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삼성 백혈병... "반도체 라인 자녀들에 이상징후"
[김종철, 이정민 기자]
▲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노무사)가 6월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서교동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이정민 |
인터뷰 내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였다. 최근 삼성전자의 사업장 안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의 목소리 톤은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가끔 한숨도 내쉬었다. 이종란 노무사다. 그는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상임활동가로 더 친숙한 인물이다.
17년 동안 반도체공장을 중심으로 위험성을 널리 알려가며, 삼성으로부터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이끌어낸 이 노무사는 "과거보다는 약간 개선됐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장의 위험은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단지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와 지난달 25일 마주앉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피폭사고가 일어나고, 휴대폰 협력업체에서 21살 청년이 백혈병에 걸리고, 베트남 공장의 환경안전 문제가 국제적인 사건으로 불거지고 있었다.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인터뷰 장소인 오마이뉴스 서교동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그는 가방에서 컴퓨터를 먼저 꺼내 들었다. 이어 주섬주섬 기자회견문도 올려놨다. 산재보험 60년(7월 1일)을 맞아 국회에서 회견을 마치고 온 참이었다. 이 노무사는 "어~휴"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산재보험이라는 것이 누구나 일하다가 다치고 병들다 죽게되면, 국가가 공적으로 치료 등을 해주는 것"이라며 "(제도를) 도입한 지 60년이 됐는데도, 노동자들이 보험을 적용받기가 너무나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중소 하청 비정규직, 특수고용,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경우 산재보험을 더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자신이 얻은 병을 입증할 정보나 능력이 부족한 노동자에게 산재 입증 책임을 지우는 현행법이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아리셀 화재사고, 원청 협력 삼성 SDI의 책임 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에 수백여종의 화학물질이나 방사선 등 중요한 정보들이 영업비밀로 막혀 있는데, 어떻게 입증하나요. 법원에선 그동안 업무와 질병간의 인과관계를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수준에서 판단해왔는데... 근로복지공단이나 노동부 등은 거꾸로 가고 있어요."
▲ 6월 25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현장수색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 어제 화성에서 리튬이온전지를 다루는 공장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는데.
"(고개를 저으며) 말도 안되는 일이 2024년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요.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 대부분이 일용직, 여성 이주노동자들이에요. 내일(26일) 노동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대책위 꾸려서, 회견을 한다고 해요. 저도 참석하려고요."
- 최근 들어 반도체 뿐 아니라 1,2차 전지 등의 수요가 크게 늘면서, 관련산업 종사자들의 안전문제도 계속 불거지고 있다고 해요.
"리튬 전지는 더욱 조심해야죠. 화재와 폭발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회사에서 몰랐을까요? 기본적인 안전보건 대책이나 가이드라인 등이 제대로 없거나, 아예 안 지켜졌거나... 얼마나 관리감독이 소홀했으면 20여명의 목숨을 잃게 했을까요."
그는 리튬 배터리 제조업에 대한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이번 사고가 난 '아리셀'은 삼성 에스디아이(SDI) 협력사인 '에스코넥'의 자회사예요. 말이 자회사이지, 실제로는 에스코넥이 96% 지분을 갖고 실질적인 지배관리를 해왔다고 해요. 에스코넥이 삼성SDI에 전기차 핵심부품을 납품하고, 아리셀은 에스코넥에 납품하는 다단계 하청구조죠. 위험천만한 리튬전지를 생산하면서 화재예방 기본도 안 갖춘 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구조가 진짜 문제죠."
이 노무사는 "삼성SDI는 1차 전지 회사가 아니어서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인가"라며 "불법 도급, 불법파견 등에 눈감는 정부, 위험한 작업을 하청 다단계로 떠넘기는 업체 등이 이번 사태의 진짜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삼성SDI 중국공장에서도 몇해 전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진압을 할 수 없어 건물 하나가 다 탔다"면서 "국내서도 크고 작은 산업재해가 많은 회사인데도, 제대로 산재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반올림이 낸 자료에 따르면, 삼성 SDI 울산사업장의 경우 업무상질병 산재은폐건으로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으로부터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았다. 또 삼성SDI 자회사인 에스티엠도 산재은폐로 과태료 처분과 검찰 기소까지 이뤄졌다.
▲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노무사)가 6월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서교동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이정민 |
"(잠시 생각하며)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긴 해요. 전자업계의 하청구조가 만연해 있고, 위험을 이들에게 떠넘기는 구조가 있어요. 구미 사업장의 경우는 위험업무를 도급 준 것보다는 핸드폰 생산 조립업무의 일부였어요. 문제는 열악한 안전시설과 제대로 된 보호장구 없이 헐값으로 학생들을 고용하는..."
- 회사 공장 내부를 직접 보셨다고, 어떠셨어요.
"사고 이후, 언론 등에 나오고 회사에서 뒤늦게 공장 내부를 공개했어요. 우리처럼 외부인이 점검하러 들어갔는데, 나름 깨끗하게 하려고 했겠죠. 그런데도 문제가 있었어요."
- 어떤 문제가.
"예를 들어 실내 여러 설비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발암, 독성 물질 등이 나올 수 있는 것을 대비해서 배기시설을 통해 외부로 빼내야 하는데, 옥상에 정화장치가 없는거예요. 저희쪽에 공조환기전문가도 있었는데, 그 분께서 꼼꼼히 보시더니, '문제가 많다'고 하시더군요."
구미사업장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아니 언론의 관심이 잠시 줄어든 탓인지,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했다. 지난 8개월 동안 수천만원 넘게 들어간 백혈병 치료비 보장에 대해서도 회사쪽은 부정적이다. 산재처리도 마찬가지. 삼성전자의 협력사로서 최소한 삼성이 제시한 기준이라도 맞추라는 요구에도 별 반응이 없다고 한다.
이 노무사는 "삼성의 기준도 마땅치 않지만, 최소한 치료비는 당연히 보장해준다"면서 "치료비 이외 유급병가 6개월에 상병휴직 3년은 보장하기로 돼 있지만, 회사쪽에선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가족과 시민사회노동단체 등에선 '케이엠테크와 삼성전자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 학생에 대한 치료와 회복에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 이같은 '당연한' 요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친구 소개로 노무사 공부를 시작해 자격을 딴 이종란 노무사는 2007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만나면서 삼성과의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스물세 살이었던 황유미씨는 삼성전자 반도체라인에서 일하다 그해 3월 급성백혈병으로 짧은 삶을 마감했다.
17년의 지난한 싸움…"삼성 백혈병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싸워야 했던 건 '삼성'만이 아니었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져야할 정부, 의료기관, 언론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삼성공화국'을 실감하면서, 싸워야 했다. 그는 "17년이 지났네요. 엊그제 있었던 일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 앞서 리튬공장부터 휴대폰 협력업체도 그렇고, 얼마전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피폭사고도 있었죠.
"(고개를 흔들며) 사실 언론에 나온 내용대로라면 방사선 피폭량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손가락이 변질될 정도라면... 아마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역학조사가 이뤄지고 있겠지만, 조사가 제대로 돼야 해요. 또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조사도 마찬가지고요. 아마 회사쪽에선 작업자의 실수 등을 이야기할수도 있겠죠. 하지만 기계적 결함을 먼저 생각해봐야죠."
- 과거에도 똑같이 반복됐던 이야기들이죠?
"옛날에도 그랬죠. 정말 많은 생각이 드는데요. 요즘 삼성 반도체 기흥사업장의 3라인 여성 피해노동자의 자녀들 산재 상담을 하고 있어요. 아까 17년이 흘렀다고 했는데, 지금도 백혈병 사건이 진행중에 있어요."
- 자녀들까지요?
"기흥 사업장은 1983년부터 가동했으니까, 가장 오래되고 노후됐죠. 반도체 웨이퍼 작업에서 수동으로 해야하는데... 요즘 짓는 화성공장 등은 전부 자동화돼 있죠. 자동화되어 오퍼레이터가 없다고 그래요. 하지만 기흥공장에서 하얀 방진복을 입고 일한 여성 작업자들은 반도체 웨이퍼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죠. 이분들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이상징후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것도 기흥사업장에서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아이들에게서 말이죠."
- 얼마나 될까요.
"(잠시 생각하다가) 많아요. 사실 아직 정확한 규모를 이야기하기가 애매하지만 당시 기흥공장 반도체라인에서 직업성 암을 가졌던 여성분과 자녀들의 질환에 대한 문제는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반도체 공장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800에서 1200여종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많은 물질이 생식독성 물질예요. 그 피해가 세대를 거쳐서 나타나는 거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
- 지금도 평택, 용인 등지에 가보면 반도체, 2차전지 공장 짓느라 정신없는데요.
"정말 미친 짓인 것 같아요. 맨날 하는 이야기가 고용창출이죠. 물론 일자리 늘겠지만, 정말 해당 산업에 대한 안전보건 영역을 생각하고 있는지 회의적이에요. 2차전지 산업도 전기차 수요 등으로 투자가 계속된다고 하지만, 제대로된 작업환경 메뉴얼조차 없어요."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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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대화는 1시간을 훌쩍 넘겨 이어졌다. 가끔 체념한듯, 답답한듯 말을 이어갔다. 삼성 백혈병 사건은 1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행중이다. 오히려 더 악성이 돼 돌아온 느낌이다. 전자 산업은 점점 고도화로 치닫고, 반도체 등 각종 설비는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죠. 반도체 사업장이든, 전자사업장이든, 과거보다는 제품품질 등의 이유로 자동화 설비가 들어서면서 환경개선이 있긴해요. 하지만 정작 위험한 일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이것을 협력업체를 통해 하청을 주거나, 하도급으로 돌리고 있죠.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느냐, 삼성도 협력사 관리 책임 있지만, 과연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을까.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무슨 업무가 어떻게 이뤄지는 모른채, 어느날 갑자기 '펑'하고 터지죠."
다시 돌아가자. 그는 "한 해에 20여만명이 암에 걸리는데, 이 가운데 4%정도 1만여명이 직업상 암으로 여겨진다"면서 "이들 가운데 실제 산재 신청자는 수백여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지 않으면 아예 통계도 잡히지 않을뿐더러 산재 처리 자체가 되지 않아요. 독일의 경우 산재의심 환자가 병원에 가면 의사가 체크해서 산재로 판단되면 바로 (산재절차가) 개시돼요. 이것을 직권주의 방식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이렇게 해야죠. 지금 우리의 건강보험은 병원에서 바로 인정되고 처리되잖아요. 산재보험도 할 수있는데..."
그는 다시 가방을 주섬주섬 고쳐 맸다. 다가올 일정과 일들이 빼곡하다. 그의 목소리와 그가 써내는 보고서, 그를 기다리는 많은 노동자들... 오로지 일터에서 다치고 병들어 운명을 다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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