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우리집 풍비박산" 판사도 눈물…'분당 흉기난동' 유족 호소

정혜정 2024. 7. 10. 21: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고인 최원종. 연합뉴스


2명을 살해하고 12명을 다치게 한 '분당 흉기 난동범' 최원종(23)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도 집단 스토킹 피해를 주장하며 "국정원과 신천지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도청하는 것 같다"고 진술하는 등 망상 증세를 드러냈다. 유가족 의견 진술 때는 표정 변화없이 손목시계를 만지는 등의 태도를 보였다.

수원고법 형사2-1부(김민기 김종우 박광서 고법판사)는 10일 최원종의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서는 피해 유족들의 의견 진술 절차가 진행됐다.

최원종의 범행으로 숨진 이희남(당시 65세)씨의 남편 A씨가 준비해 온 의견서를 들고 증인석에 앉았다. 그는 "65세 노부부가 저녁 식사를 하려고 집을 나서 맨날 다니던 동네 길을 걷던 중 차가 뒤에서 돌진했다"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 손을 잡고 걷던 내 아내는 한순간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저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두 손을 떨며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을 쏟아낸 A씨는 "우리 참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이 허무하다. 행복한 우리 집은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되어도 흉악 살인자는 살아있는 세상이 참 원망스럽다"며 "이런 계획 살인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사형을 선고해 엄중한 메시지를 전달해달라.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사망자인 김혜빈(당시 20세)씨의 어머니도 "어제(7월 9일)가 혜빈이 스물한번째 생일이었다. 지난해 8월 3일 이후로 우리와 함께 살지 못했으니 혜빈이는 여전히 스무살"이라며 "혜빈이는 최원종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최원종은 두 명만 죽인 게 아니라 가족, 친구, 지인 모두의 마음과 영혼을 파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형벌을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현병, 심신미약이 아니라 14명의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며 "최원종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 그리고 희생자들을 기억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족 진술 내내 방청석에서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판사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판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잘 들었다. 재판부에서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어려운 걸음하셔서 재판부에 심경을 다시 이야기하기 힘드셨을텐데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판사는 "법정에서 진술 기회를 드린 것은 피해자들의 아픔도 재판 기록에 남겨놓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족들의 진술이 이어지는 동안 피고인석에 있던 최원종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또 손목시계를 만지거나 안경을 위로 쓸어올리기도 했다.

이날 검찰은 1심 구형과 동일한 사형을 구형하며 "검찰 최종의견은 오늘 두 유족의 말씀을 한 토시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원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심 재판장도 많이 고민했고,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검사와 유족, 사회여론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직접 판결문에 적었다"며 "우리 재판부에서는 그런 유족의 마음을 이해만 하지 말고 결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최원종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피고인과 피고인 가족분들 모두 깊이 반성하고 있다. 사형을 원하는 마음도 이해한다"며 "다만 형사상 처벌은 법률에 따른다는 죄형법정주의는 지켜져야 한다. 법조인이라면 법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심은 심신미약이라고 판결하면서도 감경 사유가 아니라며 감형하지 않았다"며 "피고인은 스스로 밝힌 바처럼 처벌받고자 한다. 다만 법에 정해진 것처럼 형평을 위해 감경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인은 검찰에 최씨에 대한 치료감호 청구를 요청했으나, 검찰은 "정신 질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원종은 최후 진술에서 "국정원과 신천지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도·감청하고 있는 것 같다"며 "유가족분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죄송하다"고 짧게 말한 뒤 꾸벅 인사했다.

최원종은 지난해 8월 3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AK플라자 분당점 부근에서 모친의 승용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들이받고, 이후 차에서 내려 백화점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씨 범행으로 차에 치인 김씨와 이씨 등 2명은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숨졌으며,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심은 최원종에게 무기징역 및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선고했다. 최씨의 항소심 선고는 8월 20일에 진행된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