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의 관계자'에게만 분노 쏟아내는 축구협회, 박주호 폭로가 드러낸 '불편한 진실'

김희준 기자 2024. 7.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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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 전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에 참여했던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의 폭로가 연일 축구계를 뜨겁게 달군다. 축구협회는 '익명의 관계자'들에게 침묵하다가 '실명의 관계자' 박주호에게만 온갖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약 5개월 동안 공석이던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홍명보 감독이 선임됐다. 지난 7일 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 차기 감독에 홍명보 울산HD 감독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8일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 대신 대표팀 감독 선임을 책임졌던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본부 총괄이사가 진행한 브리핑에서 '2027년 아시안컵까지'라는 구체적인 계약 기간이 나오며 사실상 홍 감독 부임이 확정됐다. 구체적인 부임 시기 등은 조율 과정에 있다.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는 선임이었다. 이 이사는 브리핑을 통해 2일 출국해 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거스 포옛 감독을 만난 뒤 4일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다비트 바그너 감독과 미팅했다고 밝혔다. 이어 5일 한국에 돌아와 밤 11시 경 수원FC전을 치른 홍 감독의 집 앞에서 홍 감독을 만났고, 다음날 오전 홍 감독의 수락 의사를 전달받았다. 현실적인 시간을 고려했을 때 외국 감독처럼 홍 감독도 충분한 프레젠테이션 과정을 거쳤는지, 축구협회가 발표한 기술철학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다시금 검증하는 절차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이사는 브리핑에서 홍 감독을 선임한 이유로 ▲ 대표팀 철학에 맞는 게임모델 ▲ 리더십 ▲ K리그 우수 선수 발굴, 선수 컨디션 체크, 연령별 연계성을 위해 국내감독 선임이 필요 ▲ 외국 지도자에 비해 오히려 앞서는 지도자 성과 ▲ 당장 3차 예선이 시작되는 시점에 외국인 감독이 한국 선수를 파악할 시간 부족 ▲ 대표팀 지도 경험이 아주 중요 ▲ 외국인 후보자들의 확고한 철학을 한국에 입히기엔 시간이 부족 ▲ 이전 재택 논란의 재연 리스크 등 8가지로 꼽았다. 게임 모델, 리더십, 대표팀 지도 경험 등을 제외하면 모두 홍 감독이 뽑힐 이유가 아닌 외국인 감독이 선정되기 곤란한 이유에 가까웠다. 홍 감독 축구가 대표팀 철학과 게임 모델에 부합한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8일 박 전 위원이 전력강화위 내부 사정을 폭로하는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강화위에서 지금까지 어떠한 타임라인을 거쳤는지 조목조목 설명했고, 제시 마시 감독처럼 선임에 가까웠던 외국 감독이 최종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이유도 이야기했다. 촬영 도중 자신도 모르던 홍 감독의 대표팀 내정 소식이 알려지자 허망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축구협회는 얼마 안 가 박 전 위원의 폭로에 깊은 유감을 드러냈다. 9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 전 위원이 SNS(소셜미디어) 출연 영상을 통해 전력강화위 활동과 감독 선임 과정을 자의적인 시각으로 왜곡한 바, 언론과 대중에게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하는 바"라며 "이러한 언행이 전력강화위는 물론 자신을 제외한 많은 위원들의 그간 노력을 폄훼하고 있어, 우선적으로 지난 5개월간 함께 일해온 나머지 전력강화위원들에게도 사과하고 해명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규정상 어긋난 부분이 있는지 신중히 검토하고 필요한 대응을 진행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비밀유지협약을 지키지 않은 박 전 위원에게 법적 대응을 고려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홍명보 울산HD 감독. 서형권 기자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러나 지난 5개월 동안 비밀유지협약이 지켜진 적은 한 번도 없어 보인다. 익명의 관계자들은 전력강화위와 축구협회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한 듯 외부에 전달해왔다.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보도들을 통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얼추 마무리된 후 회의 내용을 공개한 박 전 위원과 감독 선임 도중 회의 내용을 유출해 감독 선임 과정에 방해가 됐던 익명의 관계자 중 전자가 훨씬 잘못됐다는 결론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이번에 이 이사가 독단적으로 감독 선임을 밀어붙인 원인도 비밀유지가 되지 않았던 선례들 때문이었다. 이 이사는 브리핑을 통해 "홍 감독을 뵙고 결정을 한 뒤, 위원회 분들을 다시 소집해서 미팅을 해야 하지만 다시 미팅하게 되면 언론이나 외부로 나가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5명 위원에게 개별적으로 최종결정을 해야 할지 동의를 얻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홍 감독에 대해서가 아닌 최종 결정권만 물어보고 속전속결로 진행할 만큼 급박하게 전달했던 건 혹여나 홍 감독 내정마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신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결국 축구협회가 박 전 위원에게 강력한 대응을 예고한 건 축구협회에 불리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익보다 공익성이 우선되는 박 전 위원에게 법적 대응을 하는 건 어려워보이며, 만약 박 전 위원이 비밀유지협약으로 처벌받아야 한다면 축구협회는 지금까지 나온 익명의 관계자들이 누구인지 전수조사를 펼쳐야 할 것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5개월 동안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보여준 축구협회 행보는 만족스럽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얼마나 공정한 절차가 따랐는지 의문스러운 구석이 있다. 여기에 박 전 위원의 폭로에 대한 축구협회의 빠른 대처까지 겹치면서 이번 대표팀 선임 과정 전체가 촌극이 되고 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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