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반한 여자들, MZ 감독의 사랑법

장혜령 2024. 7. 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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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장혜령 기자]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스틸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땀 냄새 가득한 미국 뉴멕시코 주의 소도시. 한 체육관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루(크리스틴 스튜어트) 앞에 노숙과 히치하이크를 이어간 잭키(케이티 오브라이언)가 나타났다. 태어난 곳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루는 잭키의 자유분방함에 매료된다. 둘은 외모도 성격도 다르지만 자석의 N극과 S극이 끌리는 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에 빠진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어느 날 이성을 잃은 잭키가 살인을 저질러 위험한 수렁에 빠진다.

사실 루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언니 베서니(제나 말론)를 돌보며 하루하루 분노를 쌓아가고 있었다. 근처 사격장을 운영하는 루의 아빠 랭스턴(애드 해리스)은 지역 경찰을 매수해 불법적인 사업을 수년간 이어갔다. FBI의 수사의 법망도 따돌리던 랭스턴은 자신의 사업을 딸인 루와 사위 JJ(데이브 프랑코, 루의 형부)까지 연루된 가족 사업으로 확장하며 족쇄를 채웠다. 

루는 아빠의 범죄 은닉 장소에 잭키가 죽인 시체를 유기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우연히 데이지(안나 바리시니코프)를 만나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위기를 덮기 위해 더 큰 일을 벌인다.

A24가 알아본 MZ 감독, 로즈 글래스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스틸컷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감독 로즈 글래스는 4년 전 <세인트 모드>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돼 대중과 만났는데, 이미 마니아 사이에서 확고한 고집을 지닌 젊은 감독으로 주목 받는 신예였다. 데뷔작 <세인트 모드>는 <더 위치>, <유전>, <미드소마>를 제작한 A24 공포물로 믿음과 구원이란 주제로 관객의 폐부를 찌르는 심리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믿고 보는 할리우드 제작사로 자리매김한 A24와 또다시 함께한 로즈 글래스는 이번에 도발적이고 힙한, 질주하는 로맨스를 꾸려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크래쉬>, 폴 버호벤의 <쇼걸>, 츠카모토 신야의 <6월의 뱀>,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등을 레퍼런스 삼아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톤을 잡아갔다. 여기에 감독의 독창성과 대범함이 더해지자 전혀 다른 결과물이 탄생했다. 성별에 구애 없는 러브스토리를 거부감 없이 전하는 뚝심,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힘'과 '육체'를 강조한 폭력의 미학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때를 배경으로 유행한 음악을 OST에 담았다. 예고편에 흐르는 그룹 '브론스키 비트'의 '스몰타운 보이'는 레즈비언 커플의 사랑을 운명으로 엮을 결심처럼 들린다. 영화는 뒤로 갈수록 극도의 흥분으로 치달으며, 아드레날린 분출을 부추긴다. 눅진한 땀 냄새, 부유하는 먼지, 미묘한 호르몬이 불출하는 관능적인 분위기는 살인과 복수, 광기와 욕망, 퇴폐미까지 반짝이게 만든다.

사랑,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스틸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80~90년대는 모든 게 넘쳐나던 과잉의 시대였다. 술, 약물, 담배를 서슴지 않던 불온한 불안이 과했던 때다. 스테로이드제로 과한 근육을 부풀려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던 잭키는 분노가 극에 달하자 심연의 어두움을 에너지로 바꾼다. 그의 초능력 근원이 약물인지 사랑의 힘일지 아리송하다. 이런 판타지는 영화 안에서 결정적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화가 나면 몸집이 커지는 잭키는 <걸리버 여행기>, <헐크>처럼 순수하면서도 사악한 괴물로 변신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사고뭉치 잭키의 사건·사고를 수습하기 바쁜 루는 몸은 힘들지만 꿈을 좇는 연인을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만의 꿈을 꾼다. 루는 언니와 형부, 아빠와 범죄에 얽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지냈다. 그렇게 억눌린 자아가 잭키를 만나 자유를 만끽하고 욕망을 실현한다. 폭압적인 남성(아빠, 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도전할 용기를 내며 도망가려 한다. 한 번도 마을 밖에 나가본 적 없는 루에게 LA로 도망치자는 잭키의 제안은 탈출의 원동력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인간은 사랑에 빠지면 미치광이가 되어버리는 이성적 오류에 빠진다. 사랑의 힘으로 이성을 잃고 혼란에 빠지는 경험, 한 번쯤 사랑을 해봤다면 도파민 과다 분비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모든 걸 걸어도 아깝지 않을 폭주,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은 오늘만 사는 청춘의 혼란스러움이 뒤엉킨다. 작은 질투는 의심을 부르고 커진 의심이 토네이도를 만들며 주변 에너지를 빨아들여 결국 파멸에 이른다.

영화 속 루와 잭키의 사랑은 옳고 그름을 떠나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관계 그 이상을 보여준다.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헌신은 범죄로 치닫고 잔인한 폭력을 덧입혔지만, 그들만의 세상에서 행복하리라 상상한다. "내 살과 뼈가 으스러진다 해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절절함은 "사랑한다면 날 통째로 먹어줘"라는 영화 <본즈 앤 올>의 섬뜩하지만 황홀한 사랑 고백만큼이나 로맨틱하게 들린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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