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 "무기한 파업" 돌입…'반도체 회복' 발목 잡나
삼성전자 직원 3만 1000명이 가입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10일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다. 지난 8일 전삼노가 “생산 차질이 목적”이라며 삼성전자 창사 이래 사상 첫 파업을 시작한 지 사흘 만에 무기한 파업으로 전환하며 전선을 확대했다. 반도체 시장의 오랜 침체가 끝나고 호황이 막 시작되는 시기에 노조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전삼노는 “1차 파업 기간에 사측이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아 곧바로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현재 노조는 사측에 ▶노동조합 창립휴가 1일 보장 ▶전 조합원 임금 기본 인상률 3.5% 적용 ▶성과급 제도 개선 ▶파업에 따른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당초 노조는 오는 15일부터 닷새간 2차 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했었지만 회사와 대화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이날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노조에 파업 참여 의사를 밝힌 인원은 6540여명으로 삼성전자 전 직원의 5%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대부분이 반도체(DS) 부문 소속이며 총파업 참가자의 80%는 생산직인 설비·제조·공정 직군이다. 특히, 노조는 이날부터 조합원들이 파업 참여 여부를 회사에 미리 알리는 행동을 금지하며 파업 참여를 독려 중이다. 삼성전자 내규에 따르면 직원의 무단결근시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소집하도록 돼 있어,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후유증도 커질 수 있다.
노조 “8인치 라인부터 멈춰세울 것”
레거시(구형) 제품으로 불리는 8인치 반도체는 주로 자동차·가전·전력반도체 등 산업용 반도체 생산에 쓰인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3㎚(나노미터·10억분의 1m) 등 최첨단 공정이 아니라 자동화 수준이 낮고, 파업시 영향도 크게 받을 수 있다. 직원 결근시 생산라인에 타격을 가능한 크게 줄 수 있는 구형 공정라인을 노조가 타깃으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이미 부가가치가 더 높은 12인치(300㎜) 반도체로 주력 생산 라인을 옮긴 만큼 전체 생산차질이 당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반도체 품귀 현상에 8인치 반도체가 호황이었지만 최근 가동률은 70% 이하로 떨어졌다”라면서 “재고가 많아 단기적으로 파업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대체 인력 투입 등으로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번 주 내내 별다른 영향 없이 반도체 라인을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반등기에...
2021년 영업이익을 성과급 산정 기준으로 변경한 SK하이닉스와는 달리 삼성전자는 경제적 부가가치(EVA)라는 자체 공식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정한다. 올해 기준 반도체 부문에서 연간 약 1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야 그때부터 초과이익성과급(OPI·옛 PS)이 단계적으로 발생한다. 노조는 이 같은 구조가 직원들에게 불리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반등하면서 오히려 총파업 동력과 명분을 떨어뜨리는 변수가 됐다. 올해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 20조원 넘는 영업이익이 유력하다. 이 경우 지난해 0%였던 OPI 지급률은 30~40% 수준으로 높아져, 직원들이 받을 성과급도 평년 수준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삼성 안팎에서는 갈수록 총파업 참여율이 낮아질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AI 열풍 속에 전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총력전에 나선 가운데 노조가 생산 차질을 목적으로 파업을 장기화하려는 모습에 대한 우려가 크다. 노조가 1차 목표로 삼은 8인치 공정은 대부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쓰인다. 생산라인이 멈춘다면 삼성을 믿고 칩 생산을 맡겼던 고객사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파운드리 사업은 신뢰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만큼, 파업으로 인해 실제 생산 차질이 벌어진다면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을 복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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