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묻는다, 폭염은 '자연' 재해인가
[최민]
여름이 오면 어떤 노동자들이 얼마나 높은 온도에서 일하는지 폭로하는 기사가 단골 메뉴이다. 라이더, 집배 노동자, 건설노동자 등 뙤약볕에서 일하는 옥외 노동자, 1인당 100인분씩 식사를 준비하다보니 5월이면 이미 작업장 온도가 30도가 넘는 학교 급식 노동자, 최근에는 냉방 시설이 너무나 부족한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주 농업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도 종종 언론에 등장한다.
그러나 '더울 때'만 기사로 소비되는 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작년 폭염 기자회견에서 만난 한 노동조합 활동가는 "가장 더울 때 기자회견을 하면, 보도가 되고 여론이 떠오를 때쯤 더위가 조금씩 꺾이고, 찬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폭염 때 누가 어떻게 일하다 세상을 떠났는지 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자발적인 측정 활동, 이제 실질적 해결로
이미 수년간의 문제제기와 투쟁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에 근거해 재해 예방조치를 해야 하는 범위가 확대돼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건강장해 예방 조치를 해야만 하는 '고열작업'은 용광로나 전기로 등 열원이 존재하는 장소에서의 작업을 위주로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제한적인 '고열작업' 규정으로는 "기후위기의 시대, 폭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2017년에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적절하게 휴식하도록 하는 등 근로자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고 (제566조),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그늘진 장소를 제공하도록 규정하였다(제567조). 2022년에는 건강장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는 대상에서 '옥외 장소'라는 단서를 삭제하고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하여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제566조)로 확대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폭염 관련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폭염 기준이 대기온도에 머무는 것에 대한 비판도 계속 됐다. 기상청에서 이미 기온과 습도를 고려한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특보를 발효하고 있는데, 기상특보를 따르라면서 가이드라인은 대기온도를 기준으로 해 온 것이다. 2022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새로 마련한 열사병 등 온열질환 예방지침에서도 체감온도 정보를 활용하고 자체적인 온열질환 관리 체계가 있는 경우 습구흑구온도지수를 이용하라고 제시했다.
그런데도 사업장에서 온·습도를 측정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이나 언론이 직접 측정하고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건설노조는 건설현장 곳곳에 온·습도계를 설치하고, 대기기온과 체감온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밝히며 대책을 요구해왔다. 여러 언론사에서도 다양한 폭염 노출 노동자들의 체감온도를 측정해왔다. 이에 고용노동부도 올해부터 폭염 기준을 대기온도에서 체감온도로 변경하고, 이를 근거로 체감온도가 31도를 넘으면 폭염에 대비한 조치들을 취하고, 33도 이상이면 시간당 10분, 35도 이상이면 15분 이상 쉬도록한다고 했다.
▲ 라이더유니온지부는 폭염 시 작업중지와 이를 가능하게 할 기후실업급여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작년 8월 열린 기자회견. |
ⓒ 라이더유니온지부 |
위험할 때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폭염 시 작업중지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다. 체감온도에 기반해 시간당 10분, 15분을 사업주가 쉬도록 한다는 가이드라인과는 다른 얘기다. 가이드라인은 객관적인 수치에 기반한 최저선이다. 온도와 습도는 물론, 본인의 상태까지 고려해 노동자가 스스로 작업 속도나 시간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는 산업안전보건법 상으로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고의적으로 작업을 해태하거나 회사에 해를 입히려는 것이 아닌 이상,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정희 연구위원은 '극한 기후 및 재해 발생 시 근무 거부'를 단체협약에 명시하는 방안도 제안한다.1) 건설노조는 최소한 공공기관의 발주 공사에서라도 혹서기 작업중단 보장을 명시해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에서는 도로교통공단이 관리하는 라이더 면허 정보와 플랫폼사의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폭염특보 발효 시 배달플랫폼이 일정 시간 배달을 중지하거나 작업량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했다. 학교급식 노동에 대해 교육공무직본부는 이중 열탕을 금지하거나, 간편식이나 반조리제품 활용 등으로 노동강도를 낮추면 더위를 식히며 일할 수 있다고 제기한다.
더울 때 작업을 멈출 수 있도록 소득 보장
물론 노동자 스스로 일을 중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고용노동부에서도 폭염기 '작업중지권'이 중요하다고 강조는 하고 있다. 올해 5월 고용노동부 차관은 "산안법에 따라 폭염기에 작업 중지를 발동하도록 권고하는데 지난해 점검 대상(2471개소)의 77%가 작업 중지권으로 근로자들을 보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현장 노동자의 체감과는 너무나 다르다. 작년 건설노조 설문결과 10명 중 8명은 "35도 폭염에도 실외 작업에서 중단 없이 일했다"고 답했다. 단순히 일을 잠시 중단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누가, 언제, 얼마나 긴 시간 작업을 멈추고, 어떤 조건에서 작업을 재개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이다.
작업중지권이 실질화되기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폭염 때문에 작업을 멈췄을 때, 임금 손실을 보장해주는 방안이 있다. 2021년 코로나 시기, 공공기관 발주 공사에서는 폭염 등 악천후 시 작업을 중지하고, 작업중지로 인한 공사기간이나 임금 등의 손실은 보장하도록 회계예규에 명시해두었다.
라이더유니온에서는 기후실업급여 도입을 제안했다. 고정적인 급여가 없는 배달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을 쓰거나, 폭염으로 배달이 제한될 경우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오히려 폭염이나 우천 시, 위험수당 개념으로 제공되고 있는 기상할증 제도는 라이더들이 무리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도 고용보험에 가입하게 되었으니, 실업급여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건강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더워서 일을 못 하게 된 것은, 비자발적 실업과 같은 상태다. 이때 일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경제적 보전을 받도록 하는 제도로 기후실업급여를 제안한 것이다.
농업 이주 노동자, 작업장 이동 자유와 노동시간 제한
땡볕에 옥외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로 농업노동자를 떠올리기 쉽다. 게다가 농촌 인구 고령화로 매년 여러 명이 논밭이나 하우스에서 일하다 온열질환에 걸리거나 심한 경우 사망한다. 농업인이라 산재로 집계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농촌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역시 폭염에 노출되는데, 여기서도 단순히 폭염만이 문제가 아니다. 농업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상의 노동시간, 휴게와 휴일 관련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 10~12시간씩 작업을 하고, 한 달에 많게는 28일까지도 일을 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농촌의 작업 문화로 가장 더운 시간에 쉬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자율성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사업주가 계획하지 않은 시간에 더 쉬면 '페널티'를 매긴다는 보도가 나오는 지경이다. 거기다가 고용허가제 때문에 작업장 이동과 변경의 자유가 없는 노동자들은 이런 위험한 환경을 감내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느낀다. 노동권이 약한 노동자가 안전과 건강 문제에서 더 큰 위험을 떠안고, 불이익을 겪는다. 폭염에서도 마찬가지다. 농업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시간 제한이나 이주 노동자에 대한 작업장 이동 자유가 폭염 대책 중 하나인 것은 뜬금없는 요구가 아니다.
폭염, '자연' 재해인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류현철 회원은 연구소에서 발간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에 실린 조선소 청년 노동자의 열사병 사망을 알리는 글에서,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라고 했다.
폭염으로 인한 재해는 '자연' 재해가 아니다. 더울 때 배달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배달 거리와 요금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더울 때 배달 건수를 어떻게 제한하느냐에 따라 한 명의 배달 라이더가 더위에 어떤 식으로 노출되는지가 결정된다.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의 더위 노출 역시, 작업 환경과 노동시간, 임금의 함수로 노출의 빈도와 강도, 형태가 달라진다.
당장 폭염을 없애버릴 수는 없지만, 폭염으로 인한 사고와 재해는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폭염 대책은 더위 대책이 아니다. 더위를 매개로, 노동환경을 바꾸고 노동자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다. 이 기사조차 더워지는 시기에 내지만, 더위가 한풀 꺾여도 잊지 말고, 제도를 바꾸자. 내년 여름은 다르게 맞이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한노보연 후원 문의 : 02-324-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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