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깨'라며 따돌림도…中출생 탈북 학생 "인간차별 안 했으면" [사각지대 탈북민 2세들]
"인간 차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코로나19 때는 중국에서 왔다고…"
9일 서울 강서구의 탈북 청소년 대안 학교인 '여명 학교'에서 만난 중국 출생 탈북 학생 박수영(가명·19)씨는 일반 학교에 다니던 시절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줄곧 혼자였다"며 이처럼 털어놓았다. '차별'도 아닌 '인간 차별'이란 표현에서는 그가 겪은 모진 학교 생활의 고통이 느껴졌다.
지난해 4월 기준 국내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민 학생 중 70% 이상이 제3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제3국 출생 탈북민 학생들에게 학교는 차별과 소외의 공간이었다. 같은 탈북민 자녀 사이에서도 태어난 곳이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라는 이유로 따돌림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수영씨도 이런 이유로 여명 학교로 전학왔다. 수영씨는 "처음에는 다 친구를 하다가 (내가) 갑자기 외국에서 왔고 나이도 많다는 걸 알게 되면 다르게 대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일진같은 애들이 갑자기 '신기하다'며 찾아와서 '야, 너 저기서 왔다며'라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3국 출생 탈북 학생들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탈북 여성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다. 중국어로 말문을 뗄 때쯤 어머니와 동반 입국하거나 어머니가 먼저 한국에 온 뒤 시차를 두고 중국에 있는 자녀를 데려오기도 한다. 기본적인 소통이 안되는 게 가장 크게 와닿는 문제다.
수영씨도 처음에는 정규 교육 과정 자체가 버거웠다고 했다. "모둠 활동을 할 때 나는 넣어주지 않는다"며 "일단 말이 안 통하면 의사 소통을 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다. 따라가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힘든 점을 엄마한테도 말 못한다. 엄마가 걱정하면 어떡하냐"고도 이야기했다.
역시 일반 학교에서 옮겨 여명학교를 다니는 탈북 학생 이정아(가명·18)씨도 "(일반 학교 조별활동 때) 조원마다 각자 역할이 있는데 따라갈 수가 없다"며 "(다른 학생들이) '아, 왜 (제대로) 안 해!'라고 (면박을 준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탈북 학생 서은아(가명·15)씨도 "어쩔 줄 몰라서 웃었더니 애들이 '왜 웃냐'고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면박을 줄 때마다 "무서웠다"고 이야기하다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보고서(북한배경청소년 교육 지원 정책의 방향과 과제)에도 비슷한 사례가 담겼다. 중국에서 태어나 5살까지 생활하다 입국한 6학년 남학생 A는 "언어에 자신감이 없어 늘 소극적이고 친구 관계나 학습에도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다문화가족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일대일 한국어 방문 학습과 유튜브 시청이 유일한 한국어 학습 방법이었다"고 토로했다.
보고서는 "A에게 아버지의 중국 배경, 어머니의 북한 배경이 모두 감추어야 할 부끄러움의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에 대한 한국 사회와 친구들의 부정적 시선을 의식한 A는 길거리나 식당에서 아버지가 중국어로 말하면 입을 막기에 급급하다"고 했다.
실제 제3국 출생 탈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따돌림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다. 여명학교의 교장 조명숙 씨(54)는 "한국어를 못하고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짱깨'라고 놀리기도 하는데 아이들에게 큰 상처"라며 "중국에선 탈북민의 자녀라고, 한국에선 중국에서 왔다고 따돌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제3국 출생 탈북 학생들은 북한에서 태어난 학생들과 달리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각종 교육비와 장학금 지원에서 배제된다. 또 탈북 학생들이 입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육 단절을 해소할 대책도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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