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에는 지금도 창업자의 시간이 흐른다 [내 인생의 오브제]
오사카 출신의 재일교포 이희건. 그는 1982년 7월 7일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번 돈 250억원을 모아 신한은행을 창업한다. 영업점 3개로 시작한 미니 뱅크였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 시계를 돌려보면 그건 동면에 빠진 대한민국 금융을 깨우는 순간이었다. 그날 아침 8시 30분 서울 명동 코스모스백화점 앞에서 여고생 고적대가 개점 팡파르를 울렸다. 주룩주룩 비가 내렸지만 어느 누구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닦지도 않았다. 모두들 가슴이 메어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됐다.
창업주는 은행은 신용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예금주가 피땀 어린 돈을 은행에 맡길 때 그건 은행의 신용을 보는 겁니다. 돈 잘 보관해주고 이자도 붙여줄 것이라는. 금융인은 그래서 신용이 가장 중요하고 나는 그중 약속 시간 준수를 으뜸으로 꼽습니다.”
그는 늘 약속 시간보다 20~30분 일찍 도착했으며 예외를 없애기 위해 가급적 전철을 이용했다. 둘째 아들 경재 씨가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1975년 9월 도쿄 히가시니혼바시에 지사를 둔 회사에 근무할 때다. 아버지가 밥이라도 같이 먹자며 7시에 ○○호텔로 오라고 전화했다. 그게 아버지와의 첫 외식이었다. 10분 전에 호텔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이미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양주도 마시면서 늦게까지 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자고 가라고 권했지만 다음 날 일이 있어 서둘러 귀가해야 한다고 하자 ‘그럼 3년 뒤에 다시 오마’라며 약속을 잡았다. 아버지는 이 약속을 잊지 않았다. 꼭 3년 후인 1978년 9월, 지난번처럼 회사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약속 시간 20분 전에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버지는 이미 로비에 서 계셨다. 모든 게 3년 전과 똑같았다.”
2011년이 되자, 이희건 창업주는 본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당시 오사카 지점장이었던 진옥동 현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불러 창업 동지들에게 보내는 유언을 녹음하고 아들 삼 형제와 협의하여 연명 치료를 하지 않기로 합의까지 했다. 마지막까지 병상을 지킨 분이 바로 진 회장이었다. 그는 창업주가 숨을 거두고 유가족들이 그의 손목에 있던 세이코 시계를 푸는 순간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에게 그 시계는 바로 창업주였다.
8년의 세월이 흘러 당시 진 지점장은 신한은행장으로 취임한다. 2019년 3월. 두 달 뒤 창업주의 2남, 3남인 경재와 윤재가 은행을 방문한다. 신임 은행장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기념 선물이라며 예쁘게 포장한 정사각형 박스를 건넨다. 그 상자 안에는 그가 8년 전 창업주를 떠나보내면서 본 그 시계가 있었다. 상자를 푸는 순간 진 회장은 울컥했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아주 단순한 시계. 늘 소탈한 성품의 창업주를 닮았다고 생각했던 그 세이코 시계였다. 그는 “중요한 행사 때면 손목에 차고 그렇지 않을 땐 늘 책상 위에 두고 창업자의 정신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며 “그 혹독한 시절 일본에서 살아온 우리 창업자들은 어떤 신한을 꿈꿨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경영의 방향을 구상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 시계가 본인이 독점할 수 없음을 안다. 그건 신한은행의 것이다. 그래서 회장이 되자 후임 정상혁 은행장에게 시계를 건넸다. 신한은행에는 그렇게 창업자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손현덕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7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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