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제 철회에…피해업체들 “정부 때문에 줄폐업”
일회용컵 라벨지 업체, 정부 믿고 투자했다 75억원 손해
“정부가 책임지고 조속한 제도 시행 검토해야”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이 갑자기 변경되면서 현장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환경부의 일회용품 사용정책 번복으로 피해를 입은 업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손해 배상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와 을지로위원회는 10일 의원회관 3층 을지로위원회 사무실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참여 기업들과 ‘환경부 일회용컵 규제 번복으로 인한 피해 업체 간담회’를 열었다.
정부가 추진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참여했다가 피해를 본 민간 업체의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일회용품 규제 정책의 일환으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을 예고했다 지난해 11월 이를 철회했다. 이로 인해 시범사업을 진행했던 일부 지역 등 일선에선 큰 혼란을 빚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스티커라벨 업체 피해 기업으로 주식회사 세롬과 무궁화엘앤비, 오아시스물류가 참여했다. 박주민 을지로위원회 위원장과 이용우 환노위 위원이 피해 업체들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스티커라벨 제조회사 ‘세롬’은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앞두고 58억 5200만원의 라벨지 제조·납품을 계약했다. 그러나 정책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고 한국조폐공사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세롬 대표는 “조폐공사와의 소송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국회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이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같이 논의해 달라”고 호소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납품 입찰을 맺은 세롬과 무궁화엘앤비, 오아시스물류 3개 기업은 조폐공사를 상대로 각각 총 75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일회용컵에 붙일 바코드라벨(특수용지 스티커) 20억장, 80억원 상당을 제작해 전국에 배송하기로 조폐공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정책이 바뀌면서 실제 발주량은 계약물량의 6400여만장, 4억원으로 3.2%에 그쳤다.
이들 기업은 물량을 맞추기 위해 64억원의 시설투자를 했지만 정책이 종료되면서 조폐공사와 업체 간 납품계약은 지난해 말 종료됐다. 투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은행이자만 매달 1000만원씩 나오고 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한국조폐공사는 해당 소송에 대해 환경부가 정책을 바꾸었기 때문에 귀책사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로부터 일회용컵 보증금 표시라벨 업무를 부여받아 한국조폐공사와 업무 협약을 맺고 계약을 진행한 코스모(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역시 보상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궁화엘앤비 대표는 “조폐공사와 나라장터를 통해 정식 계약했고, 19억원 가량 납품하기로 돼 있었다”며 “계약을 진행했는데 실제 진행한 건 1%에 불과하다. 1900만원 매출로는 중소기업은 버틸 수 없다. 세롬이나 저희는 그나마 버텼지만 웬만한 중소업체는 줄파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계약기간 종료 후에도 기업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민간계약도 이런 식으로 하진 않는다. 국가에서 하는 계약이라 믿었는데 엄청난 피해를 입고 보니 정부 계약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조폐공사 측에 이의 제기도 했으나 근거가 없다고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오아시스물류 대표도 “조폐공사는 인쇄 기술로 따지면 세계 최고 기업이다. 이처럼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에서 일회용품 보증금제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기업에 피해를 준다는 건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들 업체에 따르면 코스모는 2021년 10월에 조폐공사와 협약을 맺고 고유번호를 인식할 수 있는 라벨지 생산을 위탁했다. 조폐공사는 2022년 4월 정부 입찰을 통해 라벨지 20억장 생산을 세롬인쇄(14억장)와 무궁화 인쇄(6억장)에, 배송을 오아시스물류에 맡겼다. 각 기업들은 지난해 12월 31일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받아 설비에 투자하고 신규 직원까지 채용했다.
그러나 납기일이 다가올수록 조폐공사는 전국 시행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라벨지 피해기업들은 조폐공사에 계약이 변경되는지 문의했으나 조폐공사는 “본래의 계약대로 진행하라며 추후 손해에 대해서는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2023년 11월 7일, 환경부는 일회용품 보증금제 전국 시행 철회를 선언했고, 라벨지는 사용처를 잃게 됐다. 조폐공사는 계약금액의 4%에 해당하는 물품만 발주를 넣었고, 라벨지 생산을 위해 투자한 업체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
앞서 해당 기업들은 이날 열린 '일회용컵 보증금제 철회 피해기업' 기자회견에서 “환경부가 소송을 핑계로 뒷짐만 진다면 정부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폐공사·코스모와 함께 피해기업의 손해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와 을지로위원회 위원들은 “정부가 이들 피해기업의 손해를 신속히 보상해야 하며, 일회용품 축소를 위한 일관된 환경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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