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포퓰리즘이 불러온 민주주의 위기

2024. 7. 1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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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만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극단주의·대중영합주의 번성 민주적 정치 시스템 흔들려
엘리트 관료 사명감 퇴색하고 청년 인재 공직 선호 감소해
공직 기피·관가의 사기 저하 대한민국 병드는 신호 아닌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다. 단 지금까지 인류가 시도한 다른 모든 정치체제를 제외하면 말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불완전하지만 독재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에 비하면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우려가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 영국의 브렉시트,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드러난 극우 정당의 돌풍 등은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을 활용한 1인 미디어의 성장,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가짜뉴스 확산 등이 모두 기존 전통적 언론에서 외면받던 극단주의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주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세계 많은 나라에서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은 설문조사 결과로도 확인된다. 최근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세계 24개국 성인 3만861명을 대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 불만족스럽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59%에 달했다. 또 조사 대상이 된 많은 나라에서 ‘현행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매우 좋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크게 감소했다. 반면 강력한 지도자 또는 군부 통치에 대한 선호도가 많은 나라에서 증가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학계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국제 학계에서도 포퓰리즘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포퓰리즘은 국가의 장기적 미래보다는 현재의 대중적 지지만을 좇는 대중영합주의로 정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이런 정의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과 유권자의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참된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연구에 어려움이 있어 왔다. 그러나 최근 유럽 정치학자들을 중심으로 포퓰리즘 또는 극단주의를 정의하고, 관련 정치인들이 집권하면 어떤 사회·정치·경제적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과거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변질되면 장기적으로 국가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기존 연구들을 검토하다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민주주의가 병들면 엘리트 관료들이 가장 먼저 그 변화를 감지하고 공직을 떠난다는 점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공직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첫 신호일 수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 대학가의 분위기를 보면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공직에 대한 선호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행정학과에서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학생이 국가공무원 5급 공개경쟁 채용시험에 관심을 가졌으나 최근에는 그 수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심지어 공직에 임용된 후 채 몇 년 근무하기도 전에 퇴사하는 젊은 사무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공무원 임용 후 5년 이내 퇴직한 인원이 2019년 6500명에서 2023년 1만3566명으로 4년 동안 두 배 넘게 증가했다.

대학생들에게 공직에 도전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봤다. 공직에 진출한 선배들의 삶이 부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최근 대기업 연봉이 크게 상승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다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엘리트 관료들이 갖고 있던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국민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보람이 크게 퇴색한 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공직을 선호하지 않는 현상을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공무원의 삶만을 동경하는 것도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만 최근 분위기는 ‘으레 그래왔다’고 지나치기에는 꽤 심각해 보인다. 의미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관료들이 국회에서 대기하며 하루를 보내고, 눈에 띄게 열심히 일하면 다음 정권에서 ‘이전 정부 사람’으로 낙인 찍혀 감사원 감사를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유능한 젊은이들의 공직 기피 현상과 관가의 사기 저하가 모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신호는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홍순만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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