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수, 김정은 친서 007가방에 담아 왔다고 했다"
[구영식 기자]
▲ 안부수 아태협 회장 (자료사진) |
ⓒ 윤종은 |
청와대가 김정은 친서를 언론에 공개하기 전 안 회장이 중국으로 건너가 김성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실장으로부터 김정은 친서를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안 회장의 핵심 측근이자 아태협 핵심 관계자의 증언에 따른 것이었다. 다만 당시 <오마이뉴스>는 이 관계자의 구체적인 증언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이 관계자의 구체적인 증언은 지난 5월 한 언론인과 한 전화통화에 담겨 있었는데, <오마이뉴스>는 이 전화통화 중 '김정은 친서'와 관련된 내용을 확보했다.
▲ 청와대가 30일 오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온 친서를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문 대통령에게 향후 남북 관계를 위한 친서를 보내왔다고 청와대는 발표했다. 청와대는 친서의 직접 공개는 정상 외교에서는 친서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며, 표지와 일부 내용만 공개한다고 밝혔다. 2018.12.30 [청와대 제공] |
ⓒ 연합뉴스 |
아태평화교류협회에서 근무했던 A씨는 안부수 회장의 최측근으로 쌍방울그룹이 북한 측에 송금했다는 800만 달러 중 5억 원(180만 위안과 21만 달러)의 수표 환치기, 배달 등에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지난 5월 한 언론인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거기에 '김정은 친서'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 전화 통화에서 언급된 '김정은 친서'란 지난 2018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가리킨다. 당시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김 위원장은 A4 2장 분량의 친서에서 "연내 서울 방문이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로써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무산됐음이 공식 확인됐다.
당시 청와대는 김정은 친서가 '인편'을 통해 전달됐다는 점만 공개했고, 전달 방법이나 장소 등 구체적인 경로는 밝히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북측 인사가 직접 전달하진 않았다"라고 말해 김정은 친서 전달자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흘러 안 회장의 최측근인 A씨가 '김정은 친서를 남한 측에 전달한 사람은 안부수 회장'이라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A씨와 언론인의 전화통화 녹취록을 보면, 언론인이 "기사를 찾아보니까 2018년 12월 말에 김정은 친서가 왔네요"라고 하자 A씨는 "제가 듣기로는 (안부수 회장이 국내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그 다음날 다시 나갔어요, 그래서 '왜 나가냐?' 그랬더니 '급하게 연락이 와서 나간다'고 (했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A씨는 "심양에 가서 김성혜 실장을 만나고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나가야 한다고 나간 거거든요"라며 "(중국에서 돌아온) 그 다음날 (나갔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부수 회장에게 "급히 연락"한 북한 측 인사로 박희철 주심양 영사(통일전선부 선양대표부 대표 겸임, 국정원 문건에는 '박히철'로 표기돼 있음)를 지목했다. "누구를 통해 연락받았어요?"라는 질문에 "대부분 연락책은 박희철이니까"라고 답변한 것이다.
▲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018년 6월 11일 오전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에서 최강일 외무성 국장 대행(왼쪽)과 김성혜 통일전선책략부장이 성 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의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 유성호 |
이어 A씨는 "(안부수 회장이) 나갔는데, (중국) 심양으로 나간 게 아니라 북경으로 갔고, 들어와서 무용담처럼 (김정은 친서를) 얘기한 거거든요"라며 "나갔더니 북측 인사들이 북경 공항에 이렇게 쫙 대기하고 있더라고 (했어요)"라고 전했다.
안부수 회장이 2018년 12월 말께 중국에서 귀국한 다음날 북한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는데 북경 공항에 북한 측 인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국정원 문건과 이화영 전 부지사 1심 판결문 등에 따르면, 안 회장은 비슷한 시기(2018년 12월) 평양을 방문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났고, 중국에서도 김성혜 실장을 두 차례 만났고 전화통화도 했다.
A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북경 공항에 나온 북한 측 인사 중에는 김성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겸임)이 포함돼 있었다. 김성혜 실장은 남북 회담과 북미 회담 등에 참여한 북한 핵심 인사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기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 참석했고, 같은 해 북미정상회담 북한 수행단 일원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A씨는 "(김성혜 실장이) 거기서 직접 '이거를 뜯어보면 안 되고, 이거는 VIP(김정은) 친서다' 그러면서 그거(친서)를 007가방 같은 데 담아줘서 그대로 들어왔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그게 뭔데요? 그랬더니 (안부수 회장이) '이거 (김정은) 친서'라고 했어요"라고 전했다.
"그때 막 급하게 나갔다가 급하게 들어왔어요. 제가 지금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해서 그러는데 하여튼 급하게 나갔다가 급하게 들어와서 '뭐 급한 일 있었냐?' 그랬더니 '중요한 게 있었어' 그러기에 '뭐냐?'고 했더니 '친서를 가지고 왔다'고 해서 '무슨 친서요?' 그러니까 '김정은 위원장 친서 가지고 왔다'고. 그러면서 북경을 갔는데 거기에 막 세단이 쫙 깔려 있고, 김성혜 갑자기 딱 와서 '이거 열어보면 안된다'며 007 가방을 줘서 그거 가지고 들어왔다고 막 얘기했던 게 친서거든요. 그러고 나서 보도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네' 그랬거든."
김성혜 실장이 북경 공항에서 김정은 친서가 든 "007가방 같은" 것을 안부수 회장에게 전달했고, 안 회장이 그것을 남한으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A씨는 "(청와대가) 브리핑하면서 김정은 위원장 친서를 비공식 라인으로 받았다고 했는데 그 비공식 (라인)이라는 것은 김성혜를 통해서 (김정은 친서를) 안부수한테 줘서 안부수가 들어와서 전달한 거죠"라고 말했다.
김성혜→안부수→국정원→청와대 순으로 전달?
그렇다면 안부수 회장이 이렇게 가져온 김정은 친서는 어떻게 청와대에 전달됐을까? A씨는 안 회장이 김정은 친서를 '누구'에게 전달했는지와 관련 "아마 김 전무라는 국정원 직원한테 바로 주지 않았을까 싶은데요"라고 말했다. '김성혜→안부수→국정원→청와대'의 순서로 전달됐다는 것이다.
A씨가 언급한 '김 전무'는 국정원 블랙요원(신분을 위장해 공작하는 특수임무요원) 김아무개씨를 가리킨다. 김씨는 안부수 회장을 국정원 협조자로 지정해 특별관리하며 북한 고위인사들(김영철, 김성혜 등)의 동향을 수집하며 '2급 비밀문건'까지 작성한 인물이다. 하지만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이화영 경기도 부지사, 안부수 회장을 앞세워 주가조작을 하려는 움직임을 파악한 뒤 8개월 동안 국정원 협조자로 특별관리해 온 안 회장과의 관계를 종결했다(2019년 1월).
김씨는 지난 2023년 7월 4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비공개 증인신문에서 "쌍방울과 이호남의 주가조작 공모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라며 "국정원 직원이 전혀 근거없는 것을 보고서에 담을 순 없다. 쌍방울의 주가 부양 움직임과 가능성을 확인해서 2급 비밀문건(2019년 2월 1일 자)을 만들었다"라고 증언했다.
▲ 500억원대 횡령 및 800만 달러 대북송금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성태 쌍방울 그룹 전 회장이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4.19 |
ⓒ 연합뉴스 |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안부수 회장에 의해 김정은 친서가 전달된 이후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도 급물살을 탔다는 점이다.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쌍방울그룹과 북한 측(아태위, 민경련 등)은 지난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중국 심양과 단둥 등에서 총 여섯 차례 접촉했다. 같은 기간 쌍방울그룹은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전 청와대 통일비서관), 김영수 전 현대아산 전략기획실장(전 국회 대변인), 안부수 회장 등 대북 전문가들을 사내이사와 상임고문, 사외이사 등으로 영입했고, 정관의 신규사업목적에 '자원개발·광물성 제품 개발' 등을 추가했다.
특별히 김정은 친서 전달자 안부수 회장과는 업무협약, 남북교류협력사업 강화 등을 위한 후원 협약을 체결하고, 아태평화교류협회의 사무실을 쌍방울그룹 본사(서울 동대문구 신당동)에 입주시켰다. 공교롭게도 검찰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비용이라고 주장했던 800만 달러가 북한 측에 건네진 시기도 2019년 1월부터 2020년 1월까지였다. 쌍방울그룹이 적극적으로 대북사업에 나선 시기와 일치하는 것이다.
쌍방울그룹이 작성한 '나노스 IR 리포트'(2019년 1월 14일 최초 작성, 1월 29일 최종 수정)는 "나노스(핵심 계열사)는 북한의 책임 있는 대남 사업 당국인 아태위의 협력사업 추진 중심 기업이 됐다"라며 "민간기업으로는 10여 년 전 현대아산그룹을 제외하고 유일하며, 결과물은 현대아산그룹을 뛰어넘는 큰 합의 성과로 새로운 평화시대의 상징이자 남북관계 개선의 대표적인 기업이 된 것이다"라고 대북사업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한 사실과 상황을 헤아리면 김성태 전 회장이 김정은 친서 전달을 계기로 쌍방울그룹 대북사업의 중재자로서 안 회장의 위상과 가치를 인정하고 핵심 계열사(나노스)의 주가 부양을 위한 대북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이화영 전 부지사의 1심 재판부가 김성태 전 회장이 대북사업을 추진한 배경은 '안부수'가 아닌 '이화영'이라고 판결한 것과는 상당히 배치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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