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주의 퍼스펙티브] 개인 독재로 회귀하는 중·러…무력 사용 리스크도 커져
권위주의 체제 변화와 한반도 주변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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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푸틴,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유사시 군사원조 명시
개인 독재 체제의 선제 공격 가능성, 집단 독재 유형보다 높아
북·중·러와 긴장·대립 불가피, 튼튼하고 유능한 안보협력 긴요
우리 국력과 위상도 높아져, 창의적·선제적 외교 전략 펼쳐야
」
러시아와 중국의 내부체제 변화가 가져온 무력도발의 리스크를 경계해야 한다. 일인 독주 체제가 공고화하고 있다. 최고지도자의 독단을 견제할 제도와 규범이 허물어지고 있다. 최고지도자와 지배 연합세력 사이의 권력균형이 깨졌다. 후계자 승계는 불투명하고, 독재자 숭배는 농후해진다.
보스형 독재자는 무력으로 야심 추구
개인 독재의 부활은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는가. 모든 독재 또는 권위주의 체제가 동일하게 호전적이지는 않다. 권위주의 유형에 따른 전쟁 추구 성향 연구의 권위자인 제시카 위크스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교수는 보스형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는 개인 독재의 전쟁 리스크를 간파했다. 최고지도자 개인이 주요 정책과 인사를 독점하는 개인 독재는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다른 유형의 독재체제보다 높다는 것이다.
위크스 교수는 1946~1999년에 발생한 전 세계 무력도발 관련 통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독재 유형과 무력 도발의 상관관계를 엄정하게 실증했다. 그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담 후세인, 무아마르 카다피, 마오쩌둥, 이오시프 스탈린 등과 같은 보스형 독재자들은 다른 체제 유형의 지도자들에 비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보스형 독재자들은 국내에서 절대 권력을 추구하듯이 국외에서도 거대한 야심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후세인은 범아랍 이슬람제국 건설을 갈망했고, 카다피는 아프리카 통일정부 건설을 천명했다. 독재자 측근 엘리트 세력은 막강한 권력자의 야심을 제약하지 않는다. 위대한 영도자의 전쟁에 대한 오판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힘들다. 또한 정보와 자원을 독점하는 독재자들은 조직적인 엘리트의 도전이나 강력한 민중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는다. 따라서 보스형 독재자는 큰 정치적 비용 없이 무력을 사용하여 야심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한편 민간 엘리트(또는 패권정당)로 구성된 집단적 문민 독재는 민주주의 체제에 비해서도 무력 도발을 더 많이 하지 않는다. 집단적 독재에서는 최고지도자 측근 세력이 경우에 따라 최고지도자를 축출할 능력을 갖춘 잠재적 감시 및 견제 세력이기도 하다. 최고지도자는 무력 도발 실패의 책임과 그에 따른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전쟁을 추구하지 못한다. 마오쩌둥 사후의 중국, 스탈린 사후의 옛 소련(현재 러시아), 베트남 등이 대표적인 집단적 문민 독재다.
푸틴·시진핑, 강한 개인적 유대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감행할 줄은 러시아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시진핑 집권 초기 시진핑 국가주석이 연임 제한 조항을 폐지하고 3연임을 할 것이라고 중국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과거 집단적 독재 모델 분석에 안주한 방심의 결과이자 불운이다. 오늘날 러시아와 중국은 개인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 과거에 매여 독재 정치의 변천을 간과해선 안 된다. 만약 옛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야심과 개인 독재가 강화될 경우, 갈등 해결을 위한 중·러의 선제적 무력 사용 가능성은 증대될 수 있다.
북·러 밀착이 중·러 관계 소원(疏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심이다. 중국은 자신이 국제적 불량 국가인 북한·러시아와 같은 진영으로 취급되는 것을 불편해한다. 중국과 소련 간 이념·국경 분쟁의 흑역사도 있다. 자유 진영 국가들이 중·러의 틈새를 벌릴 수 있다는 주장이 점점 잦아진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이 중·소 분열의 틈을 성공적으로 이용한 경험에 바탕을 둔 전략적 시각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중·러 갈등 요소는 개인 차원에서 두 보스형 독재자들에 의해 관리될 가능성도 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애국자의 아들로서 비슷한 연배의 시진핑과 푸틴은 강한 개인적 유대감을 표명하고 있다. 그들은 젊은 시절 충격적인 체제 혼란과 붕괴를 목도했고, 반(反)서구 권위주의를 공유하고 있다. 푸틴은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훈련을 통해 능숙한 대인관계 유지·조종의 기술을 습득했다. 시진핑 역시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 전술의 달인이었던 아버지 시중쉰으로부터 유사한 기술을 배웠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들은 큰 전략적 목표를 위해 이견과 갈등을 노련하게 조절할 수 있는 수완을 지녔다.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편의에 의한 중·러 파트너십을 유지해 나갈 공산이 크다.
약소국 담론에 갇힐 필요는 없어
우리는 개인 독재의 귀환과 북한과 연계된 중·러 전략적 파트너십에 대해 지나치게 낙심할 필요도 없다. 당장은 미국과 그 아시아·유럽 동맹들의 군사력이 압도적이다. 여러 군사력 지표에서 미국 및 동맹 진영과 북·중·러 진영 간 차이는 상당하다. 단기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억제력은 신뢰할 만하다. 게다가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국력과 위상도 지난 20여 년 사이에 급부상했다. 2023년 호주 로위연구소의 아시아 군사력 지표에 따르면 미국·중국·러시아·인도에 이어 한국은 5위 군사 강국이며 일본은 6위 군사 강국이다. 2024년 글로벌 파이어파워라는 군사력 지표에서도 한국은 세계 5위 국가다.
한국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력·문화력 등 거의 모든 글로벌 지표에서 10위권에 진입한 세계의 중심국이자 강대국 반열에 올라섰다. 한국은 더 이상 2차 세계대전 직후의 가난한 약소국이 아니다. 여전히 약소국 담론에 갇혀 있으면, 창의적이고 선제적인 외교전략을 펼치기가 힘들어진다. 과도한 불안과 낙담에 빠지면 과잉 반응의 리스크도 커진다. 세계적 차원의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은 일방적으로 영향만 받는 대상이 아니라, 그 경쟁의 전개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패권 장악 시도 대비해야
단기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개인 독재발 전쟁의 가능성이 작을지라도,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빠른 군비증강과 패권 장악 시도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 대선의 결과에 따라 미 동맹국들의 안보 책임과 부담은 증대될 수도 있다. 북·중·러에 대한 군사적 균형 유지를 위해 한국·일본·호주·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군비 증강 및 협력은 긴요하다. 전략적 균형 및 억지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 북·중·러와의 긴장과 대립은 불가피하다. 억지는 힘이 전제 조건이기에 갈등을 배제할 수 없다. 굴종이 아니라 공존을 위해서 억지가 필요하다. 이제는 냉전이 아니라 열전(hot war)의 확산을 우려해야 할 때다. 열전이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튼튼하고 유능한 안보다.
동아시아에서 개인 독재발 무력분쟁을 막기 위해서는 억지 전략과 함께 대화와 소통을 통한 보장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여기에서 보장 전략이란 만약 개인 독재국들이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 정책에서 선회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건부적인 조치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보장의 측면에서 개인 독재 체제가 지닌 취약성, 즉 외부세력에 의한 내정 간섭과 체제 불안 가능성을 전략적 차원에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국가 간 갈등의 평화적 해결이 외부세계가 독재국가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을 더 줄일 수 있음을 독재자에게 설득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국제사회는 독재자들과의 직접 대면 회의를 통해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는 개인 독재체제에서는 최고지도자들이 예스맨들에 의해 둘러싸여 불편한 진실이나 정책 과오를 전달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왜곡은 오판과 재앙적 정책으로 귀결될 리스크를 높일 뿐이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정상외교도 중요하다.
개인 독재의 귀환은 한국에 실존적 도전 과제다. 지정학적 격랑이 이는 바다에서 대한민국호가 편안한 항해를 하기는 어렵다. 고요한 바다는 훌륭한 선원을 만들지 못한다. 개항 이후 약 150년 동안의 뼈를 깎는 고투와 도약은 한국인을 끊임없이 단련시켰다. 새로운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결된 팀 코리아 정신과 묵직한 평정심이 필요하다.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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