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그만둔 남자, 이번엔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이정혁 2024. 7. 1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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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정권에 감사하며... 11일 <육각의 인간> 을 무대에 올립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정혁 기자]

작가가 되고 싶은 소년이 있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보름달을 볼 때 분화구가 보이면 이과로 가고, 절구 찧는 토끼가 보이면 문과로 가라 말씀하셨다. 내게는 달 뒤편에 살며 달토끼의 지배를 받는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으니, 문과 중에서도 국문과나 문예창작과가 적합한 진로였다.

허나, 인생은 예측대로 되지 않는 법. 어려운 집안 형편과 뒤바뀐 입시제도(나는 수능 1세대다)는 나를 전혀 다른 직업으로 이끌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치과대학에 덜컥 입학한 것이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라는 표현을 썼다가는 길 가다 참변을 당할 것 같으니 자제한다.

작가의 꿈을 가슴 깊숙이 접은 채, 30여 년이 흘렀다. 물론, 꾸준히 글을 썼다. 칼럼도 쓰고, 연재기사도 쓰고, 틈틈이 신춘문예 소설 부분에 응모도 했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죽기 직전 당신은 누굽니까, 라고 호스피스 병동의 수간호사가 묻는다면, 저는 작가입니다, 사인해 드릴까요? 라고 확실히 말하고 눈을 감고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 은퇴를 했고, 마침내 길이 열렸다. 아니, 길을 열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제 2의 인생을 찾아 서울로 상경한 초보 작가의 영감 얻기다. 때 이른 은퇴 후, 엄마랑 3개월 살기를 끝낸 철없는 중년의 최종 선택지는 다름 아닌 대학로 혜화동이었다.

사랑하는 처자식과 반려견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다, 한숨 섞인 눈물이 굳게 다문 입술까지 흘러내리는 장면은 다행히도 없었다. 아빠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테니, 엄마 말씀 잘 듣고, 강아지 산책도 시키거라. 누가 봐도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처사였으나, 아내와 아이들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아빠를 응원해주었다.

대학로에 왔다

그렇게 서울에 왔다. 무작정 방을 얻고, 인맥이 닿았던 극단에 들어가 막내 일부터 시작했다. 무모한 도전을 벌였다. 그리고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단, 극단을 만들었다. 아트팩토리 인플란트. 단원들이 극단 이름을 임플란트로 하자는 것을 가까스로 막아 '인(人)플란트'가 되었다. 사람의 마음에 무언가를 심는다.
 
 대학로 입봉작이었던 <메이드인재팬>의 한 장면.
ⓒ 이정혁
 
8월에 극단을 만들었으나, 연극을 제작할 돈이 없었다. 마지막 남은 선택은 다시 치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그렇게 낮에 진료하고, 밤에는 글을 쓰며 제작비를 모았다. 주경야독의 표본이었다. 온종일 일하고 온 날은 너무 피곤해서 저녁 먹고 바로 잠이 든다. 새벽 1시쯤 일어나 글 쓰다가 해 뜰 무렵 잠깐 눈을 붙이는 나날을 두 달간 보냈다.

그렇게 대본 하나를 완성하였다. 문제는 대부분 무지함에서 온다. 저작권에 대해 막연하게는 알았으나, 원서를 직접 번역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각색과 번역을 동시에 진행했다. 막판 퇴고 단계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판사에 문의했더니 '번역저작권'이라는 것이 있어 함부로 번역할 수 없다는 답이 왔다. 두달 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극장을 대관한 상태라는 것.

물론 계약금 포기하고 공연을 미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년의 도전에는 청춘의 열정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청춘의 실패에서 배운 경험과 잠시 앉으면 꺾인다는 절박함. 이것은 비단 관절염의 문제가 아니다. 남아 있는 삶에 대한 효율적 생산 메커니즘의 작용이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한다.

부리나케 새로 희곡을 썼다. 보름쯤 지나서 다시 엎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었다. 공연까지 두 달 남은 시점에서 긴급회의를 하고 새 작품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때 영감을 받은 것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약탈당한 고려 불상의 일본 환수였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시대와 예술은 무엇인가 고뇌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중첩시켜 쓴 나의 입봉작이다. 아트팩토리 인플란트의 창단공연 '메이드인재팬'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메이드인재팬 포스터
ⓒ 이정혁
 
촛불 대신 펜을 들었다

그렇게 입봉작을 마치고, 정말 한동안 쉬고 싶었다. 두 달 만에 새 작품을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이 정권에 참으로 감사하다. 총선을 한 달 앞둔 3월에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민심은 분노의 극치에 도달했는데,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하는 인간들은 표구걸에만 관심을 보이는 상황. 이 나이쯤 먹으면 정치의 본질이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쯤 알게 되지만, 내 아이가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이 무서운 속도로 붕괴되는 것을 관망할 수는 없었다.

소위 말하는 콘크리트 층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들의 인생역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인해 부동의 신념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은 이해한다. 다만, 그러한 사고의 형성 과정에서 분명 국가적인 세뇌가 필수적 요소로 작용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학교에서는 근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군부독재정권 하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으니.
 
 육각의인간 메인포스터
ⓒ 이정혁
 
국가가 원하는 인간은 말 잘 듣고 순응하는 인간이다. 이 전제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씌여진 두 번째 작품이 '육각의 인간'이다. 전부터 정치풍자코미디를 써보고 싶었으나, 정치 자체가 코미디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굳이 나까지 숟가락 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민중을 개돼지로 아는 기득권층의 오만함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이번에는 촛불 대신 펜을 들었다. 연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계속 당하고만 산다고. 언론을 장악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거부권 행사와 해외 순방을 유일한 치적으로 쌓아가는 현 정권의 만행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석유는 도사님이 찍어준 좌표를 죽어라 판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쯤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저들에게 일깨워 줄 때가 되었다.
 
 두번째 공연, 육각의 인간을 함께 준비한 단원들과 배우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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