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그래도 읽는 사람들이 있다

2024. 7. 1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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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름 작가

편한 책만 읽다 만난 독서모임
버거운 '벽돌책' 함께 극복
책 좋아하는 존재 굳건하다

사람은 가만히 놔두면 몸도 마음도 편한 쪽으로 자꾸 기울게 되는 듯하다. 독서할 때도 마찬가지. 별생각 없이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요즘 내가 읽기 편한 책들만 읽고 있구나, 이런 자각이 들면 최근 독서 목록을 점검하고 어떻게 하면 ‘안 편하게’ 읽을지 고심한다.

2년 전 여름, 얇고 쉬운 책으로만 기우는 독서 목록을 보면서도 그랬다. 아무래도 마음을 다잡고 다른 식으로 책을 읽어야겠다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게 독서모임이었다. 한창 독서모임을 할 땐 일부러 혼자 읽기 뻐근하고 엄두가 안 나는 책을 고르곤 했는데, 다시 그때처럼 읽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렇다고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꾸리기엔 부담스러워 ‘그때처럼…’만 되뇌던 차에 온라인 독서모임을 할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는 슬로건 아래 이제 막 운영을 시작한 온라인 지식공동체 ‘그믐’. 여기선 벽돌책 위주로 읽어보자고 결심을 한 후 바로 모임을 만들었다. 첫 모임에 선정한 책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몇 번 언급한 적 있는 에이모 토울스의 신작 ‘링컨 하이웨이’.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도 무려 820페이지에 달하면 읽기를 최대한 미루게 되는데 이 책도 그러던 차였다. 모임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 완독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컸다. 물론 이 두꺼운 책을 함께 읽어줄 사람이 있어야겠지만.

다행히 신청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분들 덕에 첫 독서모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모임에도, 또 그다음 모임에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전국의 독서가들은 내가 만든 방에 들어와 함께 책을 읽어주었다. 매번 방을 만들 때마다 한 명도 안 오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매번 사람들은 벽돌책이라는 큰 산을 함께 올라주었다. 이토록 두꺼운 책을 읽겠다는 사람이 있을지가 나의 걱정이었다면, 이토록 두껍기에 도전 의식이 불끈 솟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답해주는 듯했다.

2년 남짓한 기간에 그믐에서 총 11권의 책을 읽었다. 그때그때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방을 만들고 사람을 기다렸다. 언젠간 읽고 싶었으나 쉽게 손이 가지 않던 ‘서양미술사’, 사놓은 지 몇 년이 됐으나 (역시나 두꺼워서) 첫 페이지만 몇 번을 넘겨보던 ‘사회심리학’, 여러 작가님들이 언급해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궁금했던 ‘진리의 발견’, 너무 많은 정보(TMI)를 담고 있어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읽고 나선 뿌듯했던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2권’ 등이 독서모임에서 완독한 책이다. 책 몇 권은 함께 읽지 않았다면 결코 끝까지 읽지 못했을 테다.

얼마 전 우연히 그믐 관련 기사를 읽었다. 어김없이 우리나라 독서율이 첫 문장에 언급돼 있었다.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43%. 성인 10명 중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 4명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난해 발표한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찾아보니 2013년엔 72.2%, 2019년엔 55.7%였다. 책을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이 전보다 는 건데, 그래도 우리나라 성인 중 18.3%는 독서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책을 곁에 두려 한다는 사실이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을까.

책 읽는 사람은 계속 줄고 있지만, 그믐의 회원 수는 1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마케팅 없이 입소문만으로 이룬 성취라고 한다. 독서율 43%의 나라지만, 그 나라에도 여전히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굳건히 존재하는 셈이다.

지금으로선 독서율이 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읽는 사람은 더 읽을 것이고, 더 깊이 읽기 원할 것이며,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리라는 기대. 책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리라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된다. 독서모임을 만들면 그분들이 또 신청해 주겠지.

황보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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