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피스카스와 우리의 시골
보름 동안 남편과 함께 핀란드·스웨덴 정원 견학을 다녔다. 내가 가고 싶은 정원은 많았지만 정작 남편은 딱 한 곳만을 원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약 5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피스카스(Fiskas)란 마을이다. 피스카스는 1649년 대장간이 생기면서 형성됐다. 1800년대에는 구리가 채굴되어 인구가 1000여 명에 달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우리가 잘 아는 주황 손잡이의 가위와 정원용품을 생산하는 피스카스 회사도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피스카스 마을의 첫인상은 웅장한 물소리였다. 북동쪽에 거대한 호수가 있어 마을로 그 물길이 흐른다. 공장에 필요한 동력을 얻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고, 낙차를 이용해 물레방아를 돌리면서 생긴 물소리였다. 19세기, 아마도 이곳은 저수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쇠를 다듬는 망치질 소리가 마을을 꽉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구리 채굴이 끝나고 피스카스 마을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이르러 아직도 이곳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가구 제작 회사 니카리 등이 힘을 합해 피스카스는 공예와 예술의 마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공장은 아트 전시장과 공예관으로 바뀌었고, 마을에 남겨진 빈집들을 활용해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1년 간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제공했다. 그리고 2년마다 비엔날레를 여는데 이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피스카스를 찾아온다.
우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호텔과 식당이 있는 마을 중심에서 1박을 했다. 물소리로 우렁찬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민족은 애당초 내 집 안에 가꾸는 정원보다 자연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차경을 즐겼다. 이 낯선 핀란드 피스카스에서 자꾸만 우리의 시골이 떠올랐다. 인구소멸로 우리의 시골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혹시 어쩌면 이 피스카스에 우리 시골을 살릴 힌트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내내 맴돌았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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