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처리하는 노인들, 한국의 민망한 현주소

김성호 2024. 7. 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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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75]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문명의 끝에서>

[김성호 기자]

항해사로 먼 바다에 나가 항해한 경험은 내게 세상을 완전히 달리 보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중 하나는 순환의 고리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걸프만과 말라카, 대만해협까지,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은 좁은 해역을 오가는 수많은 배의 행렬을 보며 한국이란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발전과 생산, 소비와 오염의 고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진 거대한 선박들이 내뿜는 오염물질을 생각한다. 법 적용을 받지 않는 해역으로 벗어나며 바꾸는 불순한 연료와 검은 연기를, 조악한 배들이 길게 뒤로 늘이는 불유쾌한 흔적들이며, 화려한 거대도시 항만 초입부터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 따위를 기억한다.

에너지를 얼마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가 멀리서 어마어마한 석유와 가스를 매일 같이 빌딩을 눕힌 듯 거대한 배에 가득 채워 들여온다.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의 수도에선 다시 저 멀리 외딴 도시에서 발전한 전기를 송전탑을 통해 끌어다 쓴다.
 
▲ 문명의 끝에서 스틸컷
ⓒ SIEFF
 
한국인, 서울시민이라면 마주해야 한다

어디 에너지뿐일까.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고리의 시작이 에너지라면, 쓰레기는 끝이다. 도시가 내버린 쓰레기는 도시 어딘가로 가지 않는다. 다른 도시, 보다 가난하여 항만의 역할을, 공장의 역할과 물류창고의 역할을 이미 대행하고 있는 주변 어느 도시로 실어 나른다. 쓰레기를 그곳에 매립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새로운 쓰레기를 매일 밀어낸다.

산처럼 쌓인 쓰레기가 무단투기 된 쓰레기산을 이루고, 그마저도 어찌할 수 없을 때 바다에, 또 다른 나라 이름 모를 섬에 몰래 버리고 온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불행히도 이 모두가 한국, 그 가장 화려한 도시 서울의 민낯이다.

제1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은 임기웅의 <문명의 끝에서>에 돌아갔다. 80분짜리 다큐는 한국사회가 배출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을, 그 민망한 고리를 들추어 관객 앞에 펼쳐 보인다. 마땅히 공공의 역할이어야 할 폐지와 고철처리를 열악한 노인들이 맡아 처리하는 모습을 시작으로 법 테두리 바깥에 선 고물상들과 그곳에서 재활용되지 않는 폐기물들이 마침내 도달하는 재활용선별장, 다시 대부분의 걸러지지 않은 쓰레기가 당도하는 매립지까지를 비춘다.
 
▲ 문명의 끝에서 스틸컷
ⓒ SIEFF
 
쓰레기 포화상태, 바다도 한계다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매일 서울에서 인천으로 흘러나가고, 우리가 믿는 것과 달리 얼마 재활용되지 못한 채 소각 없이 매립된다. 유해한 가스와 오수가 토양 아래 젖어드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그보다도 심각한 건 매립지가 거의 들어차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 등이 매립지와 관련해 모두가 만족할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들이 밀어낸 쓰레기가 매일 매립지로 답지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건 매립지가 품지 못하는 쓰레기다. 이미 곳곳에 무단투기된 쓰레기가 있단 게 언론보도 등을 통하여 적발되고 있는 것이다. 산중에 무단투기된 쓰레기가 문자 그대로 산을 이룬 쓰레기산은 여적 방치돼 치워지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폐기물 업체가 뿌려놓고 도망친 쓰레기가 문제화되고 있다. 바다로 흘러나간 쓰레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영화는 얼마 다루지 못하지만, 나는 그 심각성을 직접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

지난 반세기 넘게 바다에 분뇨며 쓰레기를 무단투기해온, 그마저도 국내외에서 수없이 적발돼 보도까지 되었던 한국이 마치 그런 일이 전혀 없다는 듯 지내는 모습을 보자면 어안이 벙벙해질밖에 없다. 영화 속 연근해 어부가 끌어올린 그물에 잘은 새우 말고는 죄다 비닐과 온갖 쓰레기인 모습이 문제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 문명의 끝에서 스틸컷
ⓒ SIEFF
 
서울은 피하고, 지방은 감당한다

쓰레기를 비워낸 수도 서울은 갈수록 쾌적해져가지만, 그 쓰레기를 받아내는 수많은 지역은 얼마나 황폐해져 가는가. 그마저도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주어질 수도 없는 곳들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를 <문명의 끝에서>가 내보인다.

영화는 쓰레기의 순환을 내보이는 걸 넘어 차츰 그 본질로 넘어가려 한다. 쓰레기의 순환을 개론적으로 훑는 것이 1부 '서쪽 끝 쓰레기 도시'를 이룬다면, 2부 격인 후반부 '나의 살던 고향은'은 지역의 식민화와 재개발 문제를 다룬다. 인천시가 서울 쓰레기를 처리하는 부조리함부터 매립 쓰레기의 태반을 차지하는 건설폐기물이 어떤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지를 묻는다.

수많은 재개발 논의 가운데서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소외돼 있는 게 현실이다. 국가 경제 부흥을 위하여, 또 건설사며 정치인, 이해관계 있는 온갖 이들의 목적 아래서 무분별한 재개발이 추진되는 과정을 영화는 쓰레기 문제와 연결 짓는다. 재개발이란 이름 아래 보존되지 못하는 장소들을 이야기하고, 재개발이 지역을 더욱 빨리 낙후시키는 현상을 지적한다.

물론 쓰레기의 여정을 뒤쫓는 이야기는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니다. 해외에도, 한국에도 관련된 영화며 책이 수두룩하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사실이 문제 전부를 포괄하는 것도 아니고, 한 지점을 꿰뚫을 듯 파고들고 있는 것도 아니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포스터
ⓒ SIEFF
 
멀지 않은 쓰레기대란, 이제라도 직면해야

그럼에도 <문명의 끝에서>의 가치는 분명하다. 한국사회가 여전히 쓰레기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쓰레기를 매립할 대체매립지를 아직도 구하지 못하였고, 서울이 자체 배출하는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경각심 또한 시민사회에 얼마 형성돼 있지 않다. 구체적 논의 없이 행정적 편의와 힘의 논리 아래서 쓰레기는 약한 연결고리로 밀려날 밖에 없다.

원전폐기물을 원자력발전소 앞마당에 쌓아두고, 막대한 분뇨를 여전히 무단으로 투기하는 이 나라는 쓰레기대란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서도 흥청망청 쓰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이 영화의 유효함은 바로 이러한 현실 가운데서 더욱 두드러진다.

90% 가량이 재활용되는 건설폐기물이, 그럼에도 전체 쓰레기의 절반가량을 이룬다는 사실 또한 사회적으로 논의돼 마땅하다. 부수고 짓는 일 뒤엔 도시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쓰레기 문제 또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 정 붙이고 사는 일을 오늘의 한국인은 왜 더는 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재개발이란 미명 아래 어떻게든 부수고 다시 세울 생각만 하는 것이 결코 정답일 수 없다고 <문명의 끝에서>는 이야기한다.

과연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지속할 수 있는가. 생명과 환경과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한국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에서 멀리 보내 파묻어 버리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부수고 다시 짓는 일에도 환경적 부담이 있다. 그 사실을 무지의 철옹성에 갇힌 행복한 시민이 이제는 알아야만 한다고 이 다큐가 이야기한다. 마땅히 귀를 기울일 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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