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일운동, 진보정치 헌신한 조영건 고문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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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통일·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 겸 구속노동자후원회장이 9일 타계했다.
조영건 교수에 대해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변함 없이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지켰던 분이다. 평생을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사셨다"라며 "얼마 전까지 건강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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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효 기자]
▲ 고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 겸 진보당 고문. |
ⓒ 윤성효 |
평생 통일·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 겸 구속노동자후원회장이 9일 타계했다. 향년 84세.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던 고인은 경남중·고교, 서울대를 나왔다. 역사학(석사), 경제학(박사)을 공부했던 고인은 1971년 건국대 시간강사로 교단에 섰고, 1975년 청주대 전임교수에 이어 1979년 3월부터 경남대 교수로 있었다.
1960년 3·15의거, 4·11민주항쟁에 영향을 받아 일어났던 4·19 때 서울대 학생이었던 고인은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무대 앞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중학생을 옮기는데 함께했고, 이때 그의 얼굴이 언론사 카메라에 잡혀 보도되기도 했다.
조 교수는 경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1982년 노동복지연구소를 설립했고, 1988년에는 현재 사월혁명회의 전신인 사월혁명연구소를 김진균 교수 등과 함께 만들어 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진보정치 활동을 한 1997년 권영길 전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당 창당 10인 준비위원에 참여했고, 2006년 대학 정년퇴직 뒤 진보정치연구원 이사장,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공동대표, 6·15공동선언 학술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 등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또 고인은 2006년 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진보정당의 진보정치연구원 이사장을 지냈고, 옛 통합진보당 고문에 이어 현재까지 진보당 고문으로 있었다.
조영건 교수에 대해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변함 없이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지켰던 분이다. 평생을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사셨다"라며 "얼마 전까지 건강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다.
권영길 전 의원은 "진보, 평화, 통일, 민주를 위해 평생 열성적으로 일했고,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사셨던 분이다"라며 "옛 민주노동당을 함께 창당했다. 여러 진보활동을 함께 해왔고, 많은 생각이 난다"라며 고인을 떠올렸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2호실에 마련됐다. 고인을 기리는 추모의밤 행사는 11일 오후 7시에 장례식장에서 열린다. 발인은 12일 오전 6시 30분이고 장지는 마석모란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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