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 김용준의 골프모험] 매킬로이가 겪은 모욕- 골프에서 애국주의가 주는 득과 실

이은경 2024. 7. 10. 08: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US오픈 18번 홀에서 퍼팅을 마친 후 허탈한 표정을 짓는 로리 매킬로이.   사진=게티이미지

지난달 개최한 US오픈 마지막 날 마지막 홀에서 일어난 일이다. 로리 매킬로이 선수는 파 퍼팅을 남겨 놓고 있었다. 내리막이긴 했지만 남은 거리는 한 발짝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반드시 넣어야 하는 퍼팅이었다. 바로 다음 조로 따라 오고 있는 브라이슨 디섐보 선수와 연장전에 가려면 말이다.

매킬로이와 디섐보 두 선수는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챔피언 자리를 놓고 막판까지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한 타 앞서며 우승을 손에 넣을 듯 하던 매킬로이 선수는 직전 홀에서 파 퍼팅을 놓쳤다. 그 바람에 두 선수는 마지막 홀을 남기고 동타가 되었다. 

갤러리는 숨을 죽였다. 매킬로이 선수는 브레이크를 살피고 연습 스윙을 한 뒤 지체하지 않고 스트로크를 했다. 큰 승부가 걸린 퍼팅인데도 빠르게 결단하고 실행하는 모습이 대가다웠다. 스트로크를 할 때 매킬로이 선수의 퍼터 헤드가 주춤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피드가 조금 모자라서 공은 낮은 쪽으로 흘렀다. 뼈 아픈 보기였다. 그 스피드라면 브레이크를 더 보았어야 했다. 

매킬로이 선수는 디섐보 선수에게 한 타 뒤친 채 경기를 마쳤다. 마지막 홀은 아주 까다로웠다. 뒤를 따라 오는 디섐보 선수 역시 파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디섐보 선수 티샷이 밀리더니 공이 깊은 러프로 갔다. 그 자리에서 어렵게 공을 쳐냈다. 공은 그린 옆 벙커에 빠졌다. 홀까지 상당한 거리가 남았다. 열댓 발짜리 벙커샷이라면 갖다 붙여서 파로 막을 확률이 50%도 넘는다. 하지만 서른 발짝도 넘는 그 벙커샷은 만만치 않았다. 두 선수가 연장전을 치를 가능성이 커 보였다. 

디섐보 선수 역시 머뭇거리지 않고 벙커샷을 했다. 피니쉬가 깔끔했다. 공은 두어 번 튕기고 나서 한참 구르더니 홀 가까이에 붙였다. 남은 거리는 매킬로이 선수의 파 퍼팅과 비슷했다. 오르막 퍼팅이었다. 이 퍼팅을 성공하며 디섐보 선수는 2024 US오픈 챔피언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큰 승부에서 늘 있는 일이다. 굳이 되새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이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브라이언 디섐보와 그의 우승을 함께 기뻐하는 갤러리들.   사진=게티이미지

뱁새 김용준 프로가 놀란 것은 매킬로이 선수가 마지막 홀 파 퍼팅을 실패한 직후에 갤러리가 보인 반응이었다. 매킬로이 선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탄식하는 동안 갤러리는 한 목소리로 “유에스에이”를 외쳤다. 유에스에이! 영어로는 ‘미국’이라는 뜻이다. 매킬로이 선수가 일생일대의 퍼팅에 실패한 그 순간에 갤러리가 외친 유에스에이가 어떤 의미인지 독자는 이해하는가? 그렇다면 골프와 얽힌 시사에도 아주 밝은 독자이다. 

매킬로이 선수는 북아일랜드 출신이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프로골프투어(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모국 국적을 지키면서 말이다. 디섐보 선수는 미국인이다. 미국 골프 팬이 자국 선수를 응원한 것이 뭐가 잘못한 일이냐고? 잘잘못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디섐보 선수는 PGA투어를 떠나 리브골프(LIV골프)에서 경기하고 있다. LIV골프는 PGA투어와 경쟁하는 투어이다. 선의로 경쟁해온 사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LIV골프를 운영하는 주체는 미국과 국제 정치에서 대립해온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 펀드이다. 자세한 국제정치 관계는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다. LIV골프는 PGA투어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선수를 무더기로 스카우트 해서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디섐보는 ‘배신자’ 또는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PGA투어를 떠나 LIV골프로 간 선수이다. 물론 막대한 ‘선수금’을 챙기고 말이다.

반면 매킬로이는 ‘수호자’를 자처하며 PGA투어에 남은 선수이다. 매킬로이 선수가 LIV골프로 갔다면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받았을 것이다. LIV골프는 10억 달러(1조3천여 억 원)도 흔쾌히 내놓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 두 선수가 유혹을 뿌리치고 PGA투어에 남은 덕에 PGA투어는 존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미국 골프 팬은 그런 ‘수호자’ 매킬로이를 버리고 ‘배신자’ 디섐보를 응원한 것이다.  

US오픈은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하는 대회이기는 하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가 여는 대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갤러리가 미국 선수를 응원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얼핏 보면 그렇다. 하지만 US오픈은 PGA투어에 활동하는 선수를 주축으로 치르는 대회이기도 하다.

다만 다른 PGA투어 대회와는 달리 LIV투어에 뛰는 선수도 출전할 수 있다. US오픈은 PGA투어에서 뛰는 선수와 LIV골프에서 뛰는 선수와 맞붙는 몇 안 되는 대회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그런 US오픈에서 매킬로이는 미국 골프의 자존심이자 PGA투어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반드시 우승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를 품고 치른 대회에서 미국 골프 팬은 그가 무너지고 미국인인 디섐보 선수가 우승할 기회를 잡자 환호한 것이다. 

로리 매킬로이.    사진=게티이미지

갤러리가 외치는 ‘유에스에이’라는 환호를 듣고 매킬로이 선수는 얼마나 참담했을까? 아마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매킬로이 선수는 그 다음 대회인 PGA투어 트레블러스챔피언십에는 아예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US오픈에서 다 잡은 승리를 막판에 놓쳤다는 패배감 탓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막대한 부를 포기하면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지키려고 한 자신이 겪은 그 모욕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뱁새 김용준 프로도 스포츠에서 애국주의의 민낯을 보니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

KPGA 프로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