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구를 위해 나섰나…'밀양 사건' 제3자 사적 제재 논란 [김대근이 소리내다]
가장 오래된 성문법 중 하나인 함무라비 법전 제196조 이하는 그 유명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동해 보복 원칙(lex talionis)을 규정하고 있다. 흔히들 이 원칙을 ‘잔혹하게 복수해도 좋다’는 의미로 오해하지만 실상 이는 과도한 복수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정작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깔려있다. 이 원칙이 바로 법이고, 그래서 국가에 의해 집행된다는 점이다.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다시금 소환되면서 개인에 의한 복수, 이른바 사적 제재가 논란이다. 사적 제재와 그에 대한 열광은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대의 서사와 드라마,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여러 사건들에서 사적 제재는 민감한 쟁점이었다. 최근의 사적 제재는 두드러진 점이 있다. 유튜브 등 파급력이 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힘입어 신상공개라는 방식으로, 피해자 본인이 아닌 제3자에 의해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법과 판례, 정당행위로 안 봐
방식의 측면에서 사적 제재는 민사상 불법행위 또는 범죄가 된다. 특히 최근 유튜브나 인터넷상의 신상 공개는 정보통신망법상의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행위 주체의 측면에서 만약 피해자 본인이 피해 당시 방어를 위한 행위로서 사적 제재를 했다면 형법상 정당 방위나 정당 행위가 성립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 법과 판례는 정당 방위의 현재성 요건과 정당 행위의 사회 상규성을 엄격하게 해석한다. 따라서 피해자 본인에 의한 사적 제재라도 위법하다는 평가를 벗어나기 힘들다.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하는 사적 제재는 더더욱 면책될 수 없다.
■ 제3자 신상공개하는 방식 유행
2004년 밀양 사건으로 재조명
범죄 예방 효과 기대 어려워
「
」
그렇다면 왜 국가와 사회는, 제3자에 의한 것은 물론 피해자 본인에 의한 사적 제재를 금지할까. 이 지점에서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살펴야 한다. 첫째,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도한 복수를 제한함으로써 자의적일 수 있는 복수의 양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둘째, 자의적인 진실 발견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수사, 기소, 재판을 경찰, 검찰, 법원이 나누어 꼼꼼하게 행사해도 실체적 진실 발견이 쉽지 않아서 오심과 오판이 종종 발생하지 않던가.
셋째, 복수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피해자가 아닌 자가 복수를 내세워 별개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방지해야 한다. 넷째, 복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다. 복수의 양과 대상이 정확하지 않을 때 복수는 억울함을 낳고 또 다른 복수의 명분으로 전락한다. 그 결과는 평화의 파괴이자 약육강식의 또 다른 이름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일 것이다.
사적 제재 자체가 불법이자 범죄인 것은 차치하고, 혹여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형사사법에 대한 불신, 특히 낮은 처벌에 대한 불만 등 국민의 법감정을 이유로 사적 제재를 지지하거나, 심지어 공분을 야기하는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형사사법에 대한 불신은 타당한 지적이다. 편파적이거나 공정하지 못한 법 집행은 사적 제재가 발생하는 뿌리 깊은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처벌 수준에 대한 불만은 적절한 비판이 될 수 없다. 미국 등 극히 예외적인 나라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형벌이 다른 나라보다 낮지 않기 때문이다. 사형을 전격적으로 폐지한 유럽 등과 비교하면 오히려 국내 형벌 수준은 높다고 할 수 있다. 중형주의를 취하는 미국에서 강력범죄는 물론 사적 제재가 만연하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지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제재는, 아직 처벌이 확정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낮은 처벌이라는 불만은 처음부터 설 자리가 없다. 사적 제재가 범죄를 예방할 것이라는 기대도 적절치 않다. 범죄 예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확실한 형벌을 통한 예측 가능성이다. 자의적이고 부정확할 수밖에 없는 사적 제재에서 예측 가능성이 담보될 리 없고, 따라서 범죄 예방의 효과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다.
피해자 형사 구제, 일상 회복이 중요
신상 공개와 같은 사적 제재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대처는 어떠해야 할까. 먼저 사적 제재를 굳이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 나아가 사익 추구의 동기가 없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우리들 스스로도 ‘무엇을’ 위한 사적 제재가 아닌 ‘누구를’ 위한 사적 제재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최근 피해자를 대신해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사적 제재와 열광 속에서 정작 피해자에 대한 배려나 그(녀)의 무너진 삶을 회복하려는 진지한 고민이 있었을까.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노력이야 말로 우리 행위가 도덕적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더불어 국가와 사회는 피의자 신상공개와 같은 제도가 시민들에게 당연한 제재로 인식되지 않도록 최소한으로 운용하고 신중하게 집행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와 이론적 검토를 통해 정당방위나 정당행위의 요건을 완화하거나 법 해석을 유연하게 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일은 피해자가 형사 절차와 일상 둘 다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의 주체성을 복원하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보다 한층 더 본질적인 해법이 있다. 다름 아닌 법적용과 법집행의 예외를 최소화하는 것. 그럼으로써 너무나도 상식적인 ‘법 앞의 평등’이라는 법 이념이 우리 삶과 공동체에 굳건히 자리 잡게 하는 일이다. ‘법 앞의 평등’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사적 제재가 뿌리내릴 토대는 없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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