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볼피아나·라인브레이킹…” 무색해진 이임생 극찬, 무기력하게 진 '홍명보 축구'
김명석 2024. 7. 11. 10:03
“라볼피아나 형태와 비대칭 스리백을 쓴다. 선수 장점들을 잘 살려 어태킹 서드에서의 라인 브레이킹, 카운터와 크로스, 측면 콤비네이션 등에서 다양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 총괄이사는 홍명보 감독이 선보이는 축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8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홍명보 대표팀 감독 선임 관련 브리핑을 진행한 자리에서다. 굳이 대중성이 떨어지는 영어와 전술 용어들을 활용해 구구절절한 설명한 핵심은, 결국 홍명보 감독이 구사하는 축구 스타일이 한국 대표팀에 잘 맞는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외국인 감독 후보들의 스타일에 대해 ‘롱볼 후 빠른 서포트’, ‘하이 프레싱과 인텐서티 프레싱’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상대적으로 깎아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난 10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 광주FC의 하나은행 K리그1 2024 22라운드. 홍명보 감독의 울산이 보여주는 축구에는 그래서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평소 울산 경기를 잘 보지 않는 팬들에게는 이임생 이사가 극찬했던 '홍명보 축구'에 대한 궁금증이 컸을 경기이기도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센터백 라인까지 내려오고, 풀백이 공격적으로 활용되는 라볼피아나 전술을 홍 감독이 어떻게 쓰는지, 공격 지역에서의 뒷공간 침투나 측면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공격을 풀어가는지 등에 대한 증명이 필요했다.
결과는 무기력한 0-1 패배였다. 이날 울산은 볼 점유율에서 55.6%-44.4%로 앞섰지만, 오히려 슈팅 수에서는 12-17로 더 적었다. 유효 슈팅 수 역시 3-4로 열세였다. 패스 횟수는 상대보다 200여개 더 많은 625개(성공률 89.9%)였으나, 결과적으로 무득점에 그친 데다 내려선 광주의 전술적인 움직임과 맞물리면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려웠다. 선제 실점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크로스 빈도만 높아졌다. 김경민 골키퍼의 세 차례 결정적인 선방들을 감안하더라도, 전술적인 움직임이나 상대 수비를 깨트리기 위한 세부 전략 등은 뚜렷하지 않았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비한 전력 차를 고려하면, 이날 홍명보 감독의 울산은 결코 광주를 압도하지 못했다.
물론 단 한 경기일뿐이고, 모든 경기를 다 잘할 수는 없다. 다만 그렇다고 이임생 이사가 극찬했던 홍 감독만의 전술적인 색깔이라도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경기였다. 이날 보여준 홍 감독의 전술적이 역량이 고스란히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팬들이 갖는 실망감의 크기만 더 커지게 됐다. 각종 전술 용어를 써가며 홍 감독의 대표팀 감독 선임 명분을 채우려던 이임생 기술이사의 설명 역시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이날 경기 후 홍명보 감독은 “이임생 이사를 만나고 밤새도록 고민하고 고뇌하는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10년 만에 간신히 재밌는 축구도 하고 선수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 봤는데, 결과적으로 나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긴 잠을 못 자면서 생각했는데, 난 나를 버렸다. 이제 나는 없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 그게 내가 우리 팬들에게 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던 마음을 바꾼 상황”이라고 대표팀 감독직 수락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팀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다. 팀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게 제일 중요하냐고 한다면, 재능을 가진 걸 어디에 올려놓냐에 따라 많이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에 재능을 헌신 위에 올려놓으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본다. 재능을 이기주의 위에 놓는다면, 그렇게 발휘되지 못할 것이다. 팀 스포츠를 해오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부분이다. 좋은 선수들도 많지만, 얼마나 신뢰 관계를 쌓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울산 서포터스는 홍명보 감독을 시즌 도중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대한축구협회뿐만 아니라, 그동안 대표팀 감독 부임설에 선을 긋다가 돌연 축구협회 제안을 수락하고 구단과 팬을 등진 홍 감독을 향해서도 날 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후 선수단이 서포터스에게 인사하는 과정에서 선수들 뒤에만 머물렀다. 경기 후 기자회견을 통해서야 “너무 죄송했다. 그동안 너무 좋았었는데, 물론 언젠가는 떠나야 할 시기가 오겠지만 이렇게 작별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내 실수로 인해 이렇게 떠나게 됐다. 정말 우리 울산 팬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내가 드릴 말씀이 없다”고 사과했다.
김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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