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의자에 앉아 배식... 모두가 응원했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사업장별 업무 차이가 있고 노동조합이 조직되지만, 다른 사업장에 비슷한 업무가 있기도 하다. <공공운수노조 업무(직무별) 노동안전 기획강좌>를 통해 다른 사업장에서 유사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 현실을 공유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방법, 현장을 바꿔온 경험을 서로 배워가는 기획강좌를 마련했다. 바로 "만나자! 수다떨자! 연결하자" "다른 현장 같은 위험" 공공운수노조 하루 수다회. 공공운수노조와 노동건강연대, 그리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함께 했다. <기자말>
[유청희]
지난 3일 서울, 경기, 충청북도, 전라북도, 대구, 부산 등 11개 현장의 급식노동자들이 모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병원에서 일하지만, 이들에게는 학생, 병원 환자, 병원 직원들의 밥을 책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음식 재료를 씻고 썰고, 볶거나 튀기고, 설거지하고 청소까지 하루 일상 역시 비슷하다.
▲ 7월 3일 진행한 "만나자! 수다떨자! 연결하자!" - 다른 현장 같은 위험. 공공운수노조 업종별 기획강좌 급식노동자 편 포스터. |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
급식노동자들은 음식 만드는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난다. 그렇지만 이들의 노동강도는 웃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일을 하다보면 골병 들고 다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 대다수인 현장에서 이들은 때로 처음 들어보는 음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돈코츠라멘을 만들기 위해 미리 검색하고 동료들과 머리를 맞댄 일화. 실제 만들 때 면이 퍼지지 않게 하려고 계속 끓여야 하는 어려움이 공유될 때는 모두가 한 목소리로 '고생했네'라며 탄성이 나온다. 에그 인 헬을 만들어야 할 때, 맛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직접 사먹어봐야 했던 적도 있었다. 컵에 페스트리를 넣어 구운 얘기까지 나오자 한 참가자가 말한다. "급식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확인하는 지표는 '식수인원'이다. 식수인원이 적은 학교는 1인당 90명이지만 많은 곳은 1인당 140명까지 조리하기도 한다. 전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흙이 묻은 채소부터 손질해야 하지만 급식실은 반짝 반짝 빛이 날 정도로 씻고 물청소로 닦아내야 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불편한 자세를 반복해서 취하며 빛이 나도록 닦다 보면 근골격계질환이 빈발한다. 썰고, 튀기고 볶는 작업 중에 베이고 화상을 입고 넘어지는 사고도 겪는다. 최근에는 튀김 요리를 하다가 발생하는 조리 흄으로 인해 폐암까지 발생하고 있다.
다른 현장 같은 위험
짧게는 3년 길게는 20년까지 급식실 일을 하면서 누구 하나 다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동료 50명 중 한 두 명은 항상 병가 들어가 있는 급식실. 심각한 노동강도로 일 하다가 팔을 들었는데 축 늘어져서 너무 놀라 곧장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참가자. 후처리를 정신 없이 하던 중 호스에 걸려 넘어진 한 노동자는 그 옆에서 끓고 있는 뜨거운 물에 화상을 크게 입어 병원 치료를 받았다. 너무 심각하게 화상을 입어 체질이 바뀌었을 정도라니. 다른 현장의 노동자는 팔꿈치, 손목, 허리디스크, 목 디스크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산재신청도 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나눴다.
▲ 한 참가자가 동료가 허리를 깊게 숙여 조리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다른 참가자들이 사진을 본 후 이 급식실에 배수 문제가 있다는 것까지 지적했다. |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
이러한 변화는 이어진 교육수다에서도 소개되었다. 교육수다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필자(유청희 상임활동가)가 맡았다. 교육수다에서는 다수를 위해 식재료를 썰고 다듬고 볶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우리의 노동조건이 반드시 위험한 환경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하는 것은 과도한 1인당 식수인원, 노동자 몸에 맞지 않는 설비와 도구, 열악한 환기시설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현장의 위험요인을 개선해온 노동자, 노동조합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들기 힘든 상자에 구멍을 내고, 쓰레기봉투 크기를 줄여 노동자 몸의 부담을 줄이는 일 말이다. 급식 현장에서도 꾸준한 투쟁을 통해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게 만든 학교급식 노동자들, 폐암 환자가 발생하자 발빠르게 사회적 연대체를 꾸리고 시설을 개선하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 노동자, 노동조합이다.
우리의 결의를 모아 변화를 만들자
수다를 떨다 보니 급식실이 다 비슷할 것 같아도 각자 현장에 차이가 있음을, 또 각자가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수다를 통해 급식실의 위험을 다시 한번 깨닫고 서로의 현장에서 배운 것을 내 현장을 개선하는 데 적용하기로 뜻을 모았다.
▲ 한 참가자가, 병원 급식실 사례를 들은 후 자신의 학교 급식실에 적용해보겠다고 결의하고 있다. |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
▲ 결의수다 시간. 열악한 식사 공간을 개선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있다. |
ⓒ 유청희 |
마지막 순서로 급식실에서 당장 개선되어야 할 사항을 적고 가장 많은 사람이 지지한 개선 사항을 공공운수노조 급식노동자 요구안으로 정했다. 첫 번째는 논슬립 트렌치(미끄럼 방지 배수구 덮개) 설치다. 물기 많은 급식실에서 넘어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환기시설 개선이다. 튀김, 볶음 등 메뉴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은 폐암을 유발하고 있다. 조리흄을 제거하기 위해 환기시설 개선이 급선무다. 세 번째는 인덕션 설치와 열탕소독 중단이다. 고온 다습 환경인 급식실에서 열기를 발생시키는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교체하고, 열기를 유발하는 열탕소독을 중단하는 것이 마지막 요구다.
▲ 단체급식 노동자들의 세 가지 요구를 정했다. 설비 개선 요구를 안고 참가자들은 현장으로 돌아갔다. |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유청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교육청·지자체가 배포한 '대통령 지시사항'... "이런 공문 처음 봐"
- '해외 순방' 윤 대통령, 두 번째 채 상병 특검법도 거부권 행사
- '240만 공직자 배우자' 소환한 권익위 "김건희 처벌 못해"
- 직장 그만두고 세계여행 간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 평범한 국민 500명의 결정, 국회의원들과 비교해보니
- 쓰레기 처리하는 노인들, 한국의 민망한 현주소
- "이리 오너라~" 이곳에서는 맘껏 해도 됩니다
- '장비 파손' 비유 주진우 "내 발언은 당연한 내용"
- "쿠팡 제보자 압수수색에 겁박까지, 명백한 직권남용"
- 아리셀 참사 유족 "장례 압박 느껴져, 인권침해 심각"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