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세금 들고 경기도로…생애 첫 집 마련 어디에? [스페셜리포트]
# 직장인 김주찬 씨(36)는 최근 주말마다 경기 안양과 군포 일대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다. 현재 거주 중인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전세금이 치솟으면서 탈(脫)서울을 결심했다. 김 씨는 “강남 출퇴근을 고려하면 지금 사는 집이 편하지만 아파트값과 전셋값이 너무 올라 어쩔 수 없다”며 “한 번 정도 환승으로 강남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 아파트를 매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 강세가 계속되자 서울을 떠나 경기·인천에서 터를 잡는 생애 첫 주택 매수자가 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1년 이상 상승세를 이어가는 데다 마침 경기·인천 지역 아파트값이 바닥을 찍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마침 생애최초·신혼부부 디딤돌 대출,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책 상품을 이용하기에 가격이 적당해 자금 여력 부족한 젊은 수요자들이 경기도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올해 수도권에서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를 사들인 매매 거래 10건 중 6건은 경기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합리적이고 접근성 좋은 지역에 젊은 세대가 몰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시장 분석 업체 부동산인포가 대법원 ‘소유권이전등기 신청 매수인 현황’을 분석한 결과(6월 25일 기준) 올해 1~5월 수도권 생애 첫 부동산 구입 8만8780건 중 경기도 내 거래가 총 5만5893건으로 수도권 거래의 63%를 차지했다. 서울 19.1%(1만6936건), 인천은 18%(1만5951건)로 나타났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빌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생애 최초 매수 건수 자체도 늘었다. 지난해 1~5월 경기도 내 생애 최초 매수가 4만6011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 들어 거래량이 21% 늘어났다.
올 1~5월 경기도 내에선 ‘동탄1·2신도시’가 있는 화성(5747건), ‘운정신도시’가 있는 파주(5242건)에서만 도내 거래의 19.7%가 이뤄졌다. 이 밖에 수원(4527건), 부천(3812건), 광주(2047건), 의정부(1142건) 등 서울 인접 지역을 중심으로 생애 첫 주택 거래가 많았다.
“차라리 사자” 경기도로 몰려
경기도에서 생애 최초 매수가 늘어난 이유는 서울 내 신규 아파트 공급이 드물고 매매 가격과 전셋값이 뛰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해 3만2759가구였다. 올해는 2만3830가구로 줄어든다. 그나마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32가구)’ 입주 물량을 제외하면 신축 아파트 전세 선택지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한국부동산원의 6월 4주 차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맷값 상승폭(0.18%)은 올 들어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14주 연속, 전셋값은 58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특히 서울 전셋값은 0.19% 올라 전주(0.17%) 대비 상승폭을 키웠다. 강북 지역 상승률이 0.23%로, 강남의 0.16%보다 상승폭이 컸다.
일례로 전세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 은평구에서는 아파트 전세 가격이 전주 대비 0.35% 최대폭으로 올랐다. 아실에 따르면 은평구 녹번동 ‘래미안베라힐즈(1305가구)’ 전용 84㎡는 지난 5월 전세금 6억7000만원에 세입자를 받았는데, 불과 한 달 뒤인 지난 6월 중순 같은 면적이 7억6000만원에 전세 계약서를 썼다.
민간 통계를 봐도 서울 전셋값은 6억원 선을 회복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은 지난 5월(6억58만원) 6억원을 돌파한 뒤 6월 들어 6억437만원으로 더 올랐다. 서울 평균 전세 가격은 2022년 2월(6억7257만원)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를 이어오다 지난해 2월에는 6억원 선이 깨졌다. 그러다 지난해 7월(5억6981만원) 이후부터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6월 말 기준 서울 강북 14개구 평균 전세 가격은 5억553만원, 강남 11개구 평균(6억9369만원)은 7억원에 육박한다.
전세 시세가 6억원대면 경기도 웬만한 아파트 매매 평균 시세보다 높다. KB부동산 6월 말 통계 기준 경기도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5억4399만원이다. 지난해 6월 5억3494만원을 찍은 뒤 소폭 올랐지만 2022년 6월 매매 가격이 6억2500만원에 고점을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8100만원가량 낮다.
물론 지역별 편차가 커 매맷값을 일반화할 수 없지만 단순 계산하면 서울 전세금을 갖고 외곽으로 눈을 돌리면 내 집 매수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특히 생애 최초 매매 수요자는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낮고, 서울 중심지 아파트를 바로 매수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부분 자금 여력에 맞춰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울 외곽 전세를 먼저 알아보는데, 주변 인프라나 교육 환경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경기도권이 나은 경우가 적잖다. 최근 경기 지역 생애 최초 구매가 부쩍 늘어난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서울 근교 아파트 매수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집값과 전셋값이 상승하면서 부담을 느끼는 임차인들이 상대적으로 주거 비용 낮은 경기·인천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서울에서 시작된 주거 불안이 수도권을 거쳐 서울 외곽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디딤돌 대출, 신생아 특례대출 등 낮은 이자에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는 정책 상품이 나온 데다 올 하반기 서울 내 예정된 전세 매물도 많지 않아 경기도 아파트 매매로 눈 돌리는 수요자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그렇다면 생애 첫 주택 마련을 앞둔 실수요자는 어디에서 집을 장만하는 게 좋을까.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호갱노노 자료를 바탕으로 올 1월 1일~7월 3일 화성시, 파주시, 수원시를 중심으로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단지를 알아본다.
화성
GTX-A 동탄…가성비 봉담도 인기
올 들어 생애 최초 매매 거래가 가장 많은 화성시는 동탄1·2신도시 이후 인구가 크게 늘어나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인구 규모가 큰 기초단체다.
동탄신도시는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A노선 개통과 삼성SDS의 투자 수혜 지역으로 꼽힌다. 한때 아파트값이 고점을 찍은 후 수억원씩 급락한 아픔이 있지만 오히려 무주택자였던 실수요자에게는 내집마련 기회가 되기도 했다. 지난 4월 말에는 GTX-A노선 수서~동탄 구간이 개통해 동탄역에서 수서역까지 19분이면 이동 가능해졌고 동탄신도시가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파주~서울역에 이어 서울역~삼성~수서를 잇는 전 구간이 완공되면 가치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동탄 주요 지역에서는 아파트값이 오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7월 입주한 화성시 오산동 ‘동탄역롯데캐슬’ 전용 102㎡는 2월 22억원(34층)에 손바뀜됐다. 지난해 상반기 16억~17억원대에 팔리던 아파트가 같은 해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하더니 올 들어 신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4월에는 19억5000만원(13층)으로 실거래 가격이 다소 낮아졌다. 층수에 따라 아파트값이 천차만별인 점을 고려하면 동탄역롯데캐슬 아파트값은 전반적으로 상승세다.
물론 동탄역롯데캐슬은 동탄역을 단지 바로 앞에 낀 초역세권 단지로 일대에서는 대장 단지로 통한다. 대신 자금 여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은 ‘동탄시범다은마을월드메르디앙반도유보라(51건)’ ‘동탄역센트럴푸르지오(50건)’ ‘금호어울림레이크1차(50건)’로 눈을 돌렸다.
동탄1신도시에 위치한 월드메르디앙반도유보라는 2007년 입주해 올해로 16년 차를 맞았다. 지난 5월 전용 84㎡가 7억3500만~8억1000만원에 실거래돼 아직은 신생아 특례대출 주택가액 기준(9억원)을 넘지 않았다. 동탄2신도시에 위치한 동탄역센트럴푸르지오에서는 전용 84㎡가 7억8500만원(7층)에 거래됐다. 2021년 한때 9억4500만원(9층)에도 팔렸던 아파트다. 금호어울림레이크1차는 동탄호수공원과 가까운 게 장점이다. 마찬가지로 2021년 한때 전용 84㎡ 기준 9억원을 넘겼던 아파트지만 최근 7억8300만원(15층)에 실거래됐다.
다만 화성시에서 매매 거래가 가장 많았던 아파트는 봉담읍에 몰려 있었다. 화성시 면적은 844㎢로 서울시보다 1.4배 넓고 지형은 동서로 넓게 퍼져 있다. 이렇다 보니 동탄1·2신도시가 있는 화성시 동쪽과 봉담읍, 남양읍 등이 있는 서쪽은 아예 다른 시장으로 통한다.
일례로 오는 8월 입주 예정인 봉담읍 ‘힐스테이트봉담프라이드시티’에서는 올 들어서만 분양권 113개 주인이 바뀌었다. 삼봉산 자락에 둘러싸였고 축구장 2배 규모 근린공원과 맞닿은 것을 빼면 이렇다 할 철도망이 갖춰져 있지 않은데도 거래가 활발했다. 신분당선 호매실~봉담 노선이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에 반영되면서 주목받는 중이다.
GTX-A 연말 개통 기대감
파주시도 최근 GTX-A노선 기대감으로 떠오른 지역 중 하나다. 파주에서 시작하는 GTX-A노선은 올 연말 개통을 앞뒀다. GTX-A노선이 개통되면 파주 운정역에서 서울역까지 20분 만에 이동할 수 있어 도심 접근성이 크게 향상된다. 기존 교통망 이용도 수월해진다. 파주시는 하루 4회, 4칸 열차로 운행하던 문산~용산 경의중앙선 출퇴근 전용열차를 내년 상반기부터 8칸으로 증량해 혼잡도를 현재 137%에서 100%로 낮춘다.
이런 분위기 속에 파주 운정신도시 아파트값도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파주시 동패동 ‘초롱꽃마을8단지운정중흥S-클래스’ 전용 84㎡는 지난 5월 6억7000만원(10층)에 매매 계약서를 썼다. 지난해 상반기 4억2700만원에도 거래됐던 아파트가 1년 새 1억5000만원 가까이 올랐다.
파주시에서 가장 거래가 활발했던 단지는 ‘운정신도시제일풍경채그랑퍼스트’다. 올 들어 이 단지에서만 아파트 122채가 사고 팔렸다. 경의중앙선이나 계통 예정인 GTX-A노선과 가깝다고 할 순 없지만 올 1월 갓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인 덕에 인기가 많다. 역세권은 아니지만 파주로, 남북로, 경의로 등을 통한 단지 진·출입이 쉽고, 자유로, 제2자유로 등 광역도로망을 통해 서울, 김포, 일산 등 주요 도심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운정신도시보다 북쪽으로 이동해 도착하는 문산읍에선 ‘파주문산역2차동문디이스트’ 매매 거래가 활발하다. 최초 공급 당시만 해도 청약 미달이 났던 단지지만 올 6월 입주를 앞두고 분양권, 매매 거래가 97차례나 이뤄졌다. 지난 6월 기준 전용 84㎡ 분양권 시세는 3억4000만~3억9000만원대에 형성돼 있다. 앞서 층·향이 좋은 전용 84㎡는 4억1400만원에 손바뀜되기도 했다.
파주에서 훨씬 저렴한 구축 아파트를 물색하고 있다면 금촌동으로 가봄직하다. 2004년 입주한 ‘쇠재마을뜨란채5단지’에는 30평대 아파트는 없지만 전용 59㎡를 2억원 초반대에 구매할 수 있다. 지난 6월 실거래 신고가 2억~2억3300만원에 이뤄졌다. 마을버스를 타고 경의중앙선 금릉역을 이용할 수 있는 위치다.
비싸더라도 대단지를 선호한다면 다시 운정신도시 ‘힐스테이트운정’으로 내려와보자. 단지는 2998가구 규모로 2018년 입주했으며 올 들어 파주에서 거래량이 4번째(67건)로 많았던 단지다. 최근 전용 84㎡가 6억2900만원(5층)에 팔렸는데 지난해 10월(7억원)보다는 다소 시세가 내린 상태다.
수원·부천·광주
수원은 인프라·광주는 다세대주택
교통 인프라를 중요시한다면 수원시에 터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수원에서는 광교신도시가 아파트값을 주도하는 가운데 인접 지역인 수원 구도심 집값도 강세를 띠고 있다.
수원시에서 매매 거래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영통구 매탄동 ‘매탄위브하늘채’다. 매탄주공2단지를 일찍이 재건축해 2008년 입주한 이 아파트에서만 올 들어 매매 거래 109건이 이뤄졌다. 단지가 위치한 매탄동은 광교신도시는 아니지만 인근에 삼성디지털단지가 자리 잡고 있어 삼성과 삼성 협력 업체 임직원들이 탄탄한 수요층을 형성하는 지역이다.
1호선 수원역을 애용한다면 2021년 입주한 팔달구 고등동 ‘수원역푸르지오자이’도 관심 가져볼 만하다. 4000가구 넘는 대단지인 데다 입주 4년 차 새 아파트라 일대 시세를 주도하는 대장 단지다. 지난 6월 전용 84㎡가 8억7000만원에 실거래됐다.
한편, 경기 부천시와 광주시는 생애 최초 매매 거래가 비교적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매 거래가 특별히 집중된 아파트 단지가 없었다.
부천시에서는 입주 4년 차인 소사구 송내동 ‘래미안어반비스타(87건)’를 제외한 거래량 상위 단지 대부분이 원미구, 그중에서도 중동신도시에 집중돼 있다. 대부분 입주 30년을 넘긴 구축 단지다. 아파트는 노후했지만 지상철 1호선이나 지하철 7호선 역이 촘촘하게 깔려 있고 서울 접근성이 나쁘지 않아 자금력 부족한 실수요자가 꾸준히 유입되는 곳이다. 7호선 부천시청역 역세권인 ‘포도마을삼보영남’ 전용 84㎡가 지난 6월 6억2000만원(11층)에 매매 계약서를 썼다.
광주시의 경우 생애 최초 매매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매 거래가 집중된 아파트 단지가 없다. 가장 거래가 많았던 단지가 입주 3년 차 장지동 ‘태전경남아너스빌(4건)’이다. 아파트 시장이 주를 이루는 다른 지역과 달리 광주시에서는 다세대주택 매매 거래가 비교적 활발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올 1~4월 광주시 아파트 매매 거래량(665건)과 다세대주택 매매 거래량(640건)은 거의 비슷하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7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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