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한국전쟁 휴전회담 ‘중공 책사’ 리커눙
1951년 7월이니 73년 전 이 무렵, 휴전선 위에 마련된 판문점에서 유엔군 측 대표와 공산군 측 대표가 만나 숨 막히는 기세 싸움을 하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인사나 악수도 없이 논쟁은 비본질적인 기죽이기였다. 초반에는 25초 만에 회담이 끝나 회담장을 뛰어나가기도 했고, 2시간 10분 동안 째려보다가 폐회한 날도 있었다.
공산 측 공식 대표는 덩화(鄧華)였는데, 실세는 셰팡(解方) 참모장 겸 정치위원이었다. 중공군 창군 1세대인 셰팡의 본명은 페이란(沛然)이었는데, 국공내전에서 하이난다오를 해방(解放)시킨 것을 자부해 이름도 그렇게 바꿨다.
미군 측 기록에는 마치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했던 카시우스처럼 야위고 창백한 몰골이었다. 중공군 측에는 물심부름하는 어리바리한 졸병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푸산(浦山)이었다. 그는 유엔군 측의 농담까지 알아듣고 보고했다.
그런데 회담 중에 푸산은 연신 뒷방을 드나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방에는 아무런 직함도 없이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회담을 이끌어가는 중공 제일의 책사 리커눙(李克農)이 앉아 있었다. 그의 직함은 군사위원회 정보부장이었다. 당시 심각한 천식 환자여서 뜨거운 차를 계속 마시며 막후에서 회담을 좌우했다.
병이 위중한 것을 안 마오쩌둥이 리커눙을 대체할 대표로 우슈취안(吳修權)을 보냈으나 전시에 지휘관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며 되돌려 보냈다. 리커눙은 끝내 휴전 협정을 성사시켰다. 이후 10년을 더 살다가 천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CIA는 1962년 “중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죽었으니 앞으로 사흘간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장례식에서 부총리 둥비우(董必武)가 “우리 시대의 방현령(房玄齡·578~648, 당 태종의 책사)이 죽었다”고 애도했다. 리커눙의 최대 약점은 바다를 몰랐다는 점이었는데, 이것이 후대의 역사를 갈라놓았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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