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묵의 과학 산책] 마음으로 모래알 쌓기
기상이변으로 빈도가 늘어나는 재해 중 하나가 산사태다. 흡수된 물로 접착력이 느슨해진 토사 알갱이들이 굴러내리며 그 경로에 불안정하게 있는 토사를 떨어뜨리거나 합쳐지게 해 관성과 흐름의 규모를 증폭하면서 일어난다. 산사태 취약지역을 찾고 방비 공법을 개발하는 것은 관련 전문가의 일이지만, 흙이 아무렇게나 쏟아지는 것은 비전문가도 사색해볼 만한 자연현상이다.
정갈하게 빈방 천정에서 커다란 체로 모래가루를 부슬부슬 떨어뜨리는 가상실험을 해보자.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 여기저기에 모래가 쌓인다. 모랫더미들이 점점 높아지다 보면 높이를 못 견디고 작은 산사태처럼 무너지는 것들이 생긴다. 이에 흘러내린 모래가 주변에 퍼지면서 옆에 있는 다른 불안정한 모래더미를 건들면 무너짐은 연쇄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 과정으로 크고 작은 모래 봉우리들의 소(小)지형이 형성된다.
실험 조건을 적절히 조절하면 다채로운 지형을 만들 수 있다. 가령 모래를 촉촉할 정도로만 적시면 물 분자들의 수소결합으로 모래알들의 접착력이 커져서 더 삐죽삐죽한 지형이 된다. 상상 속 설치미술인 모래 지형은 손으로 깎는 것이 아니라 물리 법칙에 의해 생성된다. 통계물리학에선 ‘자체조직 임계현상’이라 부른다. 작게 시작된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일어나는데, 산사태뿐만 아니라 들불, 종의 진화와 멸종 등 다양한 자연 현상은 물론이고 인공 신경망의 최적화 알고리즘에도 응용된다. 뇌 속 신경망에서도 자체조직 임계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부슬부슬 모래알이 산사태를 일으키듯 깊은 주제를 진득하게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골몰할 기분이 아니면 상상의 방에 들어가 모래를 뿌리며 쌓는 과정을 찬찬히 그려보라. 마음으로 자아내는 현대미술이고, 능동적 휴식이자 명상이다. 이러다 일상의 문제로 돌아오면 그 여파로 새로운 의욕과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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