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각 벽화 속 아이의 처절한 몸부림... 그래서 버틴다
[박은영 기자]
▲ 아이의 손만 남은 벽화 올라간 수위로 교각에 그려진 아이그림의 손만 남아있다. |
ⓒ 서영석 |
"저 회색선까지 차면 얼른 다 버리고 나와요. 알겠죠?"
세종보 농성장 근처를 산책하던 노부부가 일부러 찾아와서 신신당부를 했다. 부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작년 7월에도 대청댐을 방류해서 물이 많이 차올랐다"면서 "금방 물이 차니 집기고 뭐고 다 버리고 나오라"고 거듭 당부했다. "알겠다"면서 "걱정마시라"고 답변했는데도, 농성장을 떠나면서 계속 뒤돌아보는 노부부의 모습, 환경부 공무원들과는 너무 달랐다.
사실 우리가 이곳에 농성 천막을 치고 70여 일간 버티는 까닭은 자연과 맞서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따라서 쏟아지는 비를 예의주시했다. 노부부의 말대로 물이 차오는 건 금방이었다. 물이 흐르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전부 휩쓸어버릴 듯 바쁘게 하류로 흘러가고 있었다. 천막농성장은 한두리대교 교각 밑, 물이 머무는 곳이기에 그나마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금강을 바라본다. 어디가 뭍이고 어디가 물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금강을 꽉 채운 채 육중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강. 종국에 가서는 인간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장맛비가 몰고 온 거대한 강 앞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 재난안전본부 그늘막이 흔들릴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다 ⓒ 박은영 |
"저녁이 된 것 같아요."
서서히 천막농성장 주변이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저녁처럼 어두워지더니 무섭게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그늘막 지붕을 뚫어비릴 것처럼 맹렬하게 내리꽂혔다. 천막농성장 오른편 나무솟대 두 개가 급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둥실 떠올라 거센 물살에 흘러 사라졌다. 하중도 위 나무들도 머리 끝만 보이더니 강물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
▲ 세종보 개방 후 드러난 펄 2017년 11월, 세종보 개방 후 환경부가 수생태 최악의 4급수 오염지표종으로 지정한 붉은깔따구가 살얼음이 낀 펄밭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
ⓒ 김종술 |
물길은 세종보를 수력발전소 건물만 남기고 모두 삼켜버렸다. 보를 이용해 홍수와 가뭄을 대비하겠다던 환경부가 떠올랐다. 이 상태에서 강이 멈춰있다면 그것이 세종보 담수를 한 모습이겠다 싶었다. 강 아래 잠겨 모래도 자갈도 모두 썩어 펄로 가득한 죽은 강의 모습.
바로 6년 전인 2017년, 세종보 수문이 부분 개방되면서 이미 세상에 드러난 바 있다. 세종보가 개방된 후 드러난 금강 바닥은 온통 펄로 가득했다. 진회색의 펄밭에서 하수구 악취가 풍겨났고 붉은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드글거렸다. 물속의 작은 녹조 알갱이와 부유물이 가득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강은 순리대로 흘러야 함을 그대로 보여주었음에도 환경부는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되돌리고 있다.
▲ 급류타는 오리들 불어난 강물에 떠내려온 짚풀 위에 오리들이 쉬고있다 |
ⓒ 문성호 |
"야, 오리들이 최고네!"
오리들도 급류를 탔다. 떠내려가는 짚풀 위에 앉아 거센 물길을 타고 내려가는 오리 가족의 모습이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장맛비에 경보를 울리면서 허둥대는 사람들과는 달리 어떤 친구들은 짚풀 위에서 내려와 강물을 거슬러 헤엄을 치기도 했다. 잠시 뒤, 마지막 솟대가 물 위로 쑥 떠오른 뒤 물위로 넘어지는 것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농성천막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공주보에서 수중농성을 하고 나오던 때가 떠올랐다. 작년 백제문화제를 앞두고 고마나루에서 공주보 담수를 막으려고 농성을 했지만 결국 수문은 닫혔다. 깊고 차갑던 공주의 금강과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있던 공주보의 모습이 생명을 지키기보다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가려는 이 정권의 무도함을 그대로 닮았다.
▲ 천막은 다시 솟아난다 |
ⓒ 서영석 |
▲ 천막은 다시 솟아난다 |
ⓒ 서영석 |
▲ 천막은 다시 솟아난다 |
ⓒ 서영석 |
▲ 천막은 다시 솟아난다 |
ⓒ 서영석 |
▲ 천막은 다시 솟아난다 |
ⓒ 서영석 |
▲ 천막은 다시 솟아난다 |
ⓒ 서영석 |
▲ 천막은 다시 솟아난다 |
ⓒ 서영석 |
비는 절기의 흐름대로 왔다가 강을 만났고 강은 인간이 세운 어떤 것이든 모두 쓸어안고 갔다. 무섭기도, 자비롭기도 했다. 70일, 한평 남짓한 3x3m 작은 우리 천막이 최전선을 지켜왔다.
▲ 3선에서 우리는 장마가 아니라 윤석열 환경부와 맞설 것이다 |
ⓒ 임도훈 |
하루 종일 물에 젖은 마음을 쭉 짜내어본다. 그 손짓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늘도 천막을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천막농성장에 마음의 돌탑을 쌓아 놓고 갔다. 장마는 어쩔 수 없지만, 수문을 닫아 강의 생명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젖은 마음을 말리고 비가 그치면 우리의 천막은 다시 솟아날 것이다.
노부부의 당부처럼, 우리는 천막농성장 바로 위쪽 둔치인 2선으로 물러섰다가, 또 다시 금강스포츠공원 주차장 쪽인 3선으로 물러서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 여름의 홍수 때에도 잠기지 않았던 안전지대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다. 우리는 장맛비와 싸우는 게 아니라 세종보와 세종보를 기어코 막으려는 윤석열 환경부와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러서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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