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미터 남자' 불린다…기시다 명줄 쥔 '망언제조기' 아소의 반전 [줌인도쿄]
■ 줌인도쿄
「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요? 아는 것 같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일본의 이야기,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들이 현장에서 만나본 다양한 일본의 이모저모를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드립니다.
」
6월 25일, 6월 28일, 7월2일….
일본 언론들이 매일 아침 보도하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하루를 기록하는 '총리 동정'에서 요즘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정치인은 아소 다로(麻生太郎·83) 전 총리입니다. 특히 지난달 18일엔 한 일본요리점에서 2시간 반을, 25일엔 철판구이집에서 약 3시간에 걸쳐 ‘단둘이’ 기시다 총리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빈번히 만나고, 자주 저녁을 함께하는 것만 봐도 기시다 총리가 아소 전 총리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데요. 한국에선 ‘망언제조기’로 불리기도 하는 아소 전 총리가 '킹메이커'로 불릴 수 있는 정치 생명력 비밀은 뭘까요.
'석탄왕'의 장남, 14선의 사나이
아소 전 총리는 자민당 현직 국회의원 중에선 14선이란 최다 당선 기록을 보유하는 중진 의원입니다. 국회의원 재직 기간만 무려 42년에 달하지요. 그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손자이자 ‘규슈 석탄왕’의 장남, 클레이사격 국가대표로 올림픽 출전(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란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죠. 하지만 처음부터 정치인으로서 주목받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작은 파벌의 우두머리에 그치는 정도였지요.
그런 그가 총리가 된 것은 2008년의 일입니다. 무려 4번의 도전 끝에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그토록 바라던 수상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리먼 쇼크(미국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신청으로 시작된 세계 금융 위기)’ 대응에 쫓기면서 지지율은 내리막길을 탔습니다. 이듬해인 2009년 중의원 임기가 임박한 가운데, 쫓기듯 중의원 해산을 하게 됩니다. 결과는 참패. 그는 오랜 자민당 집권 역사 속에서 두 번 째로 야당에 정권을 내준 총리가 됐습니다.
킹메이커로 변신
그런 그가 킹메이커로 변신하게 된 건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때의 일입니다. 당시 아베 총리와 그는 “다시는 정권교체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강한 결의를 다지며 끈끈한 사이가 됐는데요. 아베 전 총리는 당시 재무상을 맡던 아소에게 자주 상의를 했고, 아소 전 총리의 영향력은 파벌 확대로 이어져 아소의 파벌은 당내 제2 파벌로까지 세가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소 전 총리는 ‘망언 제조기’ 이미지가 강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김정은을 태운)볼품 없는 비행기가 도중에 떨어진다면 말할 거리도 안 된다(2018년)”라거나 “성희롱죄란 죄는 없다(2018년)” 같은 말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코로나19 때는 “일본은 경제력이 없다.경제력 있는 한국과 같은 취급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또 언론의 집중을 받았지요. 올들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해 1월,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외상에 대해 발언을 했다가 말을 주워 담기도 했습니다. “그리 예쁜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이라거나 “이 아줌마 좀 하네” 같은 말을 하면서 설화에 오른 것이지요. 기자회견에서도 그다지 친분이 없는 기자에게 “모르는 거냐”고 역질문해 곤란하게 한 경우도 많았을 정도입니다.
2m의 남자를 아시나요
하지만 사실 아소 전 총리에겐 '반경 2m의 남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가까이 접해보면 그의 매력에 사로잡히는 그런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국회의원을 지낸 한 인물은 “한번 술을 마셔보면 누구든 그의 팬으로 만드는 정치가”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만나 얘기를 나누면 상대방의 얘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존중해준다는 겁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정계 최고 만화 애호가이기도 한데,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농담을 잘 섞어서 분위기를 ‘살리기도’ 하는데 이런 스타일이 상대방을 사로잡는다는 얘깁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주변을 잘 챙기는 것으로 정계는 물론 '가스미가세키(霞が関· 일본 정부 주요 관청이 몰려있는 지명)’ 관료 사이에서도 유명하기도 합니다. 2005에서 2007년까지 외상을 지냈는데, 당시 해외 출장을 가면 관료들을 술자리에 초대해 격려하고, 실무진들에게 정책을 맡기면서도 책임은 자신이 지는 리더십을 보이면서 외무성 관료들에게 호평받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비주류’ 시절부터 의리를 기반으로 인맥을 쌓으면서 중진이 되고,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아소 전 총리를 만들었다는 얘깁니다.
대조적인 것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전 자민당 간사장입니다. 현재도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후보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시바 전 간사장 모임에는 십수 명 밖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점심 시간에 혼자 도시락을 먹으며 정책 연구를 한다는 에피소드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남을 잘 돌보지 않아 왔던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홀로 파벌’ 유지하는 아소
다시 아소 전 총리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비자금 스캔들 이후 다른 자민당 파벌들이 해산을 표명했지만 아소 전 총리는 유일하게 파벌 존속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55명을 거느린 파벌의 '톱', 그의 생각이 오는 9월 자민당 총재선거의 키를 쥐고 있습니다. ‘반경 2m의 남자’는 누구를 밀게 될까요. 올여름 그의 움직임에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도쿄=오누키 도모코 onuki.tomok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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