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생협 출신은 면접도 안 본다는 이유

신지심 2024. 7. 10. 12: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식당 노동자들 "감당할 수 있는 노동 강도 벗어나"

[신지심 기자]

"천원의 식사"란 정부와 학교의 지원으로, 대학생들이 양질의 식사를 천 원에 누릴 수 있는 제도이다. 최저임금은 만 원을 넘지 못하지만 한 끼 밥값은 만 원인 시대. 천원으로 양질의 식사가 가능한 서울대 학생회관 식당은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다. 다른 대학에서 천원의 식사는 하루 배식량이 정해져 있지만, 서울대는 무한정 제공하고 있기에 총장도 자랑스럽게 인증샷을 찍게 하는 '멋진 신세계' 다. 그런데 천 원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도 과연 행복할까.
 
 서울대 학생회관에 걸린 '천원의 아침밥' 홍보 펼침막
ⓒ 함께노동
생색내기 좋은 제도 뒤에 숨은 노동자들의 땀방울엔 누구 하나 관심 가지지 않는다. 1600식을 배식하는 3~4명의 노동자, 기온 40도, 습도 90%의 주방에서 밥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노동자들은 다가오는 여름이 두렵기만 하다. 
함께노동(준)이 찬란한 성과에 가려진 서울대학교 생협 식당 노동자 4명을 만나보았다. 학생들에게 밥심을 주기 위해 링거를 맞으며 버티고 있는 가려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감당할 수 있는 노동 강도 벗어났어요.

-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다들 손발이 착착 맞고 모두가 1인 다역을 하시던데요.

"저희도 '내가 사람인가? 기계인가?' 생각이 들긴 해요. 대부분 15년 이상 근무하다 보니 그렇게 기계처럼 하게 돼요. 최근에 1명 인원이 늘었는데 새로 온 사람은 적응이 안 되죠. 다른 업체보다 3~4배의 일을 기계처럼 해내야 하니까요."

- 서울대에서 '천원의 행복'을 시행하고 나서 일이 더 힘들어졌나요?

"천원 식사가 만들어지면서 기숙사 식당에서 하던 아침 식사가 중단되고, 학생회관에서 수용하고 있어요. 체감상 2배는 늘어난 거 같아요. 저희는 완제품 안 쓰고, 재료 손질부터 다 하거든요. 점심에는 밥을 1700개 푸는데 손목, 팔, 어깨가 다 아프고, 밥솥 옮기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나요. 50인분 밥솥 하나 비우는데 5분이 안 걸려요. 감당할 수 있는 노동강도를 벗어났다고 봐요."

"밥 나가는 코너가 세 코너가 있는데, 한 코너당 4명 정도 일하고 한 코너에서 많을 때는 1600개도 나가요. 아침·저녁까지 합치면 전체 5000~6000식 정도 되고요. 저녁엔 두 코너만 열리는데 이 때는 3명이서 일하니 더 힘들어요."
 
▲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식당  3곳의 배식구에서는 11시부터 2시까지 쉬지 않고 배식이 이루어진다. 한 코너에서 3~4명이 일하는데 많을 때는 1600식이 나가기도 한다.
ⓒ 함께노동
 
조리부터 설비, 화장실 청소까지 '모두 다' 해야 하는 배식 노동자
 
- 배식과 퇴식으로 일이 나뉘는 것 같은데, 그 이외에도 하시는 일들이 있나요?

"출근하면 재료 손질부터 시작하죠. 조리사분들이 따로 있지만, 우리가 원래 맡은 업무가 아니어도 도와줘야 해요."

"저는 심지어 호스도 고치고 설비도 다 해요. 설비팀이 따로 없고, 설비팀 채용을 요청해도 안 해줘요. 사무처에 수리를 요청해도 안 되고, 어떻게든 해야 하니 직접 고치기도 해요."

- 각자 정해진 업무가 있는데, 자기 맡은 일만 하면 안 되는 분위기인가요?

"여기 생협 직원들은 모두 다 해야 한다고 배워요. 어느 자리를 가든 다 할 줄 알아야 하구요. 다른 업체로 이직하면 서울대 생협 출신은 면접도 안 본다고 그래요. 그 정도로 이름나 있어요."

"예전에는 화장실 청소도 우리가 직접 다 했어요. 노조에서 이의제기해서 몇 년 전에 겨우 (안 하는 걸로) 바뀐 거예요."

"진짜 내 일만 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지금 상상을 한 번 해봤어요. 그러면 절대 배식 시간에 맞춰서 할 수 없어요."
 
저희끼리는 그래요. 누구 한 명 다쳐야 고쳐주지.
 
- 인원이 부족한 것 말고는 힘든 점은 없나요?

"일하다 보면 위험한 부분들이 눈에 보여요.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누구 하나 다쳐야 고쳐주지 절대 그냥 안 고쳐 준다' 해요. 진짜로 다치면 우리가 부주의해서 그렇다고 하죠."

"그나마 다치면 산재 처리라도 해주는데, 저희는 직업병이 90%인데 이건 산재 처리도 어려워요."

 
서울대 식당 노동자들이 측정한 실내 온습도
ⓒ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 각자 경험하신 직업병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허리, 손목, 팔에 염좌는 다들 기본이에요. 한 번은 뚝배기를 3200번 옮긴 적이 있어요. 오른손을 반복해서 많이 쓰니, 저는 젓가락질이 안 돼서 포크로 식사해요. 다들 스테로이드 주사를 1년에 2번 정도는 맞아야 일을 할 수 있어요."

"무릎 아래까지 오는 무거운 앞치마를 걸치니, 걸음 폭이 좁아 무릎이 아프고, 바닥이 미끄럽고 바쁘다 보니 넘어지기가 쉬워요."

"늘 시끄러운 곳에서 일하고 큰 소리로 대화하다 보니 난청도 있어요. TV 볼륨을 보통 10 정도로 듣는데, 저는 30 이상으로 해야 들려요."

"늘 열기 속에 있어 한여름에 피부가 헐고, 사타구니랑 겨드랑이는 짓무르기도 해요. 솥단지, 튀김기가 3~4개씩 끓고 있어서 열기와 습도가 어마어마하거든요. 마스크 쓰면 질식할 것 같고, 설거지 세제가 독해서 얼굴에 튀고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고요."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의 땀에 젖은 작업복
ⓒ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 일하다가 아픈데 산재를 신청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하다 아프다는 걸 우리가 직접 밝혀야 하는 게 어려워요. 시간, 비용, 스트레스가 있다 보니 그냥 개인 병가로 두 달 정도 쉬는 게 나아요."

"우리가 나이 먹어서 퇴행성 질환이라고, 그래서 산재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다른 데서 나이 먹은 게 아니라, 20년 넘게 여기서 일하면서 나이 먹은 거잖아요. 이걸 일하다 아픈 거라고 입증해야 한다니, 그게 너무 어렵네요."
 
서울대 생협이라고 하면, '소개해 주고 싶은 직장'이 되는 것이 소원이에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2019년도에 저희가 노동조합과 함께 크게 투쟁하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해요. 그래도 아직 외부 업체에 비해 근무 환경은 갈 길이 멀었죠"

"저희야 이제 곧 정년이라 상관없지만, 앞으로 다닐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했으면 좋겠어요. 서울대 생협이라고 하면 거기 괜찮은 직장이지 하고 바로 가고 싶을 정도로요. 지금은 주변 사람에게 소개해 주면 욕 먹을까 봐 소개도 못 해요."

뜨겁고 숨막히는... '서울대 노동자의 여름'은 계속되는가

밥 짓는 노동에 마음을 담아 학생들에게 퍼주는 밥 한 그릇. 노동의 가치와 따뜻한 마음이 '밥심'을 만들어낸다. 밥심을 만드는 위대한 노동을 하는 이들이 바라는 것은 그 노동의 가치와 노동강도에 비해 너무나 소박했다. 연차를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쓸 수 있는 것, '다치기 전에' 시설이 정비되는 것,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자신의 직장이 '소개해주고 싶은' 직장이 되는 것.
 
▲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의 피켓 시위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조합원들이 적정 인력 충원을 요구하고 있다.
ⓒ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폭염 속 숨막히는 열기와도 싸워야 한다. 2021년 서울대에서는 청소 노동자가 일하다 숨지는 일이 있었다. 다치기 전에, 아프기 전에, 예고된 고통을 막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서울대학교가 추구하는 '진리의 빛'은 노동에도 비춰야 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