 대한 질문을 해 보겠다. 올해 K리그 4년차 맞나? 사실 첫해 주목받은 것에 비하면 매년 가시적인 성장이 보이진 않았다. 지금쯤 환경을 바꾸는 게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엄지성. 김정용 기자
엄지성(왼쪽), 이정효 감독(오른쪽, 광주FC). 서형권 기자

그건 아니다. 난 매년 충분히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밖으로는 티가 안 났을지 모르지만 내적으로는 감독님 밑에서 많은 걸 배우고 성장했다. 그래서 해외진출 기회도 온 거고. 다만 눈에 보이는 퍼포먼스를 더 보여드릴 기회는 될 거라고 생각한다. K리그에서는 우리 광주 상대로 내려서서 경기 결과를 추구하는 팀이 많았다. 광주가 주도하는 경기를 해도 찬스를 만들기 쉽진 않았다. 그런데 유럽에 가면 다들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일테니 그들도 주도하는 축구를 할 테고, 내려서는 팀은 적을 것 같다.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드릴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기자가 느낀, 눈에 띄는 플레이가 줄어들었다는 점은 엄지성의 성장이 정체됐기 때문이 아니라 광주를 상대하는 팀들이 웅크렸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최근에는 위협적인 위치에서 공을 잡아도 결국 투입할 곳이 없어서 횡패스로 마무리하는 걸 자주 봤던 것 같다.


제가 작년에는 사이드에 벌려서서 윙을 봤다. 올해는 공격수 (이)희균이 형이 다치고 나서 공백이 크다 보니까 제가 안쪽에서 플레이했다. 이 점에 대해서 그나마 찾은 해법은 공격적인 크로스나 중거리 슛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이드에서는 등지고 공을 받는데, 안쪽에서 뛰면 앞을 보며 공을 받기 쉽다. 그래서 올해 어시스트가 늘었다. 지난 3년간 통산 어시스트가 3개일 정도로 골에 치중된 쪽이었는데 올해는 골보다 어시스트가 많다.


- 유럽에서 뛰어 본 동료, 외국인 동료들의 조언은


(최)경록이 형은 다른 나라(독일)지만 유럽 경험이 있다보니 제가 확정되기 전부터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베카는 자기도 호주 리그에 있을 때 영어를 아예 못해서 고생했다며, 볼때마다 "영어 공부해"라는 말을 계속 해 줬다. 이번 시즌은 경기 전에도 외국인 선수와 일부러 카페에 가서 대화를 한다든지, 영어로 말을 나누려고 노력하긴 했다.


- 이미 국가대표 경험이 있다. 다른 선수들은 해외진출 했을 때 파울루 벤투 전 대표팀 감독의 가르침을 떠올렸다는 경험담도 있는데.


나는 대표팀 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벤투 감독님이 제 이름을 부르셨을 때부터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긴장을 했다. 눈빛부터 좀 무섭고 아우라가 다르시지 않나. 대표팀에 대해서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하지 못하게 된 게 아쉽다. A대표팀은 지금으로선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스완지에서 잘 하는 게 대표팀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이름은 박지성을 땄는데, 선수로서 우상은 손흥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영국에서 맹활약해 현지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면 '제2의 박지성'과 '제2의 손흥민' 중 뭐가 좋을까?


안 그래도 예전 인터뷰에서 '박지성보다 손흥민'이라는 제목이 나와서 당황한 적이 있다. 두 분 다 내 우상이다. 어렸을 때는 박지성 선수였고, 은퇴하신 뒤에는 그때 현역 중 당연히 손흥민 선수를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바뀌어간 거다. 두 분 다 선택하겠다.


- 이번 이적 절차를 돌아본다면? 나중에 광주로 돌아올 생각인가?


변수가 많다보니 좀 힘든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긴 했다. 하지만 그걸 거쳤기 때문에 이적이 가능했다. 헛된 고생은 아니었다. 이것도 경험이다. 은퇴하고 나서 술안주가 될 이야기다. 은퇴 전에는 당연히 광주로 돌아와야 한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갖게 해 준 팀에 보답하기 위해.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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