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립암센터 비대위 “신규 진료 축소, 버틸 의사 없다”
국립암센터가 ‘신규 환자 축소’를 선언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으로선 처음이다. 의정 갈등 5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비상진료체계 중심에 선 공공의료기관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곽호신 국립암센터 전문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암센터는 기존 환자에 진료 역량을 쏟기에도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며 “기존 암 환자의 안전한 진료를 위해서 신규 환자 진료를 축소한다”고 밝혔다.
국립암센터는 의료전달체계에서 2차 종합병원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암 환자들 사이에선 고난도 암 진료·연구에 특화된 ‘4차 병원’으로 불린다. 1차 의료기관에서 암 진단을 받은 뒤 내원한 환자 비율이 70~80%에 달하고, 임상 시험 등 마지막 희망을 품고 병원을 찾는 말기 암 환자 비율이 20~30%를 차지한다.
하지만 국립암센터 비대위는 이날 ‘진료 재조정’에 관한 입장문을 내고 전문의·과별로 신규 환자를 자율 조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입장문에는 임상 의사 146명 가운데 76.7%(112명)가 투표에 참여했고, 이 중 86.6%(97명)가 진료 축소에 동의했다. 이미 일부 의사들이 자체적으로 진료 환자 수를 조율하고 있지만, 더이상 버티기 어려워 공개적으로 신규 환자 중단을 선언하겠다는 것이다.
곽 위원장은 “암 환자 치료는 고난도인 데다 정밀하게 봐야 하기 때문에 많은 환자를 한꺼번에 볼 경우 기존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신규 환자를 더 받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했다.
곽 위원장은 이 같은 조치가 당장 기존 환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도 전날 오후 4시쯤 척수 신경에 종양이 전이된 중증 암 환자를 수술하는 과정에서 중환자실의 입원 환자가 호흡 곤란을 호소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곽 위원장은 “수술 도중에 출혈이 발생해 나가볼 수도 없었다. 늑막에 물이 찬 환자여서 전화로 물 빼는 장치를 풀어주고 가슴 CT촬영을 지시했다”며 “다행히 고비는 넘겼지만 자칫 큰일 날뻔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전공의가 떠나고 남은 의료진에겐 과중한 업무가 이어졌다. 곽 위원장이 속한 신경외과에서도 사태 초기엔 의료진 4명이 한 달간 당직을 맡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직을 끝낸 뒤 수술까지 집도해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졌다.
국립암센터는 지난 2월 소속 전공의 72명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이후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당직·입원전담의 채용에 나섰다. 하지만 야간 당직 전담의는 당초 채용 목표인 인원 22명 중 지원자가 부족해 15명만 채용했다. 필수과인 내과는 당직 전담의도 구할 수 없었다. 주간 입원 전담의도 8명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는 없었다.
곽 위원장은 “지원자도 대부분 인턴 졸업한 의료 인력이다. 책임감이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아무래도 환자에 대한 이해도가 처음부터 환자를 맡았던 기존 인력보다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에선 의료진의 당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진료 과별 당직을 함께 운용하는 통합당직제를 시행했다. 당직이 많은 과의 업무 부담을 그렇지 않은 과가 나눠서 부담하게 됐지만, 신규 환자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전체 업무량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 2월 이후 국립암센터 필수과 등에서 과도한 당직 등 업무 부담을 호소하며 사직한 의사는 3명으로 알려졌다.
비대위는 앞선 지난달 대정부 성명서를 내고 응답자의 49.5%가 ‘전면 휴진’을 고려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암 환자 최후의 보루’가 무너질 수 있다는 내부 의견이 커지면서 신규 환자 축소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립암센터의 위기를 대내외에 공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곽 위원장은 “국가 암 환자 진료 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조속한 전환이 시급하다”며 “전문의를 더 뽑을 수 있도록 정부의 구체적이고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양=이정헌 기자, 김유나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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