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이 전기고문"…‘유럽간첩단’ 김신근, 54년 만에 무죄 확정
1966년 영국 유학을 갔다가 간첩으로 몰려 7년 옥살이를 했던 김신근(81)씨가 재심 끝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2부(주심 김상환)는 김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김씨가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간첩으로 낙인찍힌 지 54년 만이다.
유럽 간첩단 사건은 1960년대 서유럽에 유학하면서 당시 동독 동베를린을 방문한 적 있던 학자와 유학생 등 20여명이 북한 공작원과 연계해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김씨는 1966년 서울대 영문과 동기인 김판수(81)씨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친구 김씨와 함께 이 사건에 연루됐다.
김씨가 중앙정보부 남산 분실로 연행된 건 귀국 이듬해인 1969년이다. 중앙정보부는 김씨가 영국 유학 중 북한 공작원에게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독일 동베를린을 오가며 간첩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귀국 후에도 서울대 인근에서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찬양과 선전을 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이적 활동 혐의로 기소된 김씨는 그해 11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혐의를 부인하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가 이를 기각했고 1970년 7월 대법원에서 상고도 기각되며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가 재조사에 착수하면서다. 과거사위는 관련자 증언을 통해 2009년 “중앙정보부가 강압적으로 수사해 자백을 받아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해 박노수 교수(1972년 사형 집행), 김규남 전 민주공화당 의원(사형 집행) 유족과 김판수(징역 5년)씨 등이 재심을 신청했고 2015년 무죄를 확정받았다.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던 김씨의 재심 신청은 2022년 1월에야 이뤄졌다. 재심을 받아들인 서울고법은 지난 2월 “김씨가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체포·구금된 상황에서 수사를 받았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그 수사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불법·강압적으로 이뤄진 자백은 “함부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면서다.
고법 선고 과정에선 김씨가 과거 과거사위에서 했던 진술도 상당 부분 사실로 인정했다. “수사관이 들어와서는 물에 젖은 수건을 손과 발에 묶고 전깃줄에 엮어서 전기고문을 했다. 전기 고문하면서 ‘평양 갔다 왔냐?’고 딱 한 질문만 했다”, “옷을 벗기고 손과 발을 묶어서 다리 사이에 막대기를 끼워 대롱대롱 매달리게 하고는 물을 붓는 고문을 당하였다” 등이다.
진술의 증거 능력 문제와 별개로 김씨가 영국에서 동베를린을 오가며 이적 행위를 했다는 검찰 주장에도 고법은 “동·서독의 왕래가 비교적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 시대적 배경 등을 종합해 보면, 김씨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회합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진술의 임의성, 증거능력,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이를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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