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미움받는 대통령의 승부
총선을 앞두고 여당은 대통령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지웠다. 선거 벽보에서 대통령 사진을 빼고, 지역구 후보자 얼굴을 내세웠다. 여당이 이렇게 몰린 데는 국민 밉상으로 등극한 지지율 30%대의 대통령 탓이 컸다. 대통령은 ‘자유주의’를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부자의 자유만 챙긴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법인세를 깎고, 노동자 해고도 자유롭게 했다. 취직이 안 된다는 청년의 호소에 “건설현장에 일자리가 널렸다”고 핀잔을 줬다. “사회보장에 미친 듯 돈 퍼 줬는데도 사람들이 가난에서 못 벗어난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 본인은 군복무 경험이 없지만 애국심 고취에는 공을 들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얘기다.
마크롱 대통령을 보는 프랑스 민심은 사뭇 차갑다. ‘부자들의 대통령’, ‘주피터’(주피터 신처럼 태도가 오만하다는 뜻)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논한 어느 프랑스 학자는 논문에서 “국민들이 그의 외모와 말투부터 싫어한다”고 언급했다. 사적 자리에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지만, 공인으로서 그의 태도에는 진정성을 못 느끼는 프랑스 국민이 많다고 한다.
그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의회를 조기 해산하고 총선을 일찍 치렀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 이후 27년만의 조기 총선이다. 말도 안 되는 정치적 모험이란 비난을 떠안았다. 비밀리에 구상해 정치적 양자라는 가브리엘 아탈 총리마저 발표 1시간 전에야 알았다고 한다. 투표함을 열어보니 기적적인 결과가 나왔다. 극우에 몸서리친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여당은 나름 선방했고,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극우정당은 3위로 내려앉았다.
좌파연합이 제1당을 차지했지만, 내분으로 지리멸렬 중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을 총리에 지명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부수입으로 챙겼다. 프랑스 언론들은 결과에 경악했다. 대담한 승부수이면서도 이면엔 마크롱 대통령이 냉철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지금 우리 나라 역시 총선 직전의 프랑스처럼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영부인 문자를 ‘읽씹’했느냐가 이렇게 중대한 일인지 의문이다. 이럴 수록 여권이 마크롱 대통령과 같은 담대한 승부를 걸어보면 어떨까. 야당의 막무가내식 주장은 거부하더라도, 국민의 진상규명 요구가 높은 채 상병 사건 등은 대승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승부수처럼 보이지만 계산기를 두들겨 보면 실제로는 남는 장사일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경우처럼 말이다.
박현준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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