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한테 내가 얘기하겠다”…공수처, ‘임성근 구명 의혹’ 녹음파일 확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관련 입법청문회에서 발언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채상병 사망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구명 로비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9일 파악됐다.

공수처가 확보한 녹음파일은 지난해 8월 9일 전화 통화로 해병대 출신이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이모씨의 통화 내용이다. 통화 상대방은 이 대화 녹음을 공수처에 제출한 공익신고자로 알려졌다. 공익신고자는 임 전 사단장과 이씨가 ‘골프 모임’을 추진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단체 카카오톡방에 속한 변호사 A씨라고 한다.

해당 통화에서 변호사 A씨는 이씨에게 “선배님, 그러고 보니까 일전에 우리 해병대 가기로 한 거 있었잖아요. 그 사단장 난리 났대요”라며 임 전 사단장을 거론한다. 이에 이씨는 “임성근이? 그러니까 말이야. 임 사단장이 사표를 낸다고 그래가지고 B가 이제 문자를 보낸 걸 나한테 포워딩을 했더라고. 그래서 내가 못하게 했거든”라고 대답한다. B씨는 해병대 출신이자, 골프모임 의혹 카카오톡방에 속한 대통령 경호처 직원 출신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이어진 통화에서 “그래가지고 내가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통화가 이뤄진 지난해 8월은 채상병 사망과 관련해 임 전 사단장의 책임론이 불거질 때였다.

녹음 파일에는 이씨가 임 전 사단장의 진급을 언급한 내용도 나온다. 이씨는 “원래 그거 별 3개 달아주려고 했던 거잖아. 그래가지고 포항에 가서 임성근이 만나기로 했는데 이건 문제가 되니까”라며 “내가 VIP한테 얘기할 테니까 사표 내지 마라. 왜 그러냐면 아마 내년쯤에 발표할 거거든. 해병대 별 4개 만들 거거든”이라고 대화를 이어간다. 변호사 A씨가 “위에서 지켜주려고 했다는 건가요, VIP쪽에서?”라는 질문에 이씨는 “그렇지. 그런데 언론이 이 XX들을 하네”라고 답했다.

이씨는 A변호사가 재차 “그럼 얘기가 원래 다 돼 있었던 거예요”라고 묻자 “내가 얘기를 풀었지”라고 했다.

이 통화 녹음 파일에 대해 이씨는 중앙일보에 “임성근 전 사단장은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관계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얘기만 몇 번 들었을 뿐, 구명 로비는 한 적도 없고 할 사이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호사 A를 만난 적은 있지만 임 전 사단장의 구명에 관한 대화를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도 아니다. 작년에 밥을 한 번 먹었고, A가 변호사 개업 후 도움을 청해 작은 사건 수임을 도와준 적은 있다”고 덧붙였다. 임 전 사단장의 진급과 구명을 거론한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임 전 사단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글쎄. 잘 돼야지’와 같은 통상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았을 뿐이다”며 “그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공수처는 이 녹음 파일을 토대로 임 전 사단장이 이 씨를 통해 본인의 구명을 대통령실 등에 전달했는지를 수사 중이다. 다만 이씨의 발언이 허풍이거나, 이씨가 대통령실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사단장은 지난달 진행된 국회 청문회에서 “이씨를 모르고, 이씨를 통해 수사 관련 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