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의 뉴스메이커] “물폭탄·다섯달 여름 일상될 것…‘탄소 제로’론 부족”

강찬호 2024. 7. 10. 00: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포스텍 민승기 교수 - 극한호우에 맞서는 ‘과학자 노아’


강찬호 논설위원
여름 공식이 달라졌다. 6월부터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비도 내렸다 하면 역대급 폭우다. “지구 온난화 탓”이란 얘기를 듣고 전문가를 찾으니 북극 해빙(海氷) 소멸 시점을 10년 당겨 예측한 논문이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커뮤커뮤니케이션’에 실린 민승기 포스텍 교수(환경공학부)가 눈에 들어왔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처럼 증가한다면 시간당 200㎜ ‘핵폭탄급’ 비도 내릴 수 있습니다.”

포항 포스텍 지곡연구동에서 만난 그의 경고는 충격적이었다. 이는 한 시간 만에 빗물이 20㎝ 차오른다는 뜻이다. 시간당 비가 3㎝ 쏟아지면 폭우다. 5㎝ 쏟아지면 앞이 안 보이고 8㎝ 쏟아지면 산사태 등 재앙이 터진다. 10㎝ 넘는 폭우는 50년 빈도, 11㎝ 폭우는 100년 빈도다. 2022년 8월 서울을 침수시킨 시간당 141㎜ 호우는 5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빈도다. 이런 극단적인 비가 일상이 되고 있다. 방주 대신 과학으로 ‘극한호우’에 맞서는 ‘현대판 노아’ 민 교수와 얘기를 나눴다.

「 북극 해빙 소멸 10년은 당겨질 것
온난화로 한반도 ‘수퍼 태풍’ 급증
시간당 20㎝ 핵폭탄급 호우 우려
탄소 배출 제로 넘어 감소로 가야

5월부터 9월까지 5달이 ‘여름’

서울대를 거쳐 독일 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민승기 교수는 기후과학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미 기상학회학술지 ‘저널 오브 클라이미트(Journal of Climate)’에 한국인으론 처음 편집위원에 선임되는 등 기후변화 연구에서 많은 성과를 낸 학자다. 민 교수 뒤에 보이는 액자는 그가 커버스토리로 다뤄진 ‘네이처’지 표지. 캐나다 환경장관이 친필 사인해 액자로 만들어줬다. [사진 포스텍]

Q : 지난달부터 벌써 더위가 장난이 아닙니다.
A : “올해도 폭염이 아주 빨리 찾아왔습니다. 6월은 평균기온 30도 넘기가 흔치 않은데, 국내 몇 군데서 그런 기온이 잇따라 관측됐어요. 기후 과학자들은 사실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요. 지난해 지구의 연 평균 기온이 갑자기 점프(급상승)했거든요. 산업혁명기인 1850~1900년과 비교해 연평균 기온이 2016년 1.29℃ 올랐는데 7년만인 지난해 1.45℃ 올랐어요. 0.16℃가 급상승한 겁니다. 2015년 파리 기후 협정에서 마지노선으로 정한 1.5℃ 턱밑까지 온 것이니 과학자들이 충격받았죠. 중위도 바다가 너무 뜨거워진 결과인데, 바다는 천천히 움직이니 지금도 뜨거워 올해 폭염이 빨리 온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다만 이런 해양 온난화의 원인은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과학계는 이런 현상이 노멀(일반화)로 가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Q : 비 퍼붓는 것도 예전과 다른데요.
A : “2022년 8월 서울에 시간당 141㎜로 퍼부은 극한호우가 재발할 우려도 당연히 있을 것 같아요. 지구 온난화로 ‘강하고 좁은 지역에 많이 내리는 비’가 세계적으로 보편화해 과학자들이 ‘극한호우’란 용어를 붙인 지 오래입니다. 기상청도 지난해 6월 15일 1시간 누적 강수량이 72㎜ 이상이면 ‘극한호우’라고 정의하고, 극한호우가 내리면 행정안전부를 거치지 않고 바로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게 했습니다. 모델에 따르면 탄소 중립을 달성해 지구 연평균 온도 상승한도를 2도 아래로 막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2090년대에는 5년간 시간당 100㎜ 극한호우가 30번, 140㎜ 극한호우가 4번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됐습니다. 반면 2도 아래로 온도 상승을 막는다면 100㎜ 극한호우는 5년간 6번에 그치고 140㎜ 이상 극한호우는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탄소중립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Q : 온난화가 극한호우를 발생시키는 이유는 뭔가요.
A : “수증기 품은 공기가 상승 기류를 만나 대기 상층으로 올라가면 팽창하면서 비를 뿌리는 겁니다. 그런데 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1℃ 오를 때마다 공기가 수증기를 포함하는 양은 7%씩 커져요. 게다가 온난화가 커질수록 대기 상층이 지표보다 더 따뜻해지면서 누르는 힘이 강해져요. 이로 인해 대기가 안정화됨에 따라 수증기를 품은 공기가 못 올라가, 쌓여 있다가 가끔 강력한 상승 기류를 만나면 타고 올라가 극한호우가 되는 거죠.”

커버스토리로 다뤄진 ‘네이처’지 표지.

Q : 온난화로 인해 태풍도 커지나요.
A : “원래 태풍은 수온이 28도 넘어야 생겨요. 그런데 최근 한반도 주변 해역도 30도까지 올라가 ‘수퍼 태풍’이 올 우려가 커졌어요. 2011년부터 10년간 한반도에 상륙한 고강도 태풍 4개를 온실가스 증가로 온도가 1도 오른 상태와 아닌 상태로 나눠 3㎞ 초고해상도 기후모델로 분석했어요. 그러자 1도 오른 상태에서 태풍 최대 풍속이 약 7% 강해지고, 극한 강수 발생 면적도 20~40% 넓어졌어요. 2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던 ‘수퍼 태풍’과 동반 극한 강우가 빈번하게 올 우려가 크니 대응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장마 대신 ‘한국형 우기’로 대체 검토

Q : 북극 해빙 소멸이 10년 앞당겨지면 우리에게 가장 우려되는 건 뭡니까?
A : “폭염이 제일 걱정됩니다. 북극이 따뜻해지니 중위도인 한반도와 저위도인 열대지역과 온도 차이가 안 나면서 대기 순환 정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여름에 폭염이 지속할 우려가 커진 것인데,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폭염이 4주 넘어가면 기하급수적으로 사망률이 높아집니다. 관련해 기상청도 여름을 5~9월로 재정의하는 논의를 하고 있어요. 33℃ 이상 폭염이 6월부터 오고, 9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장마철=6월 말~7월 중하순’ 공식도 깨짐에 따라 장마란 표현 대신 ‘한국형 우기’로 변경을 검토 중입니다.”

Q : 대책은요.
A : “장기적으론 탄소 배출을 ‘마이너스’로 해야 합니다. 나무를 더 많이 심어 이산화탄소 흡수·제거를 촉진하는 한편, 극한 호우와 태풍도 일상화하니 대비해야죠. 서울시 하수 관리는 시간당 비 90㎜가 최대치인데 2년 전 140㎜ 넘는 극한 호우가 왔잖아요. 물을 효율적으로 지하에 가두는 시설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Q : ‘탄소 마이너스’라니, 뭔가요?
A : “산업 혁명부터 지금까지 지구 연평균 기온이 이미 1.2도 이상 올라갔습니다. 우리 목표는 최소 1.5도~최대 2도 선에서 더 이상의 상승을 막는 겁니다. 지금부터 탄소배출을 죄다 멈춰도 기존의 이산화탄소가 누적된 게 많아 1.5도까지는 안 오를 수가 없어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 평균 100년 이상 대기 중에 남아 있어요. 1924년 배출한 게 아직도 있으니, 탄소 배출 제로를 넘어 기존의 탄소를 줄이는 마이너스(제거)로 가야 성과가 날 수 있어요. 탄소 중립(제로)을 2050년까지 달성하면, 기온 상승 폭은 1.5도를 넘었다가 내려와 1.5도에서 안정될 것이고요. 2도 선에서 상승을 막으려면 2070년대까진 탄소 중립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나마 탄소를 포집·저장하는 기술이 나온다는 가정 하에서죠.”

Q :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프런티어 플래닛 프라이즈’ 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내셔널 챔피언에 선정됐는데요.
A : “환경 위기 해소에 공헌한 과학자에게 수여되는 상인데, 43개국 475개 대학·연구소에서 출전한 후보 중 3인에게 각각 100만 스위스프랑(15억원)이 주어집니다. 안타깝게 수상은 못 했어요. 그러나 북극의 해빙 시점을 앞당겨 예측해 지구 환경의 지속 가능성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한 점은 평가받았죠.”
미국·유럽이 판치는 기후과학

Q : 내셔널 한국 후보에 오른 이유는요?
A :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와 동일한 수준을 유지한다면 2030년대에 북극 해빙이 소멸할 수 있고, 배출량을 줄여도 2050년대엔 해빙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고 분석한 제 논문 덕분인데, 2040년대로 여겨온 해빙 소멸 시점을 10년 당긴 것이 이 정도로 세계적 관심을 끌지는 몰랐어요(웃음). 기존 모델을 돌리면 북극 얼음이 실제 관측치보다 천천히 녹는 거로 나와요. 이를 반영해 기울기를 10%쯤 높여주니 모델의 해빙 시점이 빨라진 거죠. 북극에 빨리 온난화가 찾아온다는 건 중위도에 폭염, 호우 등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지구 온난화가 가속하는 것이라 문제가 심각해요. 특히 메탄이 북극 동토층에서 배출되면 온난화가 가속하고 그린란드 빙하의 용융으로 해수면 상승이 더욱 빨라져 지구에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Q : 캐나다 환경 장관에게 친필 사인을 받았다면서요?
A : “2011년 네이처 표지에 제 논문이 실렸는데요. 인간이 일으킨 온실가스가 극한 호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처음 입증했기 때문이에요. 1년 중 강우량이 가장 많은 날을 지구 지역마다 뽑아 50년간 추이를 살폈습니다. 여기에 온실가스를 증가시킨 모델과 그렇지 않은 모델을 각각 적용했더니 온실가스 증가 모델에서만 실제 관측치처럼 극한 호우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2011년 당시 캐나다 환경부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이 논문을 냈는데, 네이처 커버스토리로 실리자 피터 켄트 환경부 장관이 표지 사진에 직접 서명해 액자로 만들어줬습니다. 장관 친필 사인은 대단한 영광이라고 캐나다 동료들이 얘기하더군요(웃음).”

Q : 우리 기후과학계 현황은 어떤가요.
A : “스위스에 가보니까 심사위원 100명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럽 출신이고 동양인은 거의 없었어요. 환경·지구과학에 지원과 투자가 없었음을 보여준 결과라 봅니다. 이런 마당에 인재들이 의대와 IT 쪽으로만 몰리니 더욱 답답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글로벌 과학계의 중심은 지구 문제로 집중될 수밖에 없거든요. 기후과학 등 기초과학에 인재들이 도전하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강찬호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