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고대왕국이었나… 고령 대가야 궁성지 해자서 '대왕토기' 출토
부족국가 연맹체인가 고대국가였는가, 고대 ‘가야’의 실체에 관한 논쟁을 생산적으로 부추길 큰 단서가 발견돼 국내 학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경북 고령군(군수 이남철)은 최근 ‘대가야 궁성지 발굴·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대가야 궁성지 정밀발굴조사에서 대왕(大王) 글자가 새겨진 토기로 추정되는 조각이 발견돼 지난 9일 공개 설명회를 열었다고 10일 밝혔다.
궁성지 해자 내부에서 발견된 이 파편에는 ‘大’자 명확히 새겨져 있고 바로 아래에 이어 ‘王’으로 추정되는 글자 일부가 새겨져 있다. 이날 고대사 및 고고학 전공자들이 참석해 이 출토물에 관해 관심을 쏟았다. 조각이 이 지역에서 쓰였던 토기의 일부가 맞고 이 옹기의 주인이 만약 대왕이었다면 대가야는 부족장이 이끄는 국가를 뛰어넘는 왕국체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령군은 올해 3월부터 대가야 궁성지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대가야읍 연조리에서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앞서 이번 조사 과정에서 대가야시대 토성벽의 흔적과 해자가 확인돼 학계전문가와 주민을 대상으로 지난달 21일 현장공개 설명회를 개최했었다.
이후 대가야시대 해자 최하층에서 발굴한 유물을 수습·세척하는 과정에서 ‘大’자와 ‘王’로 추정되는 글자를 양각해 놓은 토기 조각을 발견했고 이에 대한 공개 및 검증을 위해 대구·경북지역 고대사, 고고학 교수 대상 공개 설명회를 가진 것이다.
고령군에 따르면 대상 유물은 타날흔이 시문된 장동옹으로 추정되며 일부분만 남아있다. 명문은 음각한 인장으로 찍힌 채 글자는 비교적 선명하게 확인되는 ‘大’자와 아래에 ‘王’으로 추정되는 글자가 있으나 아쉽게도 하단부는 결실돼 분명하게 알기는 어렵다.
공개 설명회에서는 결실된 글자의 해석에 큰 관심이 쏠렸다. 참석한 대부분의 전공자는 해당 글자가 ‘王’으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고 대표적인 두 가지 의견이 모였다.
해당 글자는 ‘王’ 혹은 ‘干’으로 추정되나 ‘王’의 경우 두 번째 가로가 첫 번째 가로획보다 짧게 쓰였고 ‘干’의 경우 두 번째 가로획이 첫 번째 가로획보다 길게 쓰인 점을 고려할 때 해당 글자는 ‘王’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충남대학교 소장품인 大王명 유개장경호의 경우 출토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번 출토된 명문토기와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6세기 중후엽 제작된 대왕명 유개장경호의 선례를 고려해 볼 때 해당 글자는 ‘王’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번 명문 토기의 출토는 대가야사 연구에 큰 획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의 왕도인 고령지역에서 최초로 출토된 명문이면서 이를 ‘大王’으로 읽을 때 대가야 궁성지의 실체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이는 근래 제기되고 있는 대가야 고대국가론에 큰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금관가야로부터 대가야에 이르기까지 부족 연맹체 중 가야국을 대표하는 맹주로 여겨졌고 강력한 군주가 다스리는 독립된 왕국으로 가야를 보는 시각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었다.
다만 명문의 해독 및 명문 토기의 의미에 대해서는 현 단계에서 단정짓기보다는 학계에 이를 보고하고 학술토론회를 통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모든 참석자가 동의하는 모양새다.
이에 고령군은 발굴조사기관과 협력해 ‘大王명 토기’에 대한 학술토론회를 개최해 해당 유물이 지니는 역사적 가치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군은 해당 유물의 명문은 인장으로 찍은 것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과 대가야 궁성지 발굴조사에서 하자 및 석벽부가 조사구역 동편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해 ‘대가야 궁성지 발굴 정비사업’을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추진키로 했다.
가야사 연구는 삼국의 역사에 비해 소외돼 온 것이 사실이지만 지속적인 조사·연구·복원·정비 등을 통해 그 역사문화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그 결과 2023년 9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한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2024년 7월 고령군이 20년 만에 신규 고도로 지정되는 등 성과가 있었다.
고령군은 올해 하반기부터 대가야권 최대고분인 ‘지산동 5호분’, 고령지역 최대 토기 가마 유적인 ‘합가1리 토기 가마 유적’, 대가야-신라의 접경지대에 축조된 ‘봉화산성’ 등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또 본격적인 대가야사 연구복원사업으로 역사문화도시 고령군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영남취재본부 조충현 기자 jch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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