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GA에 '반바지' 등장…56년 전통 바꿨다
사상 최고 무더위 영향 선수 보호 고려
김용태, 박경남 ‘첫 반바지 선수’ 기록
PGA 불가, LIV 골프와 아시안투어 허용
56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전통의 벽이 무너졌다.
사상 최초로 투어 선수들이 반바지를 입고 라운드를 했다. 11일 전북 군산 소재 군산CC 토너먼트 코스(파72·7460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군산CC 오픈(총상금 7억원) 1라운드에서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오전 6시 50분 1번 홀에서 김용태, 같은 시간 10번 홀(이상 파4)에서 박경남이 반바지를 입고 티샷을 했다. KPGA투어의 첫 반바지 선수로 ‘기록’되는 순간이다.
오전에 경기를 펼친 72명 중 8명이 반바지를 착용했다. 김용태와 박경남을 비롯해 오승현, 이준석(호주), 문경준, 김동은, 케빈 전(뉴질랜드), 김비오 등이 긴바지가 아닌 반바지를 선택했다. 그 어느 때보다 표정은 밝았다. 의상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을 환영했다.
반바지 라운드에 대해 선수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김용태는 "더운 날씨에 훨씬 플레이하기 수월할 것 같아 반바지를 착용했다. 긴바지보다 착용감이 편하다"고 말했다. 호주 교포인 이준석도 "더위를 많이 타는데 여름에 항상 긴바지를 입어야 해서 힘들기는 했다. (웃음) 반바지를 입어서 정말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문경준은 "통풍도 잘되고 더운 날씨에 시원하게 경기를 할 수 있다. 아시안투어에서 활동하면서 더운 지역에 가면 항상 반바지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 어색함은 없다"고 설명했다.
KPGA는 전날 "군산CC 오픈에 선수들의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대회 기간 습도 높은 무더위가 예상돼 선수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이번 대회에 한해 경기 중 반바지를 입을 수 있게 결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국내는 지난달부터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벌써 폭염 경보가 내려질 정도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무더위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KPGA투어 대회에서 선수들의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PGA투어 규정에는 6∼9월에 열리는 대회만 프로암과 연습 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반바지를 입을 수 있으며 대회 기간에는 주최 측 논의 후 허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만 상의는 반드시 바지 안으로 넣어 입어야 하고, 무릎 기준 위, 아래로 10㎝ 이상 길거나 짧은 바지는 입을 수 없다. 트레이닝복 형태 반바지도 허용하지 않는다.
조민규는 "이번 주는 기온이 높고, 특히 대회장 습도까지 높다"며 "선수들의 편안함을 우선한 결정"이라고 찬성했다. 제네시스 포인트 1위 장유빈은 "정말 좋다. 어머니가 대회장에 반바지를 챙겨오셨다"면서 "대회 기간에 반바지를 입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아시안투어 홍콩 오픈과 BNI 인도네시안 마스터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반바지를 착용한 적이 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현재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반바지 라운드에 대해서 보수적이다. 전통을 중시한다. 프로암과 연습 라운드에만 반바지를 입을 수 있다. PGA투어는 2019년 2월 연습라운드와 프로암에서 반바지를 입는 것을 허용했다. 당시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멕시코 챔피언십과 푸에르토리코 오픈부터 선수들이 반바지를 선택했다. 무릎길이의 단정한 차림으로 예의를 갖춰야 한다. 반바지 아래에 레깅스를 받쳐 입을 경우 단색이어야 한다. PGA투어 캐디는 1999년부터 반바지가 허용됐다. 한 캐디가 무더위에 목숨을 잃을 뻔하면서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자본이 후원하는 LIV 골프는 파격적인 행보다. 2022년 9월 LIV 골프 보스턴 1라운드를 마친 뒤 2라운드부터 반바지를 입을 수 있다고 깜짝 발표했다. 전통을 강조하며 긴바지를 고집하는 PGA투어와 달리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아시안투어도 본 대회에서 반바지를 입을 수 있다.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는 기상 상황에 따라 대회마다 조건부로 선수들의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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