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금투세, 이대로 시행은 무리다
2020년 11월 대선에서 당선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듬해 4월, 100만 달러 이상의 투자 이익을 얻은 고소득층에 적용되는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 세율을 20%에서 39.6%로 인상하는 방안을 내놨다. 교육·육아 지원 사업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방안이 보도되자 주요 주가지수가 하락하는 등 미국 증시에 충격을 줬다.
당시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이었지만, 상원에선 박빙 우위였고 민주당 내 중도파 의원도 증세에 반대했다. 2022년 중간 선거에서 하원이 공화당 우위로 넘어간 이후엔 법안 통과가 불가능하게 됐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의회 연설에서 자본이득세율 인상을 포함해 10년간 5조 달러 규모의 증세 안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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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손 국내 증시 이탈 우려…준비도 미흡
정부여당-야당 합의 없으면 혼란 가중
민주당 새 지도부, 조속히 입장 정해야
」
영국의 경우도 14년 만에 집권한 노동당이 재원 마련을 위해 자본이득세를 올릴 것이냐가 큰 관심사다. 총선 전 파이낸셜타임스는 자산관리 전문가 등을 인용해 영국 부자들이 세금 인상에 대비해 주식·부동산 등을 팔고 있다고 보도했다.
어느 나라나 증세란 민감한 주제다. 기존 세금의 세율을 올리기도 쉽지 않은데, 아예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는 것은 더 어려운 문제다. 오랫동안 비과세로 유지됐던 국내 상장주식 매매 차익에 세금을 물리는 금융투자소득세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여야 합의로 통과돼 2023년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내년으로 미뤄졌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금투세 폐지를 들고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금투세 폐지를 부자 감세라 하며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2020년 세법개정안을 제출할 당시 금투세 과세 대상을 약 15만 명으로 예상했다. 전체 투자자가 14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전체의 1% 정도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가 꽤 크다. 금투세와 관련한 이해 관계자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를 꼭 부자 감세의 논리로만 볼 일은 아니다.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금투세 시행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큰손의 이탈로 증시 수급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금투세 대상이 될 수 있는 개인투자자의 총 투자 규모를 150조원(15만 명 ✕ 1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금투세를 내지 않더라도 주가가 하락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재산 손실을 본다.
현재 해외주식에 투자하면 연간 250만원의 공제액을 뺀 차익에 대해 22%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이에 비해 국내 상장주식은 매매 차익이 비과세다. 금투세가 도입되면 해외 주식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주식의 수익률이 지지부진해 ‘국장(국내 주식 시장) 탈출은 지능 순’ 이란 유행어가 있는데, 자칫하면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할 수 있다.
원천징수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매매 차익이 5000만원이 넘어가면 22%의 세율로 원천징수가 시작되는데, 그해 최종적으로 손해를 보면 별도로 신청해서 환급을 받아야 한다. 원천징수가 이어지면 투자할 종잣돈이 줄어든다. 해외주식 양도 차익의 경우 이듬해 한 번만 신고 납부하면 된다.
증권업계에선 이런저런 제도적 허점이 있고 준비가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한 정부·여당이 적극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할 것 같지도 않다. 합의안을 통과시키고 보완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여당이 비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시행 여부에 대한 결론은 내야 한다.
2년 전에도 금투세 유예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은 계속 시행을 주장했다. 하지만 2022년 11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우리는 야당이어서 나라 살림을 꾸리는 주체가 아니지 않나. 정부·여당이 금투세 유예를 주장하는 마당에 우리가 강행하자고 고집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방향을 틀었다.
이재명 전 대표의 2년 전 현실 인식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정부·여당과 거대 야당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금투세 도입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금투세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정부·여당 안이 바람직한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여기서 폐지하면 다시 도입하기는 훨씬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의 성과를 보고 금투세 도입 여부를 최종 결정할 수도 있겠다.
열쇠는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쥐고 있다. 이 전 대표가 다음 달 전당 대회에서 다시 당 대표로 선출되면 입장을 내야 한다. 2년 전처럼 11월에 결정할 일이 아니다. 불확실성은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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