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극단 펀치드렁크의 첫 해외 워크숍은 왜 충주에서 열렸나
지난 9일 충주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학생회관 2층 이승진홀. 충주시와 충주문화관광재단 문화도시센터가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 관계자 5명을 초청해 개최한 ‘이머시브 씨어터’ 워크숍이 열렸다.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이어지는 워크숍 가운데 이날은 참가자들이 공연을 계획하는 실습 시간을 가졌다. 4개 조로 나뉜 참가자 18명은 학생회관 건물 전체를 활용해 셰익스피어의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밤의 꿈’ ‘태풍’을 이머시브 씨어터로 공연하는 계획을 수립한 뒤 펀치드렁크 관계자들의 조언을 들었다. 이날은 펀치드렁크의 프로듀서&관객 경험 큐레이터 콜린 나이팅게일과 커뮤니티&크리에이티브 참여 디렉터 조지아 피기스가 강사로 나섰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 공연계를 강타한 이머시브 씨어터(Immersive theater)는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기존 연극과 달리 배우들과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며 이야기 일부로 몰입시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말로 ‘몰입형 연극’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머시브 씨어터는 2000년 영국 엑시터대학 연극과 학생이던 펠릭스 배럿이 졸업공연으로 극장 대신 인근 폐 군막사에서 연극 ‘보이체크’를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군막사 곳곳에서 극 중 장면들을 동시 진행하는 한편 마스크를 낀 관객이 그 안을 돌아다니도록 했다. 기존의 관극 방식을 뒤엎은 ‘보이체크’가 호평받은 후 배럿은 펀치드렁크를 설립해 적극적으로 이머시브 씨어터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영국의 권위 있는 신문 가디언은 배럿에 대해 ‘연극을 재발명한 선구자’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펀치드렁크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것은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의 상업적인 성공이 큰 역할을 했다. 런던에서 2003년 초연한 ‘슬립 노 모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1930년대 배경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제목은 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 맥베스가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다”며 절규하는 대목에서 따왔다. 이 작품은 2009년 미국 보스턴에서 선보인 뒤 2011년부터는 뉴욕에서 지금까지 상설공연 중이다. 물류창고를 개조한 극장 공간이자 가상의 호텔에서 관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100개 넘는 방을 오간다. 중국 상하이에서도 2016년부터 공연 중이며, 한국에서 오는 9월 폐관하는 대한극장에서 내년부터 공연할 계획이다.
펀치드렁크 창단 초기부터 함께해온 나이팅게일은 “우리는 관객이 공연을 통해 잊지 못할 경험을 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펀치드렁크는 이야기의 재구성에 공을 들인다. 관객이 전체 작품의 파편화된 장면들을 보기 때문에 대중에게 친숙한 고전을 토대로 작업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이팅게일은 “같은 작품이라도 펀치드렁크의 해석이 독창적인 것은 작은 캐릭터까지 중시하며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워크숍은 이머시브 씨어터 제작에 필요한 4가지 핵심역량을 탐구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한 프로그램당 20명씩 총 80명을 모집했는데, 60% 비율로 뽑은 충주 출신 참여자는 2대 1 그리고 충주 외 지역 참여자는 5대 1의 경쟁을 거쳐 선정됐다. 펀치드렁크에서 커뮤니티와의 연계를 담당하는 피기스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펀치드렁크는 학교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 밖에서 워크숍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번에 우리 창작진이 한국 예술가들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오히려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고 있다”고 웃었다.
이번 워크숍은 문화도시로 선정된 충주가 단발성 이벤트 공연 대신 장기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펀치드렁크 창작진 초청에 공을 들인 끝에 성사됐다. 신재민 충주문화관광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은 “충주와 같은 인구 20만명 내외의 도시에게는 문화가 새로운 성장동력과 문화산업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에 이번 워크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충주=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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