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아니었으면 '푸른 산호초' 열풍 가능했을까

유정렬 2024. 7. 1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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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어 민희진 대표 기획력과 뉴진스 소화력, 기성세대 향수를 자극하다

[유정렬 기자]

 뉴진스 하니 '푸른 산호초' 커버 무대
ⓒ 어도어
 
가수가 특정 노래를 리메이크하거나 커버곡을 부르면 항상 따라다니는 논쟁이 있다. '원곡보다 나은가?'

얼마 전 뉴진스의 하니가 부른 '푸른 산호초(靑い珊瑚礁)'만큼은 그런 논쟁조차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니는 무대에서 그 자체로 빛났을 뿐 아니라 원곡 가수 마츠다 세이코의 명성 또한 더 빛나게 해 주었다.  

하니가 부른 푸른 산호초 커버곡 영상이 연일 화제다. 푸른 산호초는 일본의 전설적인 아이돌 가수 마츠다 세이코가 1980년에 발표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곡이다. 지난달 뉴진스의 일본 팬미팅 무대에서 하니는 마린룩으로 등장해 이 한 곡의 노래로 일본 팬들을 매료시켜 버렸다.

뉴진스 멤버 모두 다 활약이 대단했지만, 단연 돋보인 건 하니의 단독 무대였다. 폭발적인 반응은 유튜브와 각종 숏폼 영상들로 만들어져 국내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상 속에서 느껴지는 일본 팬들의 함성과 반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외국의 어린 아이돌 가수가, 그것도 무려 40년 전에 자국의 레전드 아이돌이 불렀던 노래를 재현해 줬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하니의 커버 영상을 접하기 전에는 마츠다 세이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아마 J-POP을 관심 있게 듣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나와 같았을 테다.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 영상에 뜨길래 '푸른 산호초' 원곡을 접할 수 있었고, 몇 건의 기사를 읽으며 그녀의 위상이 일본 내에서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능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이자 지금까지도 꾸준한 활동으로 사랑을 받아온 가수였다. 

하니의 커버 영상과 세이코의 원곡 영상을 모두 보고 나니 일본 팬들이 왜 그렇게 열광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하니가 보여준 무대는 뭐랄까, 뉴진스를 좋아하는 기존의 일본 팬들 뿐 아니라 과거 마츠다 세이코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아마도 이날 공연에서 팬들이 받은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이 노래이지 않았을까. 

그만큼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는 일본인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녀가 그 곡을 발표했던 1980년대 초반은 일본 역사상 황금기를 구가하던 때다. 폭발적인 경제 성장으로 국민의 삶이 풍요로워졌고, 세계에서 일본의 위상은 미국을 위협할 정도였다. 당시의 분위기를 이 노래에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푸른 산호초는 일본이 버블을 맞기 이전, 전성기 때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라 할 수 있겠다.

커버 그 이상의 의미
 
 마츠다 세이코 음반 커버 이미지
ⓒ 예스24
 
뉴진스 기획사 측에선 대중들이 무엇을 욕망하고 그리워하는지 치열하게 기획하고 구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도어와 하이브의 다툼으로 인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번 일본 공연을 보면서 적어도 팬들에게는 결론이 내려진 듯하다. 법적 다툼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민희진 대표가 이끄는 어도어 사단이 없었다면 이번과 같은 레전드 무대는 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하니의 '푸른 산호초' 무대는 단순히 한 레전드 가수의 곡을 커버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도어의 뉴진스여야만 하는 이유를 완벽하게 보여줬다. 확실히 민희진 대표의 기획력이 돋보였고, 그걸 또 완벽하게 소화해 낸 뉴진스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뉴진스가 무엇을 할 때 제일 빛나는지 증명해 냈다.

하니의 목소리와 의상, 분위기는 청량함 그 자체였다. 마츠다 세이코에 거의 빙의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표정, 심지어 손짓까지 섬세하게 연출해 냈다. 동시에 원래 뉴진스의 하니로서 가지고 있는 매력 또한 순간순간 배어 나왔다.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홀로 서는 것이 무척 긴장되었을 텐데 잘 이겨내고 팬들의 파도 위에 푸른 산호초로 우뚝 서 줬다.

이번 무대를 계기로 기존 팬들을 뛰어넘어 한층 더 두터운 팬층을 만들어 낼 듯하다. 원래 뉴진스의 주요 팬층인 젊은이들은 물론, 마츠다 세이코를 아는 기성세대마저 사로잡았을 테니 말이다. 일본의 마지막 황금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하니의 '푸른 산호초'를 듣는 순간 향수에 빠져들 것이다. 

1990년대의 국내 정서는 일본 문화에 배타적이었다. 일본으로부터 문화를 개방하면 국내 문화 산업이 모두 잠식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던 때였다. 극단적인 폐쇄 정책은 오히려 국내 대중들의 호기심을 부추겼다. 팬들은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J-POP을 구해 들었고 더욱더 그들의 문화를 동경했다.

엄청 과거의 일 같으나 고작 3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정말 그랬던 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양국의 문화적 위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의 K-POP이 타 문화보다 우수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대중문화에서는 적대감 없이 서로의 벽을 허물고 연결되는 경험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다.

뉴진스의 일본 무대야말로 그러한 것들을 증명해 냈다. 국적이 다른 대중임에도 그들이 가장 바라고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어코 찾아냈다. 거기에 최대한의 존중을 담은 무대 연출로 어느 외교 관계자도 해낼 수 없는 끈끈한 하나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냈다.  

한일 관계는 정치 역사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있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감 도는 관계로만 머물 수도 없는 일이다. 해결할 것은 해결하되 적어도 대중문화에선 이러한 교류가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진스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한다. '푸른 산호초'의 한 구절처럼, 하니가 일으킨 선풍이 남쪽의 바람을 타고 계속 시원하게 불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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